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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그 말이 딱 들어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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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그 말이 딱 들어맞았다"

입력
2013.10.25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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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율 20% 넘던 민노당NL-PD 정파 패권주의에 갇혀 2008년 분당되며 국민 마음 떠나통진당의 절대 다수는 평등·자주국가 위해 함께했던 동지지금도 손잡고 가야 할 사람들박근혜정부서 복지의 틀 갖추면 진보정권에서보다 반대 강도 약해지금이라도 공약 실천 하기를…

권영길(72) 전 의원은 한국 진보정치의 얼굴이다. 그는 1995년 민주노총 초대 위원장을 지냈고 2000년 민주노동당 첫 대표가 됐다. 1997년부터 세 차례 연속 진보진영 대선후보로 나섰고, 민노당 최초로 지역구 국회의원 재선 기록을 세웠다. 지난달 그는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사단법인 '권영길과 나아지는 살림살이(나살림)' 창립식에서 그는 "나는 정당 정치를 마감했다. 이제는 그 길에 들어서지 않겠다"고 말했다. 또 "지금 진보정당은 사실상 사망선고를 받은 것과 다름없다"고도 했다. 지난주 서울 종로구에 있는 '나살림'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정계 은퇴를 선언했는데.

"지금 내 입장에서 정계은퇴다 뭐다 얘기하는 것 자체가 주제 넘고 외람된 얘기다. 이미 2011년 6월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사실상 정계를 떠났다. 그때 '진보 대통합을 이루고 단일 진보정당을 건설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어떤 공직이나 당직도 맡지 않고 평당원으로 활동하겠다'고 말했다. 지난해 당적도 정리했다"(그는 선진보통합 후야권연대를 주장하며 국민참여당이 포함된 통합진보당 창당에 반대했다.)

-지난해 경남도지사 보궐선거에 나왔는데.

"경남도지사 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가 아니면 당선되기 어려운 구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정권교체를 위해 출마했다. 정권교체 승부처가 경남이라는 분석이 많았다. 도지사를 찍으러 와서 대통령을 찍을 수도 있기 때문에 내가 출마하면 정권교체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봤다. 나는 정치활동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지난해 12월 대선과 함께 치러진 경남도지사 보궐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37.08% 득표, 62.91%을 얻은 새누리당 홍준표 후보에게 패했다.)

-나살림은 어떤 단체인가.

"나살림은 정치 단체가 아니고 보편적 복지를 위한 사회운동체 성격의 단체다. 이름처럼 교육비 병원비 걱정 없는 나라를 만들기 위한 운동체다. 전문가들이 하는 심포지엄이 아니고 거리 캠페인 위주다. 10일 이순신 장군 동상 앞에서 첫 발을 뗐다. 내가 마이크를 잡고 얘기를 하면 '요즘 잘 안 보이던데 뭐하시냐'고 와서 묻는 사람들도 있고 반응이 아주 좋다. 아파트에서 주부들이랑 대화도 하고 공장 들판 재래시장도 찾아 다니며 전국을 돌 생각이다. 10년을 목표로 잡고 있다."

-10년이면 길지 않나

"따지고 보면 길지 않다. 1997년 대선에서 보편적 복지를 얘기하고 무상교육 무상의료를 주장했다. 그때는 아무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2002년 대선 TV토론에서는 '국민 여러분 행복하십니까, 살림살이 나아지셨습니까' 물어봤다. 그 말이 국민 마음 속에 파고 들어 복지 의제가 설정됐다. 10년이 지나 2012년 대선 때는 모든 정당이 복지를 내걸었다. 하지만 다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살림살이가 나아진 게 아니라 무너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대로 가면 10년, 20년이 지나도 나아지지 않는다. 국회의원 8년 하고 정당정치를 하면서 느낀 게 있다. 정당 활동으로는 국민을 설득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복지의 우선 대상이 돼야 할 사람들이 재원은 어디서 마련하냐고 걱정한다. 이런 말을 계속 들으면서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국민운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10년을 잡은 것은 정말 끊임없고 광범위한 캠페인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라도, 한 시간을 들여서라도 설득을 하면 국민 인식이 변하고 복지 붐이 일어나지 않겠나."

-박근혜정부도 복지를 내세우고 있는데.

"실제로는 복지 공약을 파기하고 있다. 무상보육 기초노령연금 등 약속을 안 지키고 있다. 지금이라도 공약을 실천하기를 바란다. 나는 박근혜 대통령이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를 바란다. 복지 문제는 진보와 보수의 문제가 아닌데 국민은 진보의 목소리로 인식하고 있다. 박근혜정부가 복지의 틀을 갖추면 반대의 강도가 훨씬 약해지고 반발도 줄일 수 있다. 실제로 김대중 노무현 정권 때는 제대로 복지를 하지도 못했는데 비판을 많이 받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복지를 공약에 끌어안음으로써 비판이 많이 완화됐다."

-진보정당은 사망선고를 받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는데.

"노동 중심의 진보정당을 새롭게 건설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반어적 표현이었다. 현재 통합진보당 정의당 노동당 등 진보정당이 여러 개 있지만 어느 정당도 국민의 사랑을 받는 정당이 아니다. 물고기는 물이 없으면 죽는다. 모든 정당이 그렇지만 특히 진보정당은 국민의 사랑이 물이다. 지난해 총선에서 통진당 의석 수가 13석이 됐을 때 진보의 성과라거나 야권연대의 성과라고 얘기를 했는데 나는 의미를 두지 않는다. 국민들이 흔쾌히 진보정당을 희망의 정당이라고 보고 만들어진 의석 수가 아니다."

-왜 진보정당이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고 생각하나.

"안타깝게도,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말이 딱 들어맞았다. 2008년 민노당이 분당됐을 때부터다. 한때 민노당 지지율이 20%를 넘었다. 신생 진보정당이 이 정도 지지를 받는 것은 기적과 같은 일이었다. 국민들이 희망이라고 본 것이다. 그런데 분당이 되니까 국민들의 반응은 '콩알이 하나밖에 없는데 심어서 수확할 생각은 안하고 서로 먹겠다고 하면 싹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우리 국민들은 진보정당에 대해서는 엄격하다. 왜냐, 진보정당은 대안이고 희망이기 때문이다. 분당 후에도 민생정당의 모습을 보여줬다면 상황이 달라졌겠지만 정파 패권주의로 흘러갔다."

-NL(민족해방계열)과 PD(민중민주계열)의 정파 문제 때문이라는 말인가.

"정파가 나쁜 것은 아니다. NL이 갖고 있는 가치, 즉 통일을 위해 평생을 바쳤다면 자랑스러운 것이다. 또 노동계급을 위해 평생을 바쳤다면 그것도 자랑스러운 것이다. 2000년 민노당 창당할 때도 NL과 PD는 물과 기름이다, 함께하지 못한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데 창당이 됐지 않나. 민노당의 큰 공로는 도저히 화합이 불가능하다고 여긴 이 두 노선을 하나로 결합한 것이다. 문제가 생기면 때로는 얼굴 붉히고 때로는 삿대질 하고 욕설에 가까운 말을 하고 때로는 열 몇 시간씩 토론을 해서 끝내는 합의점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화학적 결합을 이루기 위해 부단한 노력과 뼈아픈 성찰이 있었고 결합이 눈 앞에 있었다. 그런데 정파 패권주의에 갇혀 마지막 단계에서 넘어서지를 못하고 다시 쪼개진 것이다. 이것이 가장 가슴 아프다. 진보 정치의 손실일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치의 엄청난 손실이었다."

-스스로는 NL도 PD도 아니라고 했는데.

"권영길은 때로는 자주파(NL)로, 때로는 평등파(PD)로 분류된다. 민노당 대표를 맡으면서 외톨이가 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한쪽에 몸을 담으면 중재자가 아니니까."

-중재를 해보니 뭐가 문제였나.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잘 됐으면 분당이 안 됐지."

정파갈등에 대한 질문이 계속되자 권영길 전 의원은 "정치 얘기는 안 하겠다고 미리 말하지 않았냐"며 언성을 높였다. "할 얘기는 다 했다"고 말한 그는 이석기 사태로 이어진 질문에 대답하고 싶지 않은 이유를 말했다.

"다른 사람도 그렇지만 나는 통진당뿐만 아니라 진보정당의 분열이나 위기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한 사람이다. 민노당 창당 주역인 내게 진보정당은 생명 같은 것이고 지금도 애정이 있다. 내게 이석기 사태를 물어보는 이유는 뻔하다. 나도 기자를 해서 잘 안다. 이석기를 비판하고 통진당을 비판해야 기사거리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진보정당을 그렇게 하는 것을 용납하지 못한다. 그럼 당신은 뭐냐고 하겠지만,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그런 얘기를 안 하겠다는 것이다. 일부 문제점은 잘 알고 있지만, 내가 통진당 창당을 반대한 사람이지만, 거기 있는 절대 다수는 이 땅에 평등과 자주의 나라를 만들자고 나와 함께 손잡고 눈물 흘린 사람들이다. 지금도 손 잡고 가야 할 사람들이다."

-진보정당 위기 해결을 위해 무엇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나.

"새로운 진보정당의 구성과 경로는 정치를 떠난 내가 할 몫이 아니다. 하지만 조언을 하거나 조그만 보탬이 될 수 있다면 돕고 싶다."

-조언을 한다면.

"정말 자기의 모든 것을 버리고 마음을 비워야 한다. 처음으로 돌아가자는 말을 많이 하는데 말로만 할 게 아니라 정말 그렇게 해야 한다. 그렇게 안 되는 데는 여전히 패권적 생각이 자리를 잡고 있는 것 아닌가. 그래서 패권주의 청산이 중요하다고 거듭거듭 얘기하는 것이다."

올해 3월부터 창원대 사회학과 초빙교수로 강의를 하고 있는 권영길 전 의원은 "학생들을 만나보면 너무 가슴이 아프다. 그야말로 자나깨나 취업 생각뿐이고 주눅이 들어 가슴을 제대로 펴지도 못한다. 이것은 사회구조적 문제다. 이런 문제를 파헤치는 것이 진보정당이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류호성기자 rh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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