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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 가야금'에 멍드는 입시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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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 가야금'에 멍드는 입시생들

입력
2013.10.27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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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째 가야금을 배운 중학교 2학년생 A양은 올해 초 가야금 연주자의 꿈을 버렸다. 지역 대회에서 두 차례 입상하면서 유망주로 꼽히던 A양이 가야금을 놓은 이유는 비싼 악기 가격 때문이다. A양의 부모는 "대학에 가려면 '명품' 가야금이 반드시 필요한데 초등학교 교사 부부인 우리 형편에 한 대에 1,000만원이 넘는 가격을 감당할 수 없었다"며 "어린 아이에게 재능보다는 비싼 가야금이 성공의 기준이라는 것을 보여준 것 같아 속이 쓰리다"고 말했다.

'입시 가야금'으로 통하는 명품 가야금 때문에 학부모들의 등골이 휘고 있다. 국악계에서 소문난 명품 가야금은 국내 유일한 가야금 악기장(국악기 제작 장인) K씨의 작품을 가리킨다. 일반 가야금에 비해 맑은 음색으로 정평이 높아 유명 가야금 연주자들이 공연용으로 즐겨 사용한다. 입시생들에게도 "K씨 가야금 없이는 대학 입학도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필수 악기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문제는 가야금 값이다. K씨의 가야금 중 입시 가야금으로 통하는 고급 산조가야금 한 대는 1,500만원을 호가한다. 일반 가야금 값의 3배에 달한다. 가야금 전공에 필요한 산조ㆍ정악ㆍ25현ㆍ18현 가야금을 다 사려면 비용이 4,000만원을 훌쩍 넘는다. 더구나 얇은 오동나무로 만든 K씨의 가야금은 일반 합판 가야금(수명 10년)보다 오히려 수명이 짧다고 악기상들은 말한다.

올해 서울 B대학에 진학한 가야금 전공자 C씨는 "비싸도 K씨의 악기를 들고 가야 심사위원들에게 '소리를 아는 학생'이라는 인식을 주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구입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대입에 필요한 수상 실적을 위해서도 K씨의 악기는 필수다. 지방의 한 학부모는 "각종 대회에서도 K씨의 가야금이 유리하다는 건 이미 학부모들에게 잘 알려진 얘기"라며 "악기를 사려고 은행에 대출까지 신청했다"며 한숨을 쉬었다.

국악계에서는 비싼 악기 값이 국악의 저변 확대에 악영향을 준다는 지적과 국악기도 고급화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맞선다. 서울 유명 사립대의 한 교수는 "소질 있는 가야금 유망주들이 악기 값 때문에 연주를 포기하기도 한다"며 "그렇지 않아도 양악에 비해 저변이 좁은 국악이 더 위축될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국악계 한 관계자는 "입시생들의 고통을 덜기 위해 악기 값을 조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반면 한 국립대 교수는 "국악도 양악처럼 고급 악기를 따로 생산할 필요가 있다"며 "고급 악기와 대중화를 위한 저렴한 악기 생산은 별개의 문제"라고 반박했다. K씨는 "한 해 20대 정도 생산하는 최고급 제품 가격을 낮추라는 것은 고급 승용차를 경차 가격에 팔라는 것과 같은 이치"라며 "평소 학부모들에게 500만원짜리 가야금도 연주 실력만 좋으면 입시에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해도 잘 듣지 않는다"고 말했다.

국악계의 논쟁 속에 애꿎은 입시생, 학부모들만 등골이 휘고 있지만 대학도, 정부도 뒷짐만 지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는 "국악기 가격은 제작자가 판단해 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국악계 관계자들은 "대학들이 나서서 일반 가야금으로 시험을 봐도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는 확신을 줘야 하지만 이런 대책을 논의하는 대학이 없다"고 비판했다.

김관진기자 spiri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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