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기관들의 대선 개입의혹이 갈수록 확산되고 있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침묵 모드'로 일관하고 있다. 하지만 주요 현안에 대해 박 대통령이 진상 규명 의지는 물론 개인적인 견해를 거침없이 밝힌 적도 많다. 이 때문에 박 대통령이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쟁점현안들을 대하는 태도를 달리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박 대통령이 제기된 의혹에 대해 철저한 진상 규명을 강조한 대표적인 예는 지난 9월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혼외자 의혹' 때다. 당시 채 전 총장은 법무부의 감찰 발표에 전격적으로 사의를 표명했는데, 이에 대해 박 대통령은 복심(腹心)으로 통하는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을 통해 "사표 수리보다 진실 규명이 우선"이라고 밝혔다. 이후 법무부는 현직 검찰총장에 대한 초유의 감찰을 실시해 채 전 총장을 '도덕적 문제아'로 낙인찍었다.
특히 박 대통령은 당시에 특정 견해를 자신의 의견으로 적극 수용했다. 이른바 '채동욱 사태'가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 수사에 대한 여권의 불만에서 비롯됐다는 비판여론도 상당했지만, 박 대통령은 같은 달 16일 여야 대표와의 3자 회담에서 "검찰 수장이 의혹이 있는데 어떻게 일을 할 수 있으며 이를 방치할 수 있겠느냐"며 채 전 총장의 도덕성 문제로 단정했다.
하지만 이는 김학의 법무차관의 별장 성접대 의혹에 대한 대응과는 다른 모습이다. 김 전 차관의 경우 임명 전에 이미 경찰이 수사중이었는데도 임명을 강행했고, 본인이 사표를 제출하자마자 곧바로 수리됐다.
2007년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 실종 사건에 대해서도 박 대통령은 적극적이었다. 박 대통령은 지난 8월6일 국무회의에서 "중요한 사초가 증발한 전대미문의 일은 국기를 흔들고 역사를 지우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시각에 따라 원칙론을 재확인한 것으로 볼 수 있지만, 당시 논란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포기 발언이 있었다"는 새누리당의 주장으로 정치권 전체가 정쟁의 소용돌이에 빠졌던 상황의 연장선이었다는 점에서 실질적으로는 한쪽 편을 든 것이다.
그런데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과 관련해선 3자 회담에서 "국정원에 도움 받은 게 없다"고 선을 그은 후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사이버사령부의 대선 개입은 물론 국정원ㆍ군ㆍ새누리당 대선캠프와의 관련성을 의심케 하는 대목들이 드러나고 있는데도 진실 규명과 책임자 처벌에 대한 의지조차 명확히 표명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지금의 혼란한 정국에서 가장 중요한 건 박 대통령이 확고한 진상규명 의지를 표현하고 책임자 처벌을 약속하는 것"이라며 "침묵이 길어질수록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대통령의 태도가 달라진다는 오해를 살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한국갤럽이 21~24일 실시한 주간 정례조사 결과 박 대통령의 직무수행에 대한 긍정평가는 전주에 비해 3%포인트 하락한 53%로 조사됐다. 지지율이 최고치였던 9월 둘째주(67%)에 비해 무려 14%포인트나 급락하면서 51.6%인 대선 득표율에 근접했다.
양정대기자 torc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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