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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과학상을 기다린다] <2> 돈이 문제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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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과학상을 기다린다] <2> 돈이 문제는 아니다

입력
2013.10.27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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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와 연구원, 학생 100여 명이 소속된 뇌인지과학연구사업단을 이끌고 있는 이춘길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요즘 고민이 이만저만 아니다. 사업단 종료 시점이 2015년이라 연구를 이어가려면 당장 내년엔 새 연구 프로젝트가 마련돼야 하는데, 아직 윤곽조차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사업단 소속 다른 뇌과학자들도 정부 지원이 끊기면 자칫 수년 동안 애써 쌓아놓은 연구 기반이 더 활용되지 못한 채 묻힐까 노심초사다.

뇌인지과학연구사업단은 2006년 참여정부 시절 과학기술부가 뇌 연구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출범시켰고, 해마다 평균 12억원씩이 투자됐다. 국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나서주니 당연히 뇌과학자들은 사기 충천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뇌과학에 대한 정부의 관심은 점점 시들해졌고, 이젠 뇌과학자들이 어떻게 하면 소규모라도 안정적으로 지원받을 수 있을까 걱정하는 처지에 놓였다.

정부가 바뀔 때마다 과학자들은 혼란스럽다. 연구비를 비롯한 각종 지원과 사회적 관심이 집중되는 분야가 5년마다 달라진다. 국가 연구비에 의존해야 하는 과학자로선 '대세'를 따를 수밖에 없다. 이래선 노벨과학상 수상은 어림도 없다는 걸 잘 알면서도 말이다.

주목 받다가 찬밥 됐다가

2001년 국가과학기술위원회는 '6T' 정책을 발표했다. 정보기술(IT)과 생명공학기술(BT), 나노기술(NT), 환경공학기술(ET), 우주항공기술(ST), 문화콘텐츠기술(CT)의 6가지 기술을 중점 육성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이후 참여정부가 국가 차원의 대규모 뇌 연구기관(현 한국뇌연구원)을 세우겠다는 청사진을 내놓고, 연구개발(R&D) 사령탑 역할을 자임한 과학기술혁신본부를 만들자 많은 연구자들의 관심이 6T에서 뇌과학과 '혁신'으로 몰려갔다. 이명박 정부 땐 과학계의 화두가 '녹색'과 '융합'으로 급변하면서 급기야 교육부와 과학기술부가 합쳐졌다. 박근혜 정부 들어선 과학기술이 방송통신과 한 부처(미래창조과학부)에 들어갔고, 연구자들은 창조경제에 기여할 방안을 찾기 바쁘다.

6T라는 용어는 이제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과학기술혁신본부는 자취를 감췄으며, 한국뇌연구원은 이명박 정부 때 입지를 둘러싸고 지역 간 갈등이 심해지면서 설립이 지연되는 등 난항을 겪었다. 2011년 글로벌 녹색성장 서밋의 기조연설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설립을 선언한 뒤 급하게 만들어진 녹색기술센터는 출범 후 수개월이 지나도록 정원도 채우지 못한 채 뚜렷한 기능도 성과도 없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지난 정부가 제시한 중점 분야가 새 정부에선 찬밥 신세가 되는 과정이 5년마다 되풀이돼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울 시내 대학의 한 과학자는 "정부가 어떤 분야에 중점을 두느냐에 따라 연구 환경이나 연구자들 사이의 분위기가 크게 달라진다"며 "객관적 성과가 미진하다거나 사회에 그다지 기여하지 못한다는 등 여러 원인이 종합적으로 작용해 중점 연구 분야가 자발적으로 형성되는 게 바람직할 텐데, 우리 과학계에선 정부 정책에 의해 갑작스럽게 일방적으로 정해지는 경향이 강하다"고 말했다.

기초과학연구원에 거는 기대

과학자 스스로 정책 방향과 관계 없이 뚝심 있게 자기 연구를 이어가면 되지 않겠느냐는 반문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기부나 민간 투자가 활발한 외국과 달리 국내 과학자들은 대부분 국가 연구비에 의존한다. 연구비를 조금이라도 더 타려면 정부가 중점을 두는 분야와 자신의 연구를 연결시키는 게 유리하다. 특히 정부가 출연한 연구기관들은 더욱 그렇다.

대전에 있는 정부 출연 연구기관에서 일하는 한 과학자는 "요즘 출연연 연구자들은 어떻게 하면 기초연구를 중소기업과 연계해 경제적인 효과를 낼 수 있을지에 많은 역량을 쏟고 있다"며 "모든 과정을 계량화, 정량화해 성과를 내야 하는 이런 작업은 사실 노벨상과는 거리가 멀다"고 말했다. "많은 노벨상 수상 업적들처럼 도전적이고 창의적인 연구, 양적 성과보다 질적 가치가 더 의미 있는 연구를 해보기는 더 어려워진 상황"이라는 것이다.

이 해묵은 문제를 풀기 위해 2011년 기초과학연구원(IBS)이 출범했다. IBS 연구단에 선정되면 10년 동안 30억~120억원의 연구비를 안정적으로 지원받는다. "연구 성과를 질 중심으로 검증하고 연구 외 행정 부담을 최소화해 연구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게 IBS의 목표다. 그런데 최근 IBS를 둘러싸고도 일부 갈등이 빚어졌다. 대규모 연구비가 제한된 50개 연구단에게만 돌아가는 건 문제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 것이다. 과학자들 사이에서는 "지난 정부가 IBS의 운영이나 지원 방식에 대해 과학자들의 공감대를 얻지 못한 바람에 뒤늦게 이런 갈등이 불거졌다"며 "IBS가 본래 취지대로 지속적, 안정적으로 운영되기 위해선 국내 연구자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해야 한다"는 견해가 많다.

투자 규모에 비해 질적 수준 낮아

뇌연구원에 이어 IBS까지 우리나라의 기초과학 투자 규모?사실 과학 선진국 못지 않다. 미국 과학 학술지 '사이언스' 18일자는 GDP 대비 R&D 투자 비율 4.03%로 세계 2위, 국가 R&D 투자액 450억달러로 세계 6위라고 한국을 소개했다. 하지만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국제경영개발원(IMD)이 60개 국가를 평가해 매년 발표하는 '세계경쟁력연감'의 과학 인프라 분야 순위는 하락 추세다. 2009년 3위에서 2011년 5위, 올해 7위를 기록했다. 세부 지표를 보면 R&D 투자 비중이나 인력 규모, 논문과 특허 수 같은 양적 수준은 계속 10위권 안에 머물지만, '과학자가 국가에 매력을 느끼는 정도'나 '과학기술 법률이 혁신을 지원하는 정도' 같은 질적 수준은 20위 밖으로 밀려나 있다.

전문가들은 연구자들이 국내 환경에 만족하지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로 과학기술 철학의 부재를 꼽는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중점 연구 분야가 달라지는 것이나 투자 방식 등에 대한 과학계 전체의 공감대 부족도 같은 맥락이라는 것이다. 노벨상을 가장 많이 배출한 미국은 도전적, 창의적 연구를 위해 과학자들의 자율성을 강조해야 한다는 철학이 1950년대부터 국가 과학기술 정책의 핵심으로 일관성 있게 자리잡고 있다. 유럽 노벨상의 산실로 꼽히는 독일 막스플랑크연구회는 예산의 약 90%를 연방정부와 주정부에서 지원받는데도 불구하고 연구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보장하는 확고한 운영 철학을 갖고 있다. KISTEP 차두원 정책기획실장은 이 같은 내용이 담긴 최근 보고서를 통해 "5년 집권 기간을 넘은 장기 관점에서 과학기술 정책을 연속성 있게 추진할 수 있는 철학적 기반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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