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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원내진입 10인 어디서 무슨 생각을 할까] 눈길 끌다 눈총받는 진보의 활로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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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원내진입 10인 어디서 무슨 생각을 할까] 눈길 끌다 눈총받는 진보의 활로 찾기

입력
2013.10.25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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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5월 31일은 한국 진보정치 역사에서 가장 화창한 날이었다. 한 달여 전 치러진 17대 총선에서 당선한 민주노동당 소속 의원 10명은 이날 국회에 첫 출근을 했다. 평생을 노동운동 현장에서 활동하며 다섯 차례 구속되기도 했던 단병호 전의원은 국회 계단 앞에서 "고통 받던 현장의 노동자들이 그 동안 우리를 대변할 의원이 한두 명만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고 말하다 목이 메었다. 지역구 2명, 비례대표 8명. 이들 10명의 이력만으로도 한국 진보운동사를 쓸 수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진보정당의 밝은 날은 계속되지 않았다. 지난 10년간 잇단 분당과 합당 속에서 진보정당은 조금씩 가라앉아 왔다. 지난해 통합진보당 경선부정 논란과 폭력사태는 많은 이들을 등 돌리게 했고, 지난달 내란음모 혐의로 기소된 이석기 의원 사태는 진보진영에 '종북'낙인을 찍었다. 진보정당 스스로 간판에서 '진보'를 지워 진보정의당은 정의당, 진보신당은 노동당이 됐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의 지난주 정당지지율 조사에서 통진당은 2.2%, 정의당은 1.5%를 기록했다. 2004년 한때 민노당의 지지율은 20%가 넘었다.

어느 때보다 진보정당의 앞날이 캄캄한 요즘, 2004년의 저 10명은 어디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10명 중 절반은 당적이 없었다. 정당정치를 떠난 이들은 현장으로 돌아가 있었다. 권영길 전 의원은 보편적 복지를 외치며 다시 길 위에 섰고, 단병호 전 의원은 노조 활동가를 기르고 있고, 강기갑 전 의원은 고향에서 밭을 일구고 있다. 유일한 현역 국회의원인 심상정 의원 등은 새 정당에서 진보정당의 활로를 찾고 있다. 이들은 진보정치의 위기에 반성과 비판이 뒤섞인 분석을 내놓았다. "낡은 이념 갈등을 넘어서지 못하고 결국 분당의 길로 갔다" "내부의 이견을 조율할 수 있는 정치력과 리더십이 부족했다" "북한에 대해 국민이 납득할 수 없는 주장을 반복했다" 하지만 아무도 이제 무엇을 해야 한다고 명확하게 말하지는 못했다. 이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그 답을 찾기 위해 암중모색 중인 듯 보였다.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그 말이 딱 들어맞았다"■ 9월 정계 은퇴 선언한, 진보정치의 얼굴 권영길

지지율 20% 넘던 민노당NL-PD 정파 패권주의에 갇혀 2008년 분당되며 국민 마음 떠나통진당의 절대 다수는 평등·자주국가 위해 함께했던 동지지금도 손잡고 가야 할 사람들박근혜정부서 복지의 틀 갖추면 진보정권에서보다 반대 강도 약해지금이라도 공약 실천 하기를…

권영길(72) 전 의원은 한국 진보정치의 얼굴이다. 그는 1995년 민주노총 초대 위원장을 지냈고 2000년 민주노동당 첫 대표가 됐다. 1997년부터 세 차례 연속 진보진영 대선후보로 나섰고, 민노당 최초로 지역구 국회의원 재선 기록을 세웠다. 지난달 그는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사단법인 '권영길과 나아지는 살림살이(나살림)' 창립식에서 그는 "나는 정당 정치를 마감했다. 이제는 그 길에 들어서지 않겠다"고 말했다. 또 "지금 진보정당은 사실상 사망선고를 받은 것과 다름없다"고도 했다. 지난주 서울 종로구에 있는 '나살림'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정계 은퇴를 선언했는데.

"지금 내 입장에서 정계은퇴다 뭐다 얘기하는 것 자체가 주제 넘고 외람된 얘기다. 이미 2011년 6월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사실상 정계를 떠났다. 그때 '진보 대통합을 이루고 단일 진보정당을 건설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어떤 공직이나 당직도 맡지 않고 평당원으로 활동하겠다'고 말했다. 지난해 당적도 정리했다"(그는 선진보통합 후야권연대를 주장하며 국민참여당이 포함된 통합진보당 창당에 반대했다.)

-지난해 경남도지사 보궐선거에 나왔는데.

"경남도지사 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가 아니면 당선되기 어려운 구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정권교체를 위해 출마했다. 정권교체 승부처가 경남이라는 분석이 많았다. 도지사를 찍으러 와서 대통령을 찍을 수도 있기 때문에 내가 출마하면 정권교체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봤다. 나는 정치활동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지난해 12월 대선과 함께 치러진 경남도지사 보궐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37.08% 득표, 62.91%을 얻은 새누리당 홍준표 후보에게 패했다.)

-나살림은 어떤 단체인가.

"나살림은 정치 단체가 아니고 보편적 복지를 위한 사회운동체 성격의 단체다. 이름처럼 교육비 병원비 걱정 없는 나라를 만들기 위한 운동체다. 전문가들이 하는 심포지엄이 아니고 거리 캠페인 위주다. 10일 이순신 장군 동상 앞에서 첫 발을 뗐다. 내가 마이크를 잡고 얘기를 하면 '요즘 잘 안 보이던데 뭐하시냐'고 와서 묻는 사람들도 있고 반응이 아주 좋다. 아파트에서 주부들이랑 대화도 하고 공장 들판 재래시장도 찾아 다니며 전국을 돌 생각이다. 10년을 목표로 잡고 있다."

-10년이면 길지 않나

"따지고 보면 길지 않다. 1997년 대선에서 보편적 복지를 얘기하고 무상교육 무상의료를 주장했다. 그때는 아무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2002년 대선 TV토론에서는 '국민 여러분 행복하십니까, 살림살이 나아지셨습니까' 물어봤다. 그 말이 국민 마음 속에 파고 들어 복지 의제가 설정됐다. 10년이 지나 2012년 대선 때는 모든 정당이 복지를 내걸었다. 하지만 다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살림살이가 나아진 게 아니라 무너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대로 가면 10년, 20년이 지나도 나아지지 않는다. 국회의원 8년 하고 정당정치를 하면서 느낀 게 있다. 정당 활동으로는 국민을 설득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복지의 우선 대상이 돼야 할 사람들이 재원은 어디서 마련하냐고 걱정한다. 이런 말을 계속 들으면서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국민운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10년을 잡은 것은 정말 끊임없고 광범위한 캠페인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라도, 한 시간을 들여서라도 설득을 하면 국민 인식이 변하고 복지 붐이 일어나지 않겠나."

-박근혜정부도 복지를 내세우고 있는데.

"실제로는 복지 공약을 파기하고 있다. 무상보육 기초노령연금 등 약속을 안 지키고 있다. 지금이라도 공약을 실천하기를 바란다. 나는 박근혜 대통령이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를 바란다. 복지 문제는 진보와 보수의 문제가 아닌데 국민은 진보의 목소리로 인식하고 있다. 박근혜정부가 복지의 틀을 갖추면 반대의 강도가 훨씬 약해지고 반발도 줄일 수 있다. 실제로 김대중 노무현 정권 때는 제대로 복지를 하지도 못했는데 비판을 많이 받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복지를 공약에 끌어안음으로써 비판이 많이 완화됐다."

-진보정당은 사망선고를 받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는데.

"노동 중심의 진보정당을 새롭게 건설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반어적 표현이었다. 현재 통합진보당 정의당 노동당 등 진보정당이 여러 개 있지만 어느 정당도 국민의 사랑을 받는 정당이 아니다. 물고기는 물이 없으면 죽는다. 모든 정당이 그렇지만 특히 진보정당은 국민의 사랑이 물이다. 지난해 총선에서 통진당 의석 수가 13석이 됐을 때 진보의 성과라거나 야권연대의 성과라고 얘기를 했는데 나는 의미를 두지 않는다. 국민들이 흔쾌히 진보정당을 희망의 정당이라고 보고 만들어진 의석 수가 아니다."

-왜 진보정당이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고 생각하나.

"안타깝게도,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말이 딱 들어맞았다. 2008년 민노당이 분당됐을 때부터다. 한때 민노당 지지율이 20%를 넘었다. 신생 진보정당이 이 정도 지지를 받는 것은 기적과 같은 일이었다. 국민들이 희망이라고 본 것이다. 그런데 분당이 되니까 국민들의 반응은 '콩알이 하나밖에 없는데 심어서 수확할 생각은 안하고 서로 먹겠다고 하면 싹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우리 국민들은 진보정당에 대해서는 엄격하다. 왜냐, 진보정당은 대안이고 희망이기 때문이다. 분당 후에도 민생정당의 모습을 보여줬다면 상황이 달라졌겠지만 정파 패권주의로 흘러갔다."

-NL(민족해방계열)과 PD(민중민주계열)의 정파 문제 때문이라는 말인가.

"정파가 나쁜 것은 아니다. NL이 갖고 있는 가치, 즉 통일을 위해 평생을 바쳤다면 자랑스러운 것이다. 또 노동계급을 위해 평생을 바쳤다면 그것도 자랑스러운 것이다. 2000년 민노당 창당할 때도 NL과 PD는 물과 기름이다, 함께하지 못한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데 창당이 됐지 않나. 민노당의 큰 공로는 도저히 화합이 불가능하다고 여긴 이 두 노선을 하나로 결합한 것이다. 문제가 생기면 때로는 얼굴 붉히고 때로는 삿대질 하고 욕설에 가까운 말을 하고 때로는 열 몇 시간씩 토론을 해서 끝내는 합의점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화학적 결합을 이루기 위해 부단한 노력과 뼈아픈 성찰이 있었고 결합이 눈 앞에 있었다. 그런데 정파 패권주의에 갇혀 마지막 단계에서 넘어서지를 못하고 다시 쪼개진 것이다. 이것이 가장 가슴 아프다. 진보 정치의 손실일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치의 엄청난 손실이었다."

-스스로는 NL도 PD도 아니라고 했는데.

"권영길은 때로는 자주파(NL)로, 때로는 평등파(PD)로 분류된다. 민노당 대표를 맡으면서 외톨이가 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한쪽에 몸을 담으면 중재자가 아니니까."

-중재를 해보니 뭐가 문제였나.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잘 됐으면 분당이 안 됐지."

정파갈등에 대한 질문이 계속되자 권영길 전 의원은 "정치 얘기는 안 하겠다고 미리 말하지 않았냐"며 언성을 높였다. "할 얘기는 다 했다"고 말한 그는 이석기 사태로 이어진 질문에 대답하고 싶지 않은 이유를 말했다.

"다른 사람도 그렇지만 나는 통진당뿐만 아니라 진보정당의 분열이나 위기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한 사람이다. 민노당 창당 주역?내게 진보정당은 생명 같은 것이고 지금도 애정이 있다. 내게 이석기 사태를 물어보는 이유는 뻔하다. 나도 기자를 해서 잘 안다. 이석기를 비판하고 통진당을 비판해야 기사거리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진보정당을 그렇게 하는 것을 용납하지 못한다. 그럼 당신은 뭐냐고 하겠지만,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그런 얘기를 안 하겠다는 것이다. 일부 문제점은 잘 알고 있지만, 내가 통진당 창당을 반대한 사람이지만, 거기 있는 절대 다수는 이 땅에 평등과 자주의 나라를 만들자고 나와 함께 손잡고 눈물 흘린 사람들이다. 지금도 손 잡고 가야 할 사람들이다."

-진보정당 위기 해결을 위해 무엇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나.

"새로운 진보정당의 구성과 경로는 정치를 떠난 내가 할 몫이 아니다. 하지만 조언을 하거나 조그만 보탬이 될 수 있다면 돕고 싶다."

-조언을 한다면.

"정말 자기의 모든 것을 버리고 마음을 비워야 한다. 처음으로 돌아가자는 말을 많이 하는데 말로만 할 게 아니라 정말 그렇게 해야 한다. 그렇게 안 되는 데는 여전히 패권적 생각이 자리를 잡고 있는 것 아닌가. 그래서 패권주의 청산이 중요하다고 거듭거듭 얘기하는 것이다."

올해 3월부터 창원대 사회학과 초빙교수로 강의를 하고 있는 권영길 전 의원은 "학생들을 만나보면 너무 가슴이 아프다. 그야말로 자나깨나 취업 생각뿐이고 주눅이 들어 가슴을 제대로 펴지도 못한다. 이것은 사회구조적 문제다. 이런 문제를 파헤치는 것이 진보정당이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그때 그 민노당의원들 농촌에서… 협동조합에서… 새 정당에서… '진보 재건' 모색

강기갑, 매실농사 지으며 은거… 단병호는 노조활동가 양성 매진 통진당에 남은 이는 이영순뿐정의당 노회찬·조승수·심상정 "이석기사태, 부정적 영향 불구진보정치의 범위를 분명히 정리 국민 속에서 가치 실현 고민해야"

2004년 민주노동당 소속으로 진보정당 최초의 원내진출을 이룩했던 국회의원 10명은 지금은 한 둥지에 있지 않다. 두 차례 분당(分黨) 사태를 겪으며 흩어졌다. 대선 참패에 이은 당내 '종북(從北)주의' 청산 논란 끝에 2008년 노회찬 단병호 조승수 전 의원과 심상정 의원은 당을 떠났다. 이 중 단병호 전 의원을 제외한 3명은 2011년 12월 민노당과 함께 통합진보당을 창당해 9명이 다시 한 울타리에 모였다. 하지만 지난해 통진당 비례대표 부정경선 논란과 당 중앙위원회 폭력사태 후 차례로 당적을 정리했다. 2004년 그 10명 중 현재 통진당에 남아 있는 사람은 이영순 전 의원 한 명뿐이다. 하지만 당적이 있든 없든 이들은 모두 자신의 자리에서 진보의 재건을 모색하고 있었다.

현장에서 "초심으로 진보 토대 구축"

탈당과 함께 일선 정치를 떠난 이들은 자신이 진보활동을 시작한 뿌리로 돌아가 있었다. "초심으로 돌아가 힘을 모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이들은 분당과 정파논란 등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농민운동가 출신인 강기갑 전 의원과 현애자 전 의원은 다시 흙을 만지며 살고 있다. 지난주 전화에서 강기갑 전 의원은 "지금은 밭에서 일하고 있어서 통화가 어렵다"고 말했다. 이튿날 다시 연락을 하자 그는 농사 얘기에 열을 올렸다. "다양한 매실 가공식품을 생산한다. 매실잼 매실고추장 매실청…. 매실이 소화에도 좋고 건강에 좋다. 제초제나 농약을 일절 하지 않고 유기농으로 농사를 짓고 있다."지난해 9월 통진당 분당 등에 책임을 지고 당대표에서 물러나면서 탈당한 그는 고향인 경남 사천으로 돌아가 매실농장을 일구고 있다. 대외활동을 자제하고 있지만 7월 충북 음성에서 열린 한우인총궐기대회에는 '정치인이 아닌 농사꾼 자격으로'참석하기도 했다. 그는 이석기 의원 사태와 진보의 위기에 대해 "원대 복귀 해서 농사짓고 있는 입장에서 정치에 대해 왈가왈부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지역에서 활동하는 통진당 당원들을 보면 정말 훌륭하고 헌신적인 사람이 많은데 이런 당원들까지 싸잡아 비난을 당하는 것은 안타깝다"고 말했다. 현애자 전 의원도 "지난해 5월 통진당 중앙위 폭력사태가 나던 날 탈당 입장을 정했다. 도민들 볼 면목이 없어 1년 가까이 활동을 중단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3월 고향 제주에서 '언니네텃밭' 협동조합을 만들었다. "협동조합을 설립하면서 길게 내다봐야겠다고 나름 반성을 했다. 대형유통 시스템에서 벗어나 소비자에게 직접 제철채소를 공급하는 대안농업이 풀뿌리 진보정치의 토대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앞으로 진보정당은 이런 활동을 많이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동안 당적 없이 지내다 8월 정의당에 가입한 그는 "아직 제주도당도 없고 정치활동은 안 한다. 진보정당에 실망한 사람들에게 다시 다가가려면 삼고초려의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단병호 전 의원은 10명 중 가장 먼저 정당 정치를 떠났다. 2008년 2월 민노당 분당 사태 때 탈당한 그는 진보신당에 합류할 것이라는 예측을 깨고 정당에 가입하지 않았다. 전국노동조합협의회(전노협)과 민주노총 위원장을 지내며 '노동운동의 대부'로 불렸던 그는 노동운동으로 돌아갔다. "탈당 후 각 지역을 돌며 동지들과 의견을 나눴다. 노동 쪽이 튼튼했으면 분열도 안 됐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당적은 정리했고 민주노총에서 일하는 시기도 지난 것 같고…. 내 역할은 아래로부터 노동운동의 역량을 재구축하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는 2011년 평등사회노동교육원을 창립해 노동조합 활동가 양성에 매진하고 있다. 3, 6개월 과정으로 나뉜 교육프로그램은'저비용 고효율'을 위해 토론식으로 운영되는데, 지금까지 500여명의 수료생을 배출했다. 지난해 9월 권영길 전 의원과 통진당을 떠난 천영세 전 의원이 현재 갖고 있는 유일한 직함은 민주노총 지도위원이다. 1990년 전노협 출범 때부터 민주노총까지 줄곧 지도위원을 맡아온 그의 별칭은 '천지도'다. 그는 "지방에서 요양 중이다. TV도 없고 신문도 없다. 살면서 이렇게 쉴 계제가 없었다. 지도위원은 상근도 아니고 계속 해오던 거라 내놓기도 그렇고…. 민주노총도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에 서울에 갈 때 회의에 참석하고 의견을 나누는 기회를 더러 갖는다"고 말했다.

최순영 전 의원도 지역기반인 부천에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지금은 부천시친환경무상급식센터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고 대안에너지 운동인 부천햇빛발전소 협동조합에 동참하고 있다. 진보정당 내 정파를 거론할 때 권영길 전 의원과 함께 중도파로 분류되는 그는 "2008년 분당 때도 비상대책위 집행위원장을 했고 중간 조정이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계속 남아 있었지만 결국 역부족이었다. 지난해 경선부정 사태 때는 너무 화가 났고 이런저런 일을 겪으면서 더 이상 내가 있을 곳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9월 통진당을 떠난 그는 "다 내 탓이오라는 생각도 들고 점점 지역에서 힘을 모으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 진보가 노동자 농민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더 다양한 곳에서 함께할 수 있는 사람들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새 정당에서 "진보 정체성 재구성"

새 정당을 만들어 현실 정치에서 진보의 재구성을 도모하는 이들은 초심의 열정만큼이나 정치적 능력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또 친북정파와 이석기 사태에 대해서도 또렷한 비판 입장을 보이며 진보정치를 재정의해야 한다고 했다.

심상정 의원과 노회찬 조승수 전 의원은 줄곧 정치행보를 함께했다. 이들은 2008년 민노당 분당사태 때 진보신당을 건설했고, 지난해에도 통진당을 떠나 진보정의당(현 정의당)을 주도적으로 창당했다. 2004년 민노당 국회의원 10명 중 유일한 현역 의원인 심상정 의원은 분당을 반복한 것에 대해 "결국은 판단착오로 끝났다. 노선에 대한 철저한 성찰이 없었다는 점에서 실패에 대한 지적은 달게 받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진보의 이합집산에 대한 지적을 많이 하는데 분열이 진보의 운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부의 문제를 다룰 수 있는 정치적 능력과 리더십이 대단히 미숙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흔히 PD(민중민주계열)로 평가되는 이들은 이제 진보세력이 시대착오적인 이념의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난해 총선에서 서울 노원병에서 당선됐지만 '삼성 떡값 검사' 명단 공개에 대한 대법원의 유죄 판결로 의원직을 상실한 노회찬 전 의원은 "운동권이 군사독재 시절 민주화에 역할을 했지만 변화한 상황에 맞게 새롭게 거듭나야 했는데 아직도 1980년대 식으로 NL(민족해방계열)이니 PD니 하며 낡은 이념 틀에 갇혀 분열적인 정파투쟁에 매몰돼 있는 것이 문제다. 일부 정파는 대중의 요구보다 자신들의 이념을 우선시하며 북한에 대해 국민들이 납득할 수 없는 편향된 태도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금은 진보가 친북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몸집불리기 식으로 더 많은 세력이 함께하면 더 힘이 생긴다는 방식의 접근은 경계해야 한다. 그보다 어떤 진보냐는 정체성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정의당 울산시당 창당을 준비하고 있는 조승수 전 의원은 이석기 사태에 대해 "낡은 운동권이 보여줄 수 있는 최악의 모습을 보여줬다. 단기적으로는 진보 세력 모두에게 부정적 영향을 끼치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진보의 정체성을 고민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심상정 의원도 "이석기 사태는 진보정치가 수용할 수 있는 범위를 분명하게 정리했다는 면에서 중요한 전기가 될 수 있다. 이제 진보는 민주주의의 틀 안에서 국민과 더불어 진보적 가치를 어떻게 실현할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남아서 "마녀사냥식 비판 안돼"

2008년 민노당 분당 사태 때도 지난해 통진당 탈당 사태 때도 이영순 전 의원은 당적을 유지했다. 정파적으로는 NL 계열인 울산연으?분류되뇩엽榴?지난해 5월 통진당의 비례대?부정경선 논란 때 당권파인 경기동부연합 소속 이석기 의원 등의 사퇴에 동의했지만 당을 떠나지는 않았다. 몇 차례 거부 끝에 말문을 연 그는 "힘들게 만든 당이기 때문에 나가는 게 쉽지 않고 남은 사람이라도 더 좋은 진보정당을 만들 수 있는 길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서 남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석기 의원 사태에 대해 "대중의 요구가 무엇인지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점에서 부족한 면이 있었다. 하지만 진보를 비난하려고 침소봉대하고 마녀사냥 식으로 달려드는 것도 사실이다. 어떻게 당을 없애야 한다는 말까지 할 수 있나"라고 말했다. 그는 당을 떠난 동료들에 대해 "남든 나가든 진보에 대한 희망을 갖고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고 말했다.

80년대생이 경험한 진보정치

이진선(참여연대 팀장)"진보정당 행사 가면 NL·PD 얘기 나와… 술자리선 싸우기도"노정태(자유기고가)"수도원 같은 분위기… 자기희생 정도로 사람 판단해선 안 돼"한윤형(미디어스 기자)"새로운 진보정치 잘 모를 땐 인정하고 암중모색해야"

2004년 민주노동당 소속으로 국회에 진출한 10명 중 가장 나이가 적은 조승수(50) 전 의원의 주장이다. '전후세대'란 NL(민족해방계열)과 PD(민중민주계열)의 낡은 대립구도로부터 자유로운 세대다. "한국 사회의 문제를 있는 그대로 보고 해결하려는 사람들이 진보의 중심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1980년대에 태어나 2000년대 진보정당 당원으로 가입, 직ㆍ간접적으로 진보정치를 경험한 세 명의 '전후세대'가 23일 한국일보 회의실에서 마주앉았다. 자유기고가이자 번역가로 활동하는 노정태(30)씨, 참여연대 시민참여팀장 이진선(29)씨, 미디어전문매체 미디어스 기자 한윤형(30)씨. 이들은 각자 진보정치를 보며 느꼈던 답답함을 거침없이 말했다.

▲한윤형=2001년 민주노동당에 입당했다. 사회 변혁에 도움이 될 것도 같았고 진성당원제도 매력적이었다. 2008년 분당 때는 진보신당으로 옮겨갔다. 당직자로 활동하지는 않았고 주로 게시판 글을 쓰는, 말하자면 당 사정에 관심이 많은 당원이었다. 지금은 진보신당에서 명칭이 바뀐 노동당 당적을 유지하고 있다.

▲이진선=2003년에 대학에 입학해 이듬해 민노당에 가입했다. 학생 때는 당 홍보지 활동도 하고 당원 인터뷰도 나가고 나름 열심히 활동했다. 2008년 분당 때는 고민이 컸지만 남았고, 국민참여당과 통합하는 데 반대했지만 참고 통합진보당에 있다가 지난해 폭력사건이 터졌을 때 탈당했다. 희망이 없어 보였다. 오래 사귄 애인과 헤어지는 기분이었다.

▲노정태=2008년 진보신당에 가입해서 노회찬 후보 선거 캠프에 가서 자원봉사를 한 적 있다. 선거운동을 하며 호빵맨 탈도 써봤다. 어영부영 당비만 내고 있다가 2010년 군 입대할 때 탈당을 했는데 지금은 진보정당에 가입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이들은 각자 겪은 바 '전전세대'의 지체, 즉 현실보다 이념과 노선과 진영을 앞세우는 관성에 답답해했다.

▲한=한국사회의 문제에 맞춰 논쟁하기보다는 예전 노선의 대립으로 치닫곤 했다. 싸잡아 욕할 수도 없는 게, 저쪽에서 결집하면 이쪽에서도 결집할 수밖에 없으니. 자본주의는 다르게 발전하는데 좌파는 적응을 못하고 있는 듯했다.

▲이=민노당 행사에 가보면 어느 순간 NL, PD 얘기가 나오고 술자리에선 싸우기 일쑤였다. 2008년 참여연대에 들어와 활동하면서도 학생운동은 했냐, 너는 NL이냐 PD냐고 묻는 이들을 본다. 처음 만나 두 시간 동안 정말 끊임없이 1990,91년 투쟁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봤다. 뭐라고 해야 되나, 한편으로는 좀 불쌍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노=지박령(地縛靈) 같은 것이다. 자기가 죽은 지도 모르고 같은 자리에 계속 붙어있는 유령 같은.

▲한=2008년 진보신당 창당 때 분당파 30, 40명이 여의도 포장마차에서 술을 마신 일이 있다. 제일 고참이 70년대 후반 학번이고 내가 막내였다. 선배들부터 차례로 민가(민중가요)를 불렀는데 처음 듣는 70년대 민가서부터 줄곧 모르는 노래만 이어지더니 1시간 반쯤 지나서야 내가 아는'청계천 8가'가 나오더라. 후배들에게 여기 와서 같이하자고 하기 참 어렵겠다는 느낌을 받았다.

대화는 뒤쳐진 이념과 정치적 무능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졌다.

▲노=과거의 운동은 한국사회 전체, 나아가 세계의 이행을 촉구하는 것이었다. 지금 와서는 다 헛소리처럼 보이지만 이를 위해 NL은 한국의 분단을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었고, PD는 계급모순을 해결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그런데 1987년 직선제를 쟁취하고 난 뒤 두 진영은 다수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의제를 제시하지 못했다.

▲한= 사실 NL, PD는 전직 NL이고 전?PD다. 새로운 전망, 새로운 전략에 대한 고민보다는 혼자 깨어있다는 특권의식에 젖어 예전 논리를 답습하며 과거를 재생산하는 데 급급했다. 90년대 선배에게 들은 얘기 중 인상적이었던 게 '운동권이 동년배를 설득할 자신이 없으면 후배에게 아첨을 한다'는 거였다. 졸업 후 회사원이 돼서 평범한 삶을 사는 친구에게 진보정당을 지지하자고 설득할 자신이 없으니까 자기 딴에는 후배 육성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그렇게 10여 년째 캠퍼스를 안 떠나고.

▲이=무상급식 이런 의제는 정말 아깝다. 2000년대 초반 민노당이 먼저 주장한 것인데 고생만 하고 성과는 못 챙겼다. 말 그대로 운동을 했지 정치를 한 게 아니다. 한 선배는 한이 맺혀서 화가 나서 운동을 한다고 하더라. 그 분노가 '적'이 아니라 다른 노선의 동료에게 표출되곤 했다. 정치를 한다면 달라져야 하는 거 아닌가. 분당 됐을 때 통합진보당 어떤 분을 섭외하면 진보신당은 섭외가 안 됐다. 보좌진들은 같이 술자리도 안 한다. 뭐 하자는 건가 싶었다.

▲노= 정치에 100%는 없다. 왕도 그렇게는 못한다. 정치는 주고받는 과정인데 진보정당은 그걸 못했다. 정치에 막 뛰어들면서 짊어진 사명이 너무 막중해 운동이 아닌 정치의 룰을 학습할 기회가 없었다.

▲한=역량에도 한계가 있었다. 2007년 대선은 정말 아쉬웠다. 이명박 대세론이 강하고 정동영 후보의 지지율은 높지 않아서 비판적 지지론이나 사표론이 힘을 발휘하기 힘든 구조였다. 그런데 권영길 후보가 NL의 지지로 대선 후보가 되고 코리아연방공화국을 내세웠다. 종북세력으로 비치니 아무리 진보정책을 열거해도 부각이 안 됐다. NL이 그렇잖나. 죽어도 안 되는 문제라도 삭발하고 단식하면 사람들이 좋아할 거라는 사고방식. 결국 대선 참패의 충격과 분노 때문에 2008년 분당까지 갔다.

▲노=정당은 정책을 요구하는 사람들의 정치적 성향을 생각해야 한다. 무상의료의 가장 큰 수혜자는 가난한 노인들인데 대부분 반공이다. 이 분들은 무상의료는 좋지만 코리아연방공화국을 말하는 사람을 찍지 않는다. 정책이 좋아도 표는 사라지는 것이다.

이들은 새로운 진보정치를 이야기하며, 새로운 전망 못지 않게 새로운 자세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이대론 안 된다는 것은 알지만 그럼 어떻게 해야 되냐 라고 하면 뾰족한 답이 없다. 정규직 노조 중심으로는 안 된다는 얘기는 하지만 비정규직, 자영업자를 어떻게 규합할 것이냐고 하면 답이 궁하다. 그람시의 말마따나 옛 질서는 사라졌는데 새 질서는 오지 않은 상황이다. 전후세대라고 말은 하지만 저희도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른다. 잘 모르는 시기에는 잘 모른다는 걸 인정하고 암중모색하는 게 책임감 있는 태도다.

▲노=우선 386의 의제에서 탈피해야 한다. 가령 한국 사회에서 가장 약한 고리 가운데 하나가 군대문제다. 젊은 남성들은 군대에 대한 막대한 피해의식이 있다. 이게 정치적으로 수렴되지 않고 막 흘러가면 일베 같은 극우적 행태로까지 간다. 이걸 유의미한 정치적 담론으로 재구성할 의무가 진보에게 있다.

▲이=진보정치뿐 아니라 시민운동에서도 위기라는 얘기를 많이 한다. 지금 6년차인데 딱 허리다. 사무처장이 80년대 후반 학번이고 그 중간이 없다. 왜 활동가들이 떠나냐 얘기들을 많이 한다. 아는 사람이 한 조직에 있다가 작년에 내부적으로 문제제기를 했는데 선배들에게 안 받아들여져서 결국에는 나왔다. 문제의식을 왜 내부에서 공유할 수 없는지 분노를 많이 했다. 또 요즘 애들은 야근을 안 한다는 식으로, 효율성을 떠나 무조건 열정을 요구한다. 왜 꼭 자기 희생 속에서 일해야 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

▲노=진보 정치를 한다는 게 무슨 수도원이나 결사체에 들어가는 것 같은 분위기가 있다. 80년대에 콜라를 마시면 미제의 똥물을 마신다고 했던 것의 연장이다. 진보에 사람의 단계가 있다면 맨 위에 열사가 있고 맨 밑에 반동분자가 있는 식이다. 이 판단의 축은 자기희생이다. 전태일 열사 등의 희생이 정말 큰 영향을 끼쳤지만 이제 사람을 얼마나 희생하는지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개인의 행복과 공익의 추구를 같이 가져갈 수 있는 인간형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희생해야 하니까 운동도 안 되는 게 아닐까.

이들은 '전후세대'라는 구분에도 선뜻 동의하지 않았다. 진영간 감정의 골은 2000년대 진보 정치를 경험한 그들 세대에게 더 깊을 수 있다고 했고, 막연한 세대론으로 책임을 전가한다는 느낌이 든다는 얘기도 했다. 이석기사태를 두고 '곪은 상처를 도려낼 수 있는 좋은 계기'라는 식으로만 말하는 것은 과도한 정신 승리라고도 했다. 어떻게 도려낼 것인지 먼저 말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역시민 사회에 광범위하게 포진한 '선량한 NL(진영에는 속하지만 '종북'자체를 모르거나 동의하지 않는 NL)'을 어떻게 결집할 것인가도 진보정당 운오?고민해야 할 숙제인 듯했다.

류호성기자 rh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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