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백화점에서 근무하는 김모(31)대리는 지난달 아찔한 경험을 했다. 임신 중 합병증 증세를 보인 아내의 체력이 급격히 떨어져 자연출산을 포기하고 제왕절개수술로 어렵게 아이를 출산한 것. 소중한 아이를 얻은 기쁨도 잠시, 김 대리는 다시 걱정에 휩싸여야 했다. 아내의 건강회복을 위해 철저한 산후조리가 필요했지만, 처가가 지방에 있는 탓에 아내를 살뜰히 보살펴줄 사람이 사실상 없는 상황이었다.
김 대리의 고민을 해결해준 건 회사였다. 현대백화점이 지난 8월부터 운영중인 '아빠의 달'이라는 제도를 통해 남성 직원들도 아내 출산 후 30일간 유급휴가를 신청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김 대리는 "아내의 건강상태 때문에 산후조리원에서도 격리된 공간을 사용해야 했는데 이 경우 감정기복이 심해질 수 있다고 해 근심이 컸다"며 "휴가를 통해 산후조리 중인 아내 곁을 지키게 되니 아내와 아이 모두 안정을 찾게 됐다"고 말했다.
출산일에 맞춰 다음달 유급휴가를 떠날 예정인 현대백화점 직원 조영현(32)씨 역시 "아빠의 달 제도가 도입되면서 회사업무와 가정 일에 모두 충실할 수 있게 됐다"며 "마음 편히 아내의 산후조리를 돕고 회사에 복귀할 수 있어 업무효율에도 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밝혔다.
국가적 화두가 된 '일과 가정의 양립'을 위해선 여성 배려 뿐 아니라 남성 배려도 절실한 상황. 가정문제가 여성만의 전유물이 아닌 만큼, 가사나 가정문제해결을 위해 '아빠지원책'을 채택하는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
특히 MBC의 , KBS의 등 아빠들의 육아를 소재로 한 TV예능프로그램들이 큰 인기를 끌면서 북유럽형 '스칸디 대디'가 새로운 기업문화로 떠오르고 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일반기업에 다니는 직장인 중 육아휴직을 낸 남성 수는 1,790명으로 전년보다 27.7% 증가했다. 공무원의 경우 지난해 2,297명이 남성 육아휴직을 내 전년에 비해 2배 가까이 늘었다. '육아는 여성의 몫'이라는 인식이 바뀌면서 공동 육아와 가족생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아빠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기업들이 운영중인 '아빠 육아' 프로그램은 휴직 외에도 다양하다. 글로벌 헬스케어 기업 머크의 한국법인 한국MSD은 맞벌이 부부를 위해 지난 2011년부터 사내 육아클래스 '육아의 달인'을 개최하고 있다. 아내와 함께 육아의 달인에 정기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예비아빠 손형준(34)씨는 "외부에서 초빙된 전문가로부터 영유아 예방접종 정보, '베이비 마사지' 등 의외로 준비가 소홀할 수 있는 부분을 집중적으로 교육받는다"며 "따로 시간을 내기 어려운 맞벌이 부부에게 회사에서 제공하는 교육이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사내 직원들의 높은 참여율에 힘입어 지난 8월에는 '육아의 달인 시즌 2' 격인 건강 클래스를 열고 신손문 관동대 제일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가 육아 상식 및 모유 수유의 중요성 등에 대해 강의했다.
기아자동차 광주공장은 지난 7~8월 세 차례에 걸쳐 매주 토요일 '아빠와 함께 하는 신나는 과학교실'을 운영했다. 아빠와 아이 200여명이 기아차 광주공장 내 스포츠문화센터를 찾아 ▦태양광 자동차 ▦유선 복싱로봇 ▦무선 거미로봇 등을 함께 조립하고 참가자들끼리 레이싱ㆍ복싱 대회 등을 열어 경합을 벌였다. 과학교실에 참석했던 김수현(42)씨는 "로봇 조립이 워낙 생소하고 어렵다 보니, 아들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배우는 입장이었다"며 "이 과정에서 수평적인 관계가 성립돼 아들과 시시콜콜한 고민까지 터놓을 정도로 많은 대화를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기아차는 이 밖에도 아빠와 자녀가 함께 1박2일 캠핑을 떠나는 '부자(父子)캠프', 자녀 학교를 방문해 1일 강사로 활약하는 '아빠는 기아인'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스칸디 대디(Scandi Daddy)
육아에 적극 참여해 자녀와 최대한 많은 시간을 보내는 스웨덴 노르웨이 등 북유럽 스칸디나비아 국가의 아빠들을 지칭하는 신조어. 이들 나라에선 아빠들의 육아휴직이 국가적으로나 기업단위에서 보편화되어 있다. 2011년 영국 일간지 에 보도된 '타이거 맘은 잊어라, 스칸디 대디가 온다'에서 유래했다. 타이거 맘이란 자녀에 대해 스파르타식 교육을 하는 열성엄마들을 뜻한다.
박주희기자 jxp938@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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