지젤의 참된 사랑을 깨달은 알브레히트가 무덤 앞에서 참회하는 발레 '지젤'의 2막 마지막 장면과 함께 무대의 조명이 꺼지자 소년은 만면에 미소를 머금었다. 뉴델리의 유일한 민간 발레단 '센트럴 컨템포러리 발레'를 어렵게 찾아 지난 3개월 간 매일 8시간씩 발레를 배웠지만 발레 불모지인 인도에서 무대 공연을 직접 볼 기회가 없었던 프린스 샤르마(16)군은 무척 상기돼 있었다. "특별히 어떤 장면을 꼽을 수 없을 정도로 정말 좋았어요. 꼭 전문 무용수가 돼서 알브레히트를 연기하고 싶어요."
지난 26, 27일 인도 뉴델리의 시리포트 극장은 인도 청소년들의 꿈이 영그는 공간이 됐다. 한국과 인도의 수교 40주년 기념으로 '왕자호동' '돈키호테' '라 바야데르' '지젤'의 일부 장면을 무대에 올린 국립발레단의 해설 갈라 공연 이야기다. 특히 26일 공연은 뉴델리의 20개 학교 초ㆍ중ㆍ고교생 1,900여명을 초청한 특별 무대였다. 대부분 난생 처음 발레를 보는 탓에 중간 중간 산만한 관람 태도를 보이기도 했지만 막상 공연이 끝나자 학생들은 극장을 떠나지 못했다. 여기저기서 "발레를 배우고 싶다"는 이야기가 들려 왔고 저마다 카메라를 꺼내 들고 무용수 곁을 맴돌았다.
이날 취재 차 극장을 찾은 프리랜서 기자 비시루스 찬드라(27)씨는 "러시아 볼쇼이 발레단의 초청 공연도 관람한 적이 있지만 발레에 한국 문화를 절묘하게 녹여 낸 이번 공연이 더 인상적이었다"며 "무엇보다 발레를 경험하지 못했던 아이들의 열정과 꿈을 독려하는 훌륭한 기회가 됐다"고 평가했다.
샤르마군을 비롯해 '센트럴 컨템포러리 발레'의 영 아티스트 프로그램을 수강 중인 10~20대 18명은 이날 공연장의 또 다른 주인공이었다. 전날 인도 주재 한국문화원에서 국립발레단의 수석무용수 김지영, 이영철씨 등이 지도하는 발레교실에 참가한 이들은 강사인 산제이 카트리(30)씨와 더불어 이날 공연에 가장 열광적으로 환호한 관객이었다.
2011년 한국 유니버설발레단(UBC)의 인턴 단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던 카트리씨는 '인도의 유일한 발레리노'로 인도 여러 매체에 소개된 인물. "인터넷으로 미하일 바리시니코프 등 유명 발레리노의 영상을 접하고 발레를 배우고 싶었다"는 그는 2002년 인도 주재 미국대사관에서 처음 발레를 배웠다. 실력 향상을 위해 멀리 아르헨티나와 한국까지 가 각각 2~6개월 간 발레를 익힌 그는 후배들이 같은 고생을 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인도에서 후학을 키우고 있다. 실력을 향상시키고 싶은 마음에 문훈숙 UBC 단장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이메일을 보내기도 했던 그는 한국의 대표 발레리노 이원국씨의 수업도 들었다. 이날 그는 후배들이 뉴델리를 떠나지 않고도 한국 최고 무용수들의 지도를 받고 직접 공연까지 보게 된 게 감격스러운 듯 눈시울을 적시기도 했다.
카트리씨의 수강생 중 샤르마군은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들에게서 '빌리 엘리어트'라는 별명을 얻었다. 발레리노가 되고 싶은 탄광촌 소년을 그린 영국 영화 '빌리 엘리어트'의 주인공 못지 않게 어려운 환경에서 발레의 열정을 키우고 있다는 의미에서 붙은 별명이다.
공연 문화가 발달하지 않은 까닭에 1982년에 지어진 열악한 시설의 공연장에서 제대로 된 무대 세트도 설치하지 못한 채 진행됐지만 이번 공연은 국립발레단 관계자들에게도 의미가 특별했다. 발레교실을 진행한 김지영씨는 "몇몇 학생은 2, 3개월 배웠다고는 믿기지 않게 뛰어난 실력을 갖춰 놀랐다"며 "무용을 배우기에 좋지 않은 여건인데도 열망을 키워 가는 아이들을 보면서 나 스스로를 돌아보는 좋은 기회도 됐다"고 말했다. 최태지 단장은 "우리가 과거에는 프랑스와 러시아에서 발레를 배웠지만 이제는 발레를 인도와 같은 미개척지에 가르쳐줄 수 있는 수준이 된 것 같아 감회가 특별하다"고 말했다.
이날 국립발레단과의 기념 촬영까지 모두 마치고 극장을 나선 카트리씨에게는 새로운 꿈이 생겼다. "인도 최고의 발레 무용수가 될 샤르마를 꼭 한국에 보내 더 많은 공연을 보게 하고 싶어요. 형편이 여유롭지는 않지만 제 개인의 힘으로라도 반드시 그렇게 할 겁니다."
뉴델리=김소연기자 jollylif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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