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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미국 진출… 목숨 건 결정이 큰 영광 가져다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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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미국 진출… 목숨 건 결정이 큰 영광 가져다줬어요"

입력
2013.10.28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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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이름 앞엔 최초라는 수식이 곧잘 붙는다. 국내 첫 유학파 패션디자이너라는 호칭만으로 그치지 않는다. 1956년 국내 최초로 패션쇼를 열었고 1963년 디자이너 기성복을 첫 도입했다. 1970년대 가수 윤복희를 통해 미니스커트 붐을 선도했고 여성그룹 펄시스터스의 판탈롱 패션을 유행시켰다. 1950~60년대 영화와 연극 의상을 도맡은 뒤 1970년대엔 TV 프로그램에 의상 협찬이라는 개념을 처음 도입했다. 미국 패션잡지 보그와 바자에 등장했고 미국 백화점에도 진출했다.

남들이 가지 못한 길을 걸으며 지금 우리가 누리는 보편성을 획득했던 노라노(85)의 삶은 한국 패션이 걸어온 길이기도 하다. 패션을 향한 그의 삶은 지난해 열린 데뷔 60주년 기념 전시회로 반추됐다. 31일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노라노'는 이 기념 전시회를 축으로 디자이너로서, 여성으로서 그의 생을 되짚는다. 신산하면서도 빛나는 그의 삶은 현대 한국 여성의 삶을 대변한다. 25일 오전 서울 청담동 노라노빌딩 3층에서 만난 그는 꼿꼿한 자세로 런웨이를 하듯 다가와 "노인네가 주연 배우를 해서 이렇게 시달린다"면서도 환한 웃음을 지었다. 그는 "옷 만들어 판 것밖에 한 일이 없는 사람인데 영화로 만들어준 젊은 (김성희)감독과 (김일란)프로듀서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다큐멘터리 '노라노'는 태평양전쟁의 혼돈 속에서 17세에 한국인 일본 육군대위와 어쩔 수 없이 결혼해야 했고 19세에 이혼을 한 뒤 유학을 떠났던 노라노의 젊은 시절을 세세히 되돌아본다. '노명자'로 살던 젊은 여성이 노르웨이 극작가 헨리크 입센의 희곡 '인형의 집'의 주인공 노라의 이름을 얻으며 다시 태어나는 과정을 일별하며 영화는 봉건적 사회에 질식했던 지난 세기 후반기 여성들의 삶을 묘파한다. 노라노는 "제가 목숨을 걸고 결정해 결국 큰 영광으로 돌아온 일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이혼이고 또 하나는 미국시장 진출이었다"고 회고했다.

"보통 사람들은 맞춤복 옷을 잘 입지 않던" 1950~60년대 그는 자연스레 영화와 연극을 위한 옷들을 만들었다. "여배우들의 주요 출연 계약 조건 중 하나가 노라노가 의상을 담당하는 것"이라 "제작자들, 특히 임화수씨로부터 '돈 많이 든다'며 욕도 많이 얻어먹었다". 극장가 대목인 "명절과 연말연초 전후로는 쉬어본 적이 없을 정도"였다. "최은희와 도금봉은 아예 계좌에 목돈을 집어넣고 시나리오만 보내 옷을 만들도록 했고, 엄앵란은 '개런티는 다 선생님 가져다 준다' 말할 만큼" 당대 영화 속 여배우들 의상을 도맡았다.

"1962년 서울에서 아시아태평양영화제가 첫 개최될 때 국내 여배우 10명이 모두 제게 옷을 맡겼어요. 세 시간에 한 명씩 잠도 못 자고 가봉을 했어요. 배우 김혜정씨는 마지막에 나를 찾아 '제 돈은 돈이 아니냐'고 따지기에 시간이 없는데도 옷을 만들어준 기억이 또렷해요. 김지미씨는 '양귀비'(1962) 찍을 때 함께 제작되던 도금봉씨의 '천하 일색 양귀비'(1962) 의상을 하지 말라며 10만원을 더 얹어 주기도 했지요. 그 영화 의상비가 100여만원였으니 거액의 웃돈인 거죠."

그는 70년대 "변태 디자이너가 만든 옷"(패션디자이너 앙드레 김)이란 평까지 들은 미니스커트 붐에 얽힌 일화를 영화 속에서 언급한다. 텔레비전 프로그램 토론회에서 한 남성 국회의원이 "미니스커트는 다리가 미운 한국 여성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지적하자 그는 "그럼 얼굴이 미우면 조선시대처럼 얼굴을 가리고 다녀야 하냐"고 일갈했다. "제가 맞는 말을 했으니 그 쪽은 아무 말도 못했죠. 국회의원들이 그 방송 보며 화를 많이들 냈대요. 말로 먹고 사는 정치인이 조그만 여자한테 한 방 먹었다고…"

그의 패션철학은 명쾌했지만 실현하기 쉽지 않아 보였다. 그는 "옷을 자신에게 잘 맞게 입으면 옷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옷이 눈에 띄면 잘못 입은 것이다"고 말했다. "패션은 예술이 아니라 사람이 예술이다. 패션은 사람을 서포트(보조)해주는 것이고 옷은 편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배우한기자 bwh3140@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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