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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10월 28일] 관권선거의 망령, 언제까지 끌고 갈 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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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10월 28일] 관권선거의 망령, 언제까지 끌고 갈 텐가

입력
2013.10.27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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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처럼 총선과 대선이 겹쳤던 1992년에는 선거 부정을 폭로하는 '양심선언'이 줄을 이었다. 총선을 이틀 앞두고 '군 부재자 투표 부정'을 폭로한 이지문 중위가 파면되고 사건이 흐지부지됐을 무렵, 한준수 전 연기군수가 "3ㆍ24 총선은 유례없는 관권타락선거였다"고 고발했다. 총선 당시 충남지사와 민자당 후보에게서 받은 돈 등 8,500만원을 뿌렸고, "직을 걸고 여당 후보를 당선시키라"는 윗선의 지시에 따라 읍면은 물론 리 단위까지 조직적인 표 관리를 했다는 내용이었다. 검찰이 수사에 나섰지만 결국 한 전 군수가 부정선거의 주범으로 몰려 법정에 섰고, 관권선거의 추악한 실태는 불문에 부쳐졌다.

우리사회는 그 어처구니없던 시절로부터 얼마나 멀리 왔을까. 지난해 8월 '양심선언 20년'을 맞아 한 전 군수의 대전 자택을 찾았을 때도 이 물음부터 던졌다. "그때처럼 (공무원과 행정조직을) 다 동원하고 그런 식은 아니지만, 선거 부정이 아주 사라졌다고는 할 수 없겠지. 자신의 영달을 위해 권력에 아첨하는 공직자들도 여전히 있고…."

기우(杞憂)이기를 바랐던 그의 염려는 고스란히 현실이 됐다. 지난해 대선 직전 국가정보원의 댓글 여론조작 의혹 사건이 터진 뒤 벌어진 양상도 20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야당의 의혹 제기를 되레 '정치공작'으로 몰고, 국정원과 경찰, 새누리당이 짬짜미로 경찰 수사의 축소ㆍ은폐에 나서는 등 구태가 되풀이됐다. 뒤늦게 수사에 나서 원세훈 전 국정원장 등을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기소하고 트위터 여론조작 혐의까지 밝혀 낸 검찰이 고약한 역풍에 시달리고 있는 최근의 사태에다 추가로 드러난 군 사이버사령부의 선거개입까지 더하면, '관권선거의 망령'이 20년 전 그때처럼 온 나라를 헤집고 있는 형국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시계를 20세기로 되돌려 놓은 이 사건을 대하는 청와대와 여권의 비뚤어진 인식은 딱하기 그지없다. "나는 모르는 일"이라며 애써 외면하다 급기야 "내가 댓글 때문에 당선됐다는 거냐"고 따지는 옹졸한 대통령, "그까짓 댓글 몇 개가 선거에 영향을 미쳤겠느냐"고 애써 폄하하다 대규모 트위터 여론조작이 밝혀지자 "대선 불복을 하겠다는 거냐"고 딴지 거는 새누리당 고위 인사들, 검찰 수사결과를 트집 잡으며 은근히 여권 역성들기에 나선 일부 언론들까지.

그저 이 사건을 조용히 묻어 버리고 싶어하는 이들에게 구구절절 시시비비 따질 것 없이 이렇게 물어보자. 노무현정부 시절 국정원에서, 군 사이버사령부에서 똑 같은 일이 벌어졌다면 어땠을까. 굳이 답을 들을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이 사건의 본질은 국가기관이, 불법으로, 선거에, 개입을 했다는 것이다. 국정원 요원들의 댓글이나 군 사이버사령부 요원들의 트위터 재전송이 대선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가, 나아가 당락에 결정적인 변수가 됐는가는 차후 심도 깊은 연구의 영역으로 넘길 문제다.

그런데도 이 사건을 정쟁으로 끌고 가려는 새누리당 인사들의 망언은 끝이 없다.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는 의심의 독사과, 불신의 독버섯"(황우여 새누리당 대표), "아주 지저분한 자기방어"(홍지만 원내대변인), "악마가 내미는 손길"(최경환 원내대표) 등 그들이 쏟아 놓은 막말 퍼레이드는 기실 그들 자신을 향해야 할 말이 아닐까.

이 사건의 본질이 그렇듯이 해법 또한 명확하다. 지난해 대선에서 국정원을 포함한 국가기관들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낱낱이 밝히고, 책임자와 연루자를 그 책임의 무게에 따라 엄히 벌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제도 개혁에 나서야 한다.

제 정신 박힌 이들이라면 한결같이 말하는 이런 해법을 애써 외면한 채 값싼 궤변과 임기응변으로 일관한다면, 박근혜정부와 새누리당은 야당이나 그 지지자들이 '대선 불복'을 외치지 않더라도 앞으로 4년여 내내 이 깊은 늪에서 헤어나지 못할 것이다. 허우적댈수록 더 깊이 빠져드는 늪처럼.

이희정 사회부장 jay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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