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가 28일 첫 방송하는 새 월화극 '기황후'가 사극의 사실(史實) 왜곡 논란에 휘말렸다. 고려사에서 논란이 되는 인물인 기황후와 충혜왕에 대한 통념을 드라마를 통해 완전히 뒤엎었기 때문이다.
고려 출신으로 공녀로 원나라에 보내진 뒤 원의 마지막 황제 순제의 정후가 돼 37년간 원나라를 지배한 기황후는 에 고려를 침공해 세를 확장하려 한 악인으로 기록돼 있다. 충혜왕(고려 28대왕) 역시 부친의 후처들을 강간·간통하고 내시의 아내를 범하는 등 패륜아로 묘사돼 있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공녀로 끌려갔던 고려의 여인이 천하를 다스리는 황후가 된다"는 설정으로 기황후의 성공스토리를 강조한다. 드라마를 이끌어 가는 중요한 테마 중의 하나인 기황후와 충혜왕의 러브스토리는 "황당 그 자체"라는 반응도 있다.
방영 전부터 이런 논란이 제기되자 MBC는 제작발표회 하루 전날인 지난 24일 충혜왕을 '왕유'라는 가상의 인물로 부랴부랴 바꾸기까지 했다. 한희 PD는 "논란이 많고, 실제 사건과 허구가 섞인 이야기라서 인물을 바꿨다"고 말했다. 장병철 작가도 "극중 기황후의 이름인 기승냥도 창작하는 등 70% 이상은 허구의 인물"이라며 '픽션'을 강조했다.
하지만 드라마의 시간적 배경이나 역할이 뚜렷해 주인공들을 '기황후' '충혜왕'으로 유추하기 어렵지 않다. 제작진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역사 왜곡까지 해가며 억지 드라마를 만들 필요가 있느냐는 비판이 수그러들지 않는 이유다.
사극에서 곧잘 역사 왜곡 문제가 불거지는 건 다큐멘터리와 달리 사실 고증을 위한 자문단을 두지 않기 때문이다. KBS 관계자는 "역사 다큐멘터리 등은 사실을 기반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기에 감수를 꼼꼼히 받는다"면서도 "사극은 작가적 상상력이 중요하기 때문에 오히려 자문단을 두면 발목이 잡힐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런 의도적인 고증 회피에는 역사를 왜곡하더라도 재미만 있으면 된다는 상업주의가 깔려 있다. 로고스필름의 유홍구 총괄 PD는 "기황후라는 소재는 꽤 흥미로우며 해외에 수출할 때도 매력적인 스토리"라고 말했다.
하지만 내년 1월 방송하는 KBS 대하사극 '정도전'은 '기황후'와는 전혀 다른 길을 택해 눈길을 끈다. 조선 건국 공신 정도전의 이야기를 사실에 기반한 정치 사극으로 만들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제작진은 최근 대본 리딩 현장에서 배우들과 함께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의 강의까지 들었다. 제작진들은 이른바 '정통 사극'으로도 충분히 시청률을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강은영기자 kis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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