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혼슈(本州)섬의 최북단 아오모리(青森)현 무쓰시(市). 25일 시내에서 차로 20분 가량 이동하자 가로 131m, 세로 62m, 높이 28m의 흰색 건물인 리사이클연료비축센터가 모습을 드러냈다. 12월부터 일본 내 50여개 원전에서 나오는 사용 후 핵연료봉을 배로 옮겨와 보관할 중간저장시설이다. 26만㎡의 시설 부지를 전체를 두 겹의 벽이 둘러싸고 있었고 입구는 경비원이 철통 보안 중이었다.
일본에서 처음 만들어진 사용 후 핵연료 중간저장시설인 이 곳은 일본에서 연간 배출되는 1,000톤의 폐연료봉 중 재처리에 사용되는 800톤을 제외한 나머지 200톤을 재처리 전까지 보관하며 높은 열과 방사선량을 떨어뜨리는 곳이다. 지금까지는 우리나라처럼 각 원전 부지마다 마련된 수조에서 임시 저장하다 재처리를 했지만 용량의 한계로 3,000톤까지 저장이 가능한 중간저장시설을 따로 지었다.
폐연료봉은 가장 위험성이 높은 고준위 핵폐기물에 속하는데, 이 곳의 방사선 차폐방법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원통 모양의 금속 저장 용기(캐스크)에 폐연료봉을 10~12톤씩 담아 두께 1.5m의 콘크리트 건물 안에 세워 놓고 환기시설을 통해 들어오는 자연풍으로 열을 식힌다. 두께 25㎝의 금속 캐스크는 9m 높이에서 떨어지거나 800도의 열, 200m 깊이의 해저에서도 견딜 수 있도록 만들어졌고 그 안은 헬륨가스로 채워 부식과 방사선 유출을 막는다. 캐스크 표면의 방사선량은 2mSv(밀리시버트) 정도로 낮지 않지만, 캐스크에서 외부인 출입이 차단된 건물 밖 울타리까지는 최소한 130m 거리를 유지해 울타리부터는 자연 방사선량 수준이다. 지하나 암반 속이 아닌 해발 16m의 지상에 지어진 것도 그만큼 안전성에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운영사인 리사이클연료저장(RFS)의 가쓰오 야마자키(克男山崎) 상무는 "모터 등 전기를 이용하는 설비가 아니라 자연 바람으로 식히기 때문에 후쿠시마 원전처럼 재난으로 전기가 차단돼도 시설에 문제가 생길 일이 없다"고 설명했다. 물을 쓰지 않아 냉각수 오염이 없다는 것도 장점이다.
무엇보다 주목할 점은 시설 유치 과정이다. 고준위 핵폐기물 시설이 들어오는데도 주민들의 반대가 심하지 않았다. 여기에는 20년 넘게 무쓰시장으로 일한 스기야마 마사시(杉山肅) 시장의 공이 컸다. 집집마다 방문해 주민 설명회를 갖고 캐스크 안전성 실험 현장을 주민들에게 개방하는 등 주민들의 불안에 적극 대응했다. 또 시설을 유치하면서 정부 교부금 등 지역 사회에 들어오는 연간 30억엔(345억원)을 시의 인프라 확장이 아니라 시립병원의 재정적자 해소와 주민들의 교육비에 투자하기로 결정한 점도 주효했다.
우리나라도 사용 후 핵연료를 저장하는 원전 내 수조는 총 저장용량(1만8,000톤)의 72%(1만3,000톤)가 이미 찼다. 정부는 3년 뒤인 2016년 고리 1호기를 시작으로 2024년에는 모든 원전의 수조가 포화 상태가 될 것으로 보고, 이달 말 국내 사용 후 핵연료 처리 방법을 논의하기 위한 공론화위원회를 구성할 예정이다. 김경민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무쓰시는 시설을 50년 한정으로 유치해 후손들에게 연장 여부를 결정하도록 한 것이 설득력을 높였다"며 "사용 후 핵연료 처리 방법을 고민하고 있는 우리에게 여러 시사점을 주는 사례"라고 말했다.
무쓰(일본)=글·사진 송옥진기자 cli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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