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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야구·농구… 공놀이는 어떻게 5000억불 넘는 거대 산업으로 성장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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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야구·농구… 공놀이는 어떻게 5000억불 넘는 거대 산업으로 성장했을까

입력
2013.10.25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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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우리는 왜 공놀이를 하나요?" 몇 년 전 6월 어느 날, 저자와 야구공 던지기 놀이에 열중하던 일곱 살 아들이 불쑥 물었다. "글쎄." 하버드대 출신 저명한 고고학자이자 언론인인 존 폭스는 아들의 느닷없는 질문에 궁색해졌다.

인간은 왜, 언제부터 공을 가지고 놀았을까. 지금 우리가 열광하는 야구와 축구, 테니스, 농구 등은 언제 어디서 시작됐을까. 공을 쫓아 달리는 하찮은 일이 어떻게 5,000억 달러가 넘는 거대 산업으로 성장했을까.

저자는 해답을 찾기 위해 멕시코 밀림에서부터 미국 작은 도시의 리틀야구장까지, 중세 유럽의 마을과 왕궁을 거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리버풀이 맞붙는 축구장을 종횡무진한다.

그럼 축구는 언제 시작됐을까. 저자는 원시 축구의 원형을 간직하고 있는 스코틀랜드 북부 연안 오크니 제도로 향한다. 수백 년 전부터 이 섬에 내려오는 전설은 이렇다. 오크니 수도 커크월의 주민들은 스코틀랜드 폭군의 압제에 시달렸다. 주민들은 봉기했고, 폭군은 다른 섬으로 줄행랑을 쳤다. 폭군이 돌아올까 불안에 시달리던 중, 한 청년이 용감하게 나섰다. 그는 폭군을 잡아 목을 자른 뒤 안장에 머리를 매달고 왔는데, 하필 폭군의 이빨에 찔린 부위가 감염돼 마을 입구에서 숨을 거둔다. 성난 주민들은 잘린 폭군의 머리를 발로 차며, 거리를 누볐다. 그 때부터 이 지역에선 '바'라고 불리는 가죽공을 차는 전통이 생겼다. 저자는 "이 무질서한 야만의 영광, 의지의 싸움 속에서 문명과 규범이 자리잡기 전 유럽 전역에서 즐기던 가장 원시적인 축구의 흔적이 남아 있다"고 말한다.

12세기 프랑스 노르망디와 브르타뉴 지역에서도 '라 술'이라고 불리는 민속축구가 막 시작돼 사람들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 넣었다. 1440년에는 한 주교가 "여흥의 탈을 쓴 악의와 원한, 적대감을 군중의 가슴에 축적시키는 아주 해로운 경기"라고 개탄할 정도였다.

그렇다면 고상한 왕과 귀족은 어떤 오락을 즐겼을까. 중세 수도원 회랑 안에서 태어나 '왕들의 스포츠'라고 불리게 될 테니스가 바로 그들의 놀이였다. 처음에는 '주 드 폼'으로 불린 테니스는 1596년 파리에만 250개의 코트가 생겼을 만큼 시대를 풍미했다. 당시 "파리의 테니스 선수 숫자가 영국의 주정뱅이 숫자보다 많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이처럼 축구와 테니스는 '선진' 유럽에서 시작됐지만, 그들이 갖고 놀았던 공은 그리 우아하지 않았다. 구체(球體)는 처음에는 들판에서 쥐어뜯은 풀을 뭉쳐 끈으로 칭칭 감은 뒤 천으로 감싼 것을 사용하다가 돼지 방광이나 캥거루 생식기의 가죽을 꿰매 바람에 불어넣는 방식으로 진화했다. 1493년 두 번째 신대륙 항해를 나선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와 선원들은 아이티 히스파니올라 섬에 도착해 팔딱팔딱 살아 움직이는 고무공을 처음 보고 넋을 잃었다. 원주민들은 3,500년 전부터 그 지방에서 자생하는 고무로 공을 만들어 다양한 경기를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미국으로 돌아올 차례다. 현대 자본주의의 주체로 자부하는 미국인들은 자신들의 성향을 극명히 드러내는 야구와 미식축구라는 두 개의 구기 종목을 발전시켰다. 저자는 "투수의 공을 받아 친 타자가 집으로 돌아오기를 기원하는 야구에는 지금보다 단순하고 근심 없는 날들을 바라는 마음이 담겼고, 경기장 구획부터 규칙까지 철저히 통제하는 미식축구는 날로 번성하는 미래 기술문명을 상징한다"고 해석한다.

스포츠 가운데 유일하게 가난한 대중을 위해 태어난 농구의 역사도 재미있다. 1891년 미국 매사추세츠주 스프링필드의 YMCA 체육학교 교사 제임스 네이스미스는 18명의 '교정 불가능자'를 교육시키기 위해 공으로 하는 새로운 운동 경기를 만들었다. 새로운 운동 즉 농구는 인종과 성별의 한계를 거부하고, 가난과 고통의 굴레를 벗어날 길을 제공하며, 한 세기가 지나기도 전에 전 세계 2억명이 즐기게 된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공이야말로 가장 생기 넘치는 무정물이고 문화권과 기술과 연령 차이를 뛰어넘어 모든 사람들이 쉽게 접근하고 사용하며 범우주적으로 즐기는 놀이기구"라고 말한다. 자본권력과 손잡은 현대 스포츠는 종종 당혹스러운 추문으로 우리를 놀라게 하지만, 초창기에 뿌려진 놀이 본연의 의미와 가치의 씨앗은 은연 중에 살아 남아 여전히 우리가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을 형성한다는 것이다.

한창 진행 중인 프로야구 한국시리즈로 열광의 도가니다. 공 하나 때문에 누군가 악을 쓰고, 또 다른 누군가는 환호하며 원초적 본능을 만끽하고 있다. 자신이 응원하는 팀에게 승리가 있기를!

권대익기자 d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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