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2년 삼성과 LG의 한국시리즈 6차전. 9-9 동점 상황에서 등판해 마해영(당시 삼성)에게 통한의 끝내기 홈런을 허용하고 주저 앉은 최원호 전 LG 코치는 훗날 "내 기분으로는 공이 잘 들어갔다고 느꼈는데 내 생각일 뿐이었다"고 말했다. 정규시즌 4위로 턱걸이해 준플레이오프부터 한국시리즈 6차전까지 치르는 동안 지칠 대로 지친 몸은 이미 정상이 아니었다. 최 전 코치는 "타자와 투수는 다르다. 투수의 어깨는 소모품과 같기 때문에 장기전으로 가면 경기를 많이 한 팀이 절대적으로 불리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프로야구 사상 최초의 '기적'에 도전하는 두산의 '적' 역시 삼성이 아니라 한계에 직면한 마운드다. LG를 비롯해 역대 정규시즌 4위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한 팀은 모두 마운드 싸움에서 무릎을 꿇고 '신화 창조'에 실패했다.
1990년 정규시즌 4위 삼성이 준플레이오프에서 3위 빙그레에 2연승, 플레이오프에서 2위 해태마저 3연승으로 완파하고 한국시리즈까지 올랐지만 LG와 대결에서 4전패로 처참하게 무너졌다. 김상엽과 이태일, 성준이 이끄는 삼성 마운드는 플레이오프까지 훌륭했지만 LG 강타선을 이겨 낼 재간이 없었다.
1996년엔 현대가 4위로 포스트시즌에 나서 준플레이오프에서 한화에 2연승, 플레이오프에선 쌍방울에 2연패 뒤 3연승의 무서운 뒷심으로 한국시리즈 무대를 밟았다. 그러나 현대 역시 정상 문턱에서 주저 앉았다. 해태와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정명원이 노히트 노런을 작성하면서 2승2패로 팽팽히 맞섰지만 시리즈가 장기전으로 이어지며 누적된 피로가 드러났다. 한국시리즈 사상 첫 노히트노런을 달성한 정명원이 6차전에선 패전투수가 된 것이 단적인 예다.
2003년에는 SK가 준플레이오프에서 삼성에 2연승, 플레이오프에서 KIA에 3연승하고 한국시리즈 티켓을 얻었지만 현대와 최종 7차전 접전 끝에 3승4패로 고배를 마셨다. 역대 4위 팀 가운데서도 가장 아쉬운 경우였지만 결국은 마운드의 우위를 확보했던 현대의 승리로 돌아갔다.
두산 역시 준플레이오프 5경기, 플레이오프 4경기를 치르며 정신력으로 버티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한국시리즈 전적 2승1패로 우위를 유지하며 투수들의 성적도 현재까지 삼성과 견줘 손색이 없다. 하지만 지금까지 삼성 타자들의 경기 감각이 완전치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진짜 승부는 이제부터다. 두산의 사상 첫 4위 팀 우승의 관건 역시 한계에 도전 중인 마운드다.
성환희기자 hhs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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