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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숙의 만남] 뇌전증 편견과 싸우는 김흥동 연세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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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숙의 만남] 뇌전증 편견과 싸우는 김흥동 연세대 의대 교수

입력
2013.10.25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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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에 발작 증세 길어야 총 20분장애로 생기는 문제는 가장 적은데 취업 애로 많아 소득 가장 적은 장애공무원 진입 문도 완전히 잠겨인권위에 제소하자는 말도 있지만 다들 쉬쉬하느라 나서는 사람 없어아이의 경우 엄마가 종일 돌보느라 직업 잃고 갈등으로 가족붕괴 많아한국이 치료·연구에서 선도하는데 국가의 체계적인 지원은 거의 없어평창동에 아내와 '따미가 카페' 운영손님들에게 뇌전증 오해도 알리고 수익금은 모두 환자·가족 위해 쓰죠

서울 종로구 평창동, 북한산 둘레길 바로 아래 골목으로 마을버스를 타고 들어가면 붉은 땀을 삐질삐질 흘리는, 매우 만화스러운 성인남자의 조형물이 나타난다. 이 조형물의 이름은 땀흘려 가족을 먹여살리는 데서 유래했다는 '따미'. 우리나라 일하는 아버지들을 상징하고 있단다. 계단 아래로 내려가면 '따미가'카페가 나온다. 목금토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여러 가지 차를 팔고 세미나와 전시 공연 개인모임에 장소를 대관하기도 한다. 실내에는 영상시설과 음향시설 피아노 드럼까지 갖춰놓았다. 한국음악과 영화사에 대한 정기강좌도 현재 진행중이며 그림그리기도 배울 수 있다. 앞으로 춤과 요리 강습도 만들 예정.

이곳은 세계적으로 알려진 어린이 뇌전증(간질) 전문가인 김흥동(55) 연세대 의대 교수가 아내인 정혜진(55) 작가와 함께 뇌전증의 문제를 널리 알리기 위해 9월 6일 문을 열었다. 정 작가가 만든 캐릭터인 '따미가족'에서 '따미가'카페가 나왔고 '따미'의 모델이 바로 김 교수이다. 따미가 카페의 수익금은 모두 어린이뇌전증 환자와 가족을 돕는 데 쓰인다. 김 교수는 대한뇌전증학회 회장(2011~2013)을 지냈으며 국제의료진 모임인 국제간질퇴치연맹에 국내 의사로는 최초로 참여하였으며 현재도 치료분과위원으로도 활동중이다. 그가 쓴 소아간질에 대한 국제논문 80여편이 SCI(과학인용색인)급 저널에 실려있다.

-여기는 원래 살림집이었나요?

"지금도 뒤쪽은 집이에요. 집사람이 조각작품을 많이 만들어서 규모가 큰 작업을 하고 전시하는 공간으로 4년 전에 아래채가 널찍한 이 공간을 마련했어요. 그런데 최근에는 컴퓨터 작업을 많이 해서 이 공간이 비어있어서 그걸 카페로 만들었어요. 저는 병원에 주로 있고 이걸 움직이는 건 다 저 사람(아내)이 합니다."

-왜 굳이 카페를 만드신 거예요?

"뇌전증은 사회적 편견이 심하다는 게 제일 큰 문제거든요. 편견을 없애려면 많은 사람이 질환에 대해서 잘 아는 게 중요하다 생각하고 먼저 어린이 뇌전증 지원모임인 다누리를 만들었어요. 다누리 활동을 하다 보니까 환우와 가족이 모일 수 있는 카페를 만들면 카페에 오는 손님들도 뇌전증에 대해 좀더 많이 알고 다가가게 되지 않을까 싶어서 사무국하고 의논을 했어요. 그런데 어디서 지원금을 많이 받는 단체도 아니니까 그게 가벼운 일이 아니더라고요. 다행히 저 사람이 나눔에 대한 생각이 전에부터 좀 있었어요. 그래서 이 공간을 그런 나눔의 공간으로 만들면 좋겠다고 해서 만들었지요."

-그런데 왜 간질이 아니라 뇌전증으로 부르는 건가요?

"간질에 대해 굉장히 부정적인 이미지가 일반인한테 남아있어요. 그 부정적인 이미지가 이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로서는 깨기 힘든 사회적인 장벽을 만들거든요. 사회적인 편견과 낙인을 벗어나게 하기 위해 작년부터 뇌전증이라는 이름으로 공식적으로 부르기로 했습니다. 이 병은 뇌에서 비정상적인 전기가 돌발적으로 간헐적으로 나타나면서 발작이 일어나는 걸 통틀어 말하는 것이거든요. 중국에서 유래한 간질은 정신질환과 같은 부정적인 의미를 갖고 있어서 그게 아니라 뇌의 전기상에서 생기는 일반 질환이라는 것을 일러주려고 뇌전증으로 고쳤습니다."

-많이들 걸리나요?

"역학조사를 하면 어느 나라나 유병율이 0.5%에서 1% 사이에요. 우리나라에서는 25만~50만 사이지요. 현재 보험으로 치료받는 환자는 37만명입니다. 잠재환자로 따져서 4인 가족을 잡으면 100만~200만명이 이 병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보시면 됩니다."

-편견을 깨지 못했다면 당연히 차별도 받겠네요.

"우선 취업이 잘 안돼요. 굉장히 문제가 있는 게 공무원 신체검사에 간질이 통과를 못하도록 규정이 있어요. 거기에 나오는 다른 질환들은 실제로 일을 하는데 문제가 있을 수 있거든요. 그런데 간질이라는 병은 중증도 차이가 굉장히 많아요. 매일 발작을 하는 사람도 있고 1년에 두 세 번 하는 사람도 있고 약을 먹으면 몇 년씩 안 하는 사람도 있고. 그런데도 신체검사 조항에는 간질이라는 내용만 표시되어 있으니까 누구도 공무원이 될 수 없어요. 이거 굉장한 차별이에요. 여자들은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그냥 넘어가기도 하는데 남자들은 이 병으로 군대를 면제를 받기 때문에 병력이 남거든? 그 때문에 공무원 취업이 전혀 안됩니다."

-실제로 일하는 데 지장은 없습니까?

"매일 발작을 하는 사람이라면 문제가 되지요. 그런데 고혈압 환자가 약먹고 조절이 되듯이 뇌전증 환자도 약을 먹으면 발작을 안 일으키거든요. 최소한 80%의 환자는 치료를 하는 동안 발작이 완전히 조절이 돼요. 20% 정도 중에도 아주 심한 아이들 일부, 5% 정도를 제외하고는 1년에 발작을 하는 회수가 두 세 번이 넘지 않아요. 한번 발작하는 시간이 1분에서 5분 정도? 1년에 네 번 발작을 한다고 하더라도 5분씩 20분 밖에 안돼요. 나머지 시간에는 아무 문제가 없어요. 다만 그 발작이 언제 발생할지 모르기 때문에 그게 본인들이 굉장히 심리적으로 압박을 받는 부분이고 일반인들 경우에는 발작을 보면 당황하게 되고 당황하게 되면 이 사람 이상하다 피하게 되고 그런 게 사회적인 경험에서 굉장히 큰 문제로 남게 되거든요. 결혼이나 친구관계를 맺는 데에도 문제가 생기니까 일상에서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데에도 감추게 되는 거지요. 장애로 인해 생길 문제는 가장 적은데도 가장 취업에 애로가 많아서 소득이 가장 적은 장애가 뇌전증이기도 해요. 대신 직업을 얻기가 힘들기 때문에 환자들이 직업에 대한 애착도가 굉장히 높아요. 실제로 생산성이 일반인에 비해서도 굉장히 높아요. 이 병 앓는 사람을 잘 지원하면 사회적 비용면에서 굉장히 긍정적인 변화가 생겨날 수 있어요."

-편견을 깨려는 노력을 해야 할 텐데요

"이 병은 알리는 순간 사회적인 편견에 노출이 되기 때문에 환자가 굉장히 불이익을 받아요. 그러니까 다들 숨기는 거예요. 아까 이야기한 공무원 신체검사 항목 문제도 국가인권위에 제소하자 이런 이야기도 했는데 그러면 환자들이 나서줘야 하거든요. 나서는 환자가 없어요. 환자 중에는 명문대 나오고 지금 교사인 사람도 있는데 굉장히 똑똑해요. 이 분도 병력을 숨겼어요. 현직 국회의원도 치료를 받는 사람이 있어요. 그런 사람이 나서서 이 병이 아무 것도 아니고 다른 질환하고 똑같은 병이고 이 병 자체 때문에 차별을 받을 필요가 없다는 분위기를 만들어 나가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런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실제로 많아요. 그런데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스마트한 사람들은 절대 이런 목소리를 내지 않아요. 정말 도움을 많이 받아야 할 사람들은 노인이나 아이들인데 그런 사람들은 스스로 목소리를 낼 능력이 없으니까 계속 고통을 당하고. 그래서 세계적으로도 그런 이유 때문에 일반인들한테 친숙해지지 않는 그런 질환이 되고 있습니다."

-잘 안 알려지면 어려움이 많은가요?

"뇌전증이 신경질환 중에 치매 다음으로 많은 병이거든요. 파킨슨병은 뇌전증 환자의 10분의 1도 안돼요. 루게릭병은 1,000분의 1도 안되고. 뇌전증은 정말 흔한 병이고 싸우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은데 지원은 이런 병의 10분의 1도 안될 걸요. 파킨슨병은 마이클 제이 폭스가 '파킨슨병에 걸렸으니까 도와달라' 그런 후 사회적인 지원과 관심이 쏟아졌지요. 미국에서는 오바마 대통령 선임고문이었던 데이비드 엑설로드의 딸이 뇌전증 환자라는 게 알려지면서 달라졌어요. 오바마 정부가 찾아보니 수요는 많은데 지원이 없는 질병인 것을 알고 그때부터 연구비 지원이 10배 이상 올라갔어요. 연구에 투자되면 더 많은 환자들이 건강하게 살 기회가 열리거든요. 뇌전증은 대부분 어릴 때 발병하는 데 빨리 발견해서 제대로 치료를 하는 게 중요해요. 발병한 후에는 재활과 사회복귀를 돕는 작업이 이뤄져야 하고요. 정부가 지원하는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해요. 치매지원센터는 구마다 있잖아요. 뇌전증 지원센터는 전국에 하나도 없어요."

-치료는 다 받을 수 있나요?

"의료보험 혜택은 다 되는데 난치성질환인데도 불구하고 정부가 치료를 책임진다고 한 '4대 중증질환'에서 빠졌어요. 4대 중증질환은 박근혜 정부가 건강보험으로 치료를 보장한다는 암 심장질환 뇌혈관질환 희귀난치성질환을 말하는 데 그 중 희귀난치성 질환에 여러가지 병명이 예시가 되어 있거든요. 난치성 뇌전증은 국제기준에서는 분명 희귀난치성 질환인데 우리나라 기준에는 빠져 있어요. 희귀난치성질환이 되면 모든 진료에서 10%만 부담하면 되거든요. 가뜩이나 어려운 살림에 더 힘들어지는 거지요."

-대부분 살림이 어렵습니까?

"그럴 수 밖에 없는 게요. 아이들이 아프니까 그것도 몇 달 사이에 해결되는 게 아니라 어떨 때는 평생 갖고 가야 되는 병이니까 엄마가 아이한테 붙어 있어야 돼요. 부모가 같이 벌어야 하는데 엄마들이 아이들한테 매달려야 하고 직업 잃게 되고 그런 걸로 갈등 생기고 그러니까 이혼을 하게 되더라고요. 가족이 붕괴가 되는 경우가 굉장히 많아요. 작년에 크라운해태에서 어린이뇌전증 지원센터를 세브란스에 만들어서 1년에 2억씩 5년동안 후원하는 사업을 같이 추진해가고 있어요. 아이들에게 병만 치료하는 게 아니라 사회적으로 건강하게 사는 걸 지원해야 합니다."

-완치는 가능한가요?

"그럼요. 조기발견을 하면 장애를 막을 수 있어요. 그래서 어떻게든 최대한 빨리 발견하고 이 병에서 벗어나게 만들어주는 게 필요해요. 석돌 넉돌 된 아이들이 엄마 아빠도 못 알아보고 괴성을 지르다가 완전히 정상으로 돌아온 경우도 있고 아무 활동도 못할 거라고 생각한 아이가 반에서 1등을 할 정도로 개선되는 경우도 있었고요."

-어떡하다가 어린이 뇌전증을 전공하게 됐습니까?

"소아신경과를 전공했는데 소아신경환자의 70% 정도가 뇌전증 환자에요. 제가 인턴 레지던트 하던 때만 해도 치료법이 별로 없었어요. 그래서 아이들의 발작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보기만 했어요. 그러다가 90년대부터 미국의 진단도구와 방법이 다양하게 나와서 그걸 곧바로 배워서 적용을 많이 했어요. 지금은 우리 치료법이 세계로 나가고 있어요."

-교수님의 치료법이 많이 세계로 보급되고 있다고요.

"뇌전증 가운데 선진국에서도 수술로 완치가 어렵다고 본 레녹스가스토 증후군을 수술로완치시키고 그 사례를 모아서 논문으로 소개했어요. 지금은 다들 씁니다. 또 당을 빼고 지방을 섭취시키는 케톤식이요법이 있어요. 몸에 쓸 당이 없어지면 세포가 지방을 분해해서 쓰게 되는데 뇌가 지방을 쓰면 굉장히 많은 에너지를 활용하면서 뇌세포의 기능이 높아집니다. 뇌전증이 뇌의 전기자극에 의해 발작이 일어나는 병이라 보통 약물을 쓰면 뇌세포의 활동을 억제하는 방식이라서 인지기능이 떨어지는 반면 케톤식이요법은 뇌세포의 기능이 좋아지니까 인지기능이 높아집니다. 그래서 많이 활용을 했는데 과거에는 케톤식이요법을 하려면 사흘을 무조건 금식을 했어요. 3일금식이 아이들에게는 엄청난 부담이 되잖아요. 그래서 실험을 해봤더니 3일금식을 하지 않아도 효과가 똑같았어요. 지금 전세계에서는 이 방식을 쓰고 있어요. 미토콘드리아(사립체) 질병으로 뇌전증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걸 세계 최초로 밝히기도 했지요. 뇌전증은 치료와 연구에서는 한국이 국제적으로 선도하는 분야인데 사회적 지원은 가장 떨어지니 안타깝지요."

-아버님(김계한)이 한센병 치료하시던 의사셨다고요.

"1950년에 세브란스를 나와서 전쟁 중에 소록도병원에 들어가셨어요. 그때는 한센병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문제이던 질환이었거든요. 제가 4남 1녀 중 막내인데 3남매와 저까지 소록도에서 태어났어요. 제가 두 살 때 여수 애향원으로 갔다가 익산병원 칠곡병원 거쳐서 초등학교 1학년 때 서울로 올라와서 보건사회부 만성병과 나병 담당을 하셨어요. 그때 (강북구) 하월곡동에서 방 두 개인가 세 개 짜리 집에서 할머니까지 모시고 8식구가 살았어요. 거의 평생 자기 집이 없었으니까 저희 형제들이 굉장히 어렵게 성장했어요. 그런데 아버지는 늘 '의사는 돈을 버는 직업이 아니다'를 강조하셨어요. 그렇다고 전 의사들이 돈을 벌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에는 찬성하지 않아요.(웃음) 우리나라 의사들이 고학력 과노동인데 노동량에 비해 너무 박봉인 건 바로 잡혀야 한다고 생각해요."

-카페 한 달 성과는 어떻습니까?

"아직은 크게 알려지지 않아서요. 그래도 여기 오셨다가 다누리 회원 가입하는 분도 있고요. 일본이랑 부산에서 이 사람 작품 보고 찾아왔다는 사람도 있어요. 국제학술회의 하고 초청연사였던 외국의사들을 이리로 모셔서 이야기를 하면 너무 감동스러워하고 여기서 받은 강연료도 전부 기부하고.(웃음) 환자는 아이들이지만 엄마 아빠 중에는 사회적으로 알려져 있는 사람이 있는데 치료만 잘되길 바라는 것 같아요. 힘을 모아서 제도를 바꾸는데 힘을 실어줬으면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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