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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80년대생이 경험한 진보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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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80년대생이 경험한 진보정치

입력
2013.10.25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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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선(참여연대 팀장)"진보정당 행사 가면 NL·PD 얘기 나와… 술자리선 싸우기도"노정태(자유기고가)"수도원 같은 분위기… 자기희생 정도로 사람 판단해선 안 돼"한윤형(미디어스 기자)"새로운 진보정치 잘 모를 땐 인정하고 암중모색해야"

2004년 민주노동당 소속으로 국회에 진출한 10명 중 가장 나이가 적은 조승수(50) 전 의원의 주장이다. '전후세대'란 NL(민족해방계열)과 PD(민중민주계열)의 낡은 대립구도로부터 자유로운 세대다. "한국 사회의 문제를 있는 그대로 보고 해결하려는 사람들이 진보의 중심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1980년대에 태어나 2000년대 진보정당 당원으로 가입, 직ㆍ간접적으로 진보정치를 경험한 세 명의 '전후세대'가 23일 한국일보 회의실에서 마주앉았다. 자유기고가이자 번역가로 활동하는 노정태(30)씨, 참여연대 시민참여팀장 이진선(29)씨, 미디어전문매체 미디어스 기자 한윤형(30)씨. 이들은 각자 진보정치를 보며 느꼈던 답답함을 거침없이 말했다.

▲한윤형=2001년 민주노동당에 입당했다. 사회 변혁에 도움이 될 것도 같았고 진성당원제도 매력적이었다. 2008년 분당 때는 진보신당으로 옮겨갔다. 당직자로 활동하지는 않았고 주로 게시판 글을 쓰는, 말하자면 당 사정에 관심이 많은 당원이었다. 지금은 진보신당에서 명칭이 바뀐 노동당 당적을 유지하고 있다.

▲이진선=2003년에 대학에 입학해 이듬해 민노당에 가입했다. 학생 때는 당 홍보지 활동도 하고 당원 인터뷰도 나가고 나름 열심히 활동했다. 2008년 분당 때는 고민이 컸지만 남았고, 국민참여당과 통합하는 데 반대했지만 참고 통합진보당에 있다가 지난해 폭력사건이 터졌을 때 탈당했다. 희망이 없어 보였다. 오래 사귄 애인과 헤어지는 기분이었다.

▲노정태=2008년 진보신당에 가입해서 노회찬 후보 선거 캠프에 가서 자원봉사를 한 적 있다. 선거운동을 하며 호빵맨 탈도 써봤다. 어영부영 당비만 내고 있다가 2010년 군 입대할 때 탈당을 했는데 지금은 진보정당에 가입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이들은 각자 겪은 바 '전전세대'의 지체, 즉 현실보다 이념과 노선과 진영을 앞세우는 관성에 답답해했다.

▲한=한국사회의 문제에 맞춰 논쟁하기보다는 예전 노선의 대립으로 치닫곤 했다. 싸잡아 욕할 수도 없는 게, 저쪽에서 결집하면 이쪽에서도 결집할 수밖에 없으니. 자본주의는 다르게 발전하는데 좌파는 적응을 못하고 있는 듯했다.

▲이=민노당 행사에 가보면 어느 순간 NL, PD 얘기가 나오고 술자리에선 싸우기 일쑤였다. 2008년 참여연대에 들어와 활동하면서도 학생운동은 했냐, 너는 NL이냐 PD냐고 묻는 이들을 본다. 처음 만나 두 시간 동안 정말 끊임없이 1990,91년 투쟁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봤다. 뭐라고 해야 되나, 한편으로는 좀 불쌍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노=지박령(地縛靈) 같은 것이다. 자기가 죽은 지도 모르고 같은 자리에 계속 붙어있는 유령 같은.

▲한=2008년 진보신당 창당 때 분당파 30, 40명이 여의도 포장마차에서 술을 마신 일이 있다. 제일 고참이 70년대 후반 학번이고 내가 막내였다. 선배들부터 차례로 민가(민중가요)를 불렀는데 처음 듣는 70년대 민가서부터 줄곧 모르는 노래만 이어지더니 1시간 반쯤 지나서야 내가 아는'청계천 8가'가 나오더라. 후배들에게 여기 와서 같이하자고 하기 참 어렵겠다는 느낌을 받았다.

대화는 뒤쳐진 이념과 정치적 무능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졌다.

▲노=과거의 운동은 한국사회 전체, 나아가 세계의 이행을 촉구하는 것이었다. 지금 와서는 다 헛소리처럼 보이지만 이를 위해 NL은 한국의 분단을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었고, PD는 계급모순을 해결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그런데 1987년 직선제를 쟁취하고 난 뒤 두 진영은 다수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의제를 제시하지 못했다.

▲한= 사실 NL, PD는 전직 NL이고 전직 PD다. 새로운 전망, 새로운 전략에 대한 고민보다는 혼자 깨어있다는 특권의식에 젖어 예전 논리를 답습하며 과거를 재생산하는 데 급급했다. 90년대 선배에게 들은 얘기 중 인상적이었던 게 '운동권이 동년배를 설득할 자신이 없으면 후배에게 아첨을 한다'는 거였다. 졸업 후 회사원이 돼서 평범한 삶을 사는 친구에게 진보정당을 지지하자고 설득할 자신이 없으니까 자기 딴에는 후배 육성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그렇게 10여 년째 캠퍼스를 안 떠나고.

▲이=무상급식 이런 의제는 정말 아깝다. 2000년대 초반 민노당이 먼저 주장한 것인데 고생만 하고 성과는 못 챙겼다. 말 그대로 운동을 했지 정치를 한 게 아니다. 한 선배는 한이 맺혀서 화가 나서 운동을 한다고 하더라. 그 분노가 '적'이 아니라 다른 노선의 동료에게 표출되곤 했다. 정치를 한다면 달라져야 하는 거 아닌가. 분당 됐을 때 통합진보당 어떤 분을 섭외하면 진보신당은 섭외가 안 됐다. 보좌진들은 같이 술자리도 안 한다. 뭐 하자는 건가 싶었다.

▲노= 정치에 100%는 없다. 왕도 그렇게는 못한다. 정치는 주고받는 과정인데 진보정당은 그걸 못했다. 정치에 막 뛰어들면서 짊어진 사명이 너무 막중해 운동이 아닌 정치의 룰을 학습할 기회가 없었다.

▲한=역량에도 한계가 있었다. 2007년 대선은 정말 아쉬웠다. 이명박 대세론이 강하고 정동영 후보의 지지율은 높지 않아서 비판적 지지론이나 사표론이 힘을 발휘하기 힘든 구조였다. 그런데 권영길 후보가 NL의 지지로 대선 후보가 되고 코리아연방공화국을 내세웠다. 종북세력으로 비치니 아무리 진보정책을 열거해도 부각이 안 됐다. NL이 그렇잖나. 죽어도 안 되는 문제라도 삭발하고 단식하면 사람들이 좋아할 거라는 사고방식. 결국 대선 참패의 충격과 분노 때문에 2008년 분당까지 갔다.

▲노=정당은 정책을 요구하는 사람들의 정치적 성향을 생각해야 한다. 무상의료의 가장 큰 수혜자는 가난한 노인들인데 대부분 반공이다. 이 분들은 무상의료는 좋지만 코리아연방공화국을 말하는 사람을 찍지 않는다. 정책이 좋아도 표는 사라지는 것이다.

이들은 새로운 진보정치를 이야기하며, 새로운 전망 못지 않게 새로운 자세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이대론 안 된다는 것은 알지만 그럼 어떻게 해야 되냐 라고 하면 뾰족한 답이 없다. 정규직 노조 중심으로는 안 된다는 얘기는 하지만 비정규직, 자영업자를 어떻게 규합할 것이냐고 하면 답이 궁하다. 그람시의 말마따나 옛 질서는 사라졌는데 새 질서는 오지 않은 상황이다. 전후세대라고 말은 하지만 저희도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른다. 잘 모르는 시기에는 잘 모른다는 걸 인정하고 암중모색하는 게 책임감 있는 태도다.

▲노=우선 386의 의제에서 탈피해야 한다. 가령 한국 사회에서 가장 약한 고리 가운데 하나가 군대문제다. 젊은 남성들은 군대에 대한 막대한 피해의식이 있다. 이게 정치적으로 수렴되지 않고 막 흘러가면 일베 같은 극우적 행태로까지 간다. 이걸 유의미한 정치적 담론으로 재구성할 의무가 진보에게 있다.

▲이=진보정치뿐 아니라 시민운동에서도 위기라는 얘기를 많이 한다. 지금 6년차인데 딱 허리다. 사무처장이 80년대 후반 학번이고 그 중간이 없다. 왜 활동가들이 떠나냐 얘기들을 많이 한다. 아는 사람이 한 조직에 있다가 작년에 내부적으로 문제제기를 했는데 선배들에게 안 받아들여져서 결국에는 나왔다. 문제의식을 왜 내부에서 공유할 수 없는지 분노를 많이 했다. 또 요즘 애들은 야근을 안 한다는 식으로, 효율성을 떠나 무조건 열정을 요구한다. 왜 꼭 자기 희생 속에서 일해야 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

▲노=진보 정치를 한다는 게 무슨 수도원이나 결사체에 들어가는 것 같은 분위기가 있다. 80년대에 콜라를 마시면 미제의 똥물을 마신다고 했던 것의 연장이다. 진보에 사람의 단계가 있다면 맨 위에 열사가 있고 맨 밑에 반동분자가 있는 식이다. 이 판단의 축은 자기희생이다. 전태일 열사 등의 희생이 정말 큰 영향을 끼쳤지만 이제 사람을 얼마나 희생하는지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개인의 행복과 공익의 추구를 같이 가져갈 수 있는 인간형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희생해야 하니까 운동도 안 되는 게 아닐까.

이들은 '전후세대'라는 구분에도 선뜻 동의하지 않았다. 진영간 감정의 골은 2000년대 진보 정치를 경험한 그들 세대에게 더 깊을 수 있다고 했고, 막연한 세대론으로 책임을 전가한다는 느낌이 든다는 얘기도 했다. 이석기사태를 두고 '곪은 상처를 도려낼 수 있는 좋은 계기'라는 식으로만 말하는 것은 과도한 정신 승리라고도 했다. 어떻게 도려낼 것인지 먼저 말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역시민 사회에 광범위하게 포진한 '선량한 NL(진영에는 속하지만 '종북'자체를 모르거나 동의하지 않는 NL)'을 어떻게 결집할 것인가도 진보정당 운동이 고민해야 할 숙제인 듯했다.

류호성기자 rhs@hk.co.kr

박소영기자 sosyo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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