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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10월 26일] 비련의 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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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10월 26일] 비련의 집시

입력
2013.10.25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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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을 춰요, 나의 에스메랄다." 노트르담 성당의 곱추 종지기 콰지모도가 싸늘하게 식은 집시 여인 에스메랄다를 끌어안고 절규한다. 질투심에 눈 먼 성당 주교 프롤로의 음모에 빠진 에스메랄다는 곱추의 진정한 사랑을 뒤로 한 채 살인 누명을 쓰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뮤지컬 의 원작자인 빅토르 위고는 소설 서문에 "노트르담 성당 구석에 손으로 새긴 '아나키아'라는 말을 발견했다"고 썼다. 아나키아는 그리스어로 '숙명'이다.

▲ 집시의 유래는 설이 많다. 이중 9세기 인도 북서부에서 유럽 전역으로 흘러 들었다는 게 유력하다. 인도 고대언어인 산스크리트어계의 고유언어를 쓰는 것이 방증이다. 집시(Gypsy)라는 말은 이들이 이집트에서 온 것으로 착각한 영국인들이 'Egyptian'이라고 부른 데서 나왔다고 한다. 그러나 집시는 스스로를 순례자란 뜻의 '로마(Roma)'라고 부른다. 유럽의회가 1995년 경멸적 의미가 담긴 집시 대신 로마라는 명칭을 승인, 이때부터 국제적으로 공식 통용됐다.

▲ 가족 단위로 세계를 유랑하는 집시는 약장수 곡예사 악사 등의 일을 하며 산다. 구걸이나 소매치기로 연명하기도 한다. 유럽인들에게 집시는 '더러운 부랑아'일 뿐이다. 집시 아이들을 정신질환자로 몰아 특수학교로 보내고, 치안을 이유로 거주지를 강제 철거하고 추방한다. 중세에는 마녀사냥으로 화형 당하거나 생매장됐고, 2차 대전 때에는 나치에 수십만 명이 학살됐다. 집시여성들에 대한 강제 불임수술이 중단된 게 불과 40여 년 전이다.

▲ 그리스에서 집시 부부가 금발의 여자아이를 유괴해 키웠다고 해서 유럽이 난리다. 부모는 친부모가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은 정부의 다자녀 수당을 챙기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를 계기로 유럽 전역에서 집시 부부를 무작정 유괴범으로 몰아 자녀를 빼앗는 사건이 잇따르고 있다. 아일랜드의 집시 부부는 유전자검사까지 받은 뒤에야 자녀를 되찾았다. 자유와 인권의 고향이라는 유럽에서 벌어지는 집시에 대한 마녀사냥을 보면서 에스메랄다의 기막힌 숙명이 떠오른다.

황유석 논설위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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