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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 '복지천국'의 빛과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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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 '복지천국'의 빛과 그림자

입력
2013.10.25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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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이상 산 한국인들의 생생한 육성 육아환경 월등, 노동자 생활수준 높아물가 세계 최고수준… 무상의료엔 구멍… 청년 취업난 심각해 노인보다 빈곤이민자 증오하는 극우주의자 증가 "복지국가는 자본주의 모순 해결 못해"

따사로운 햇볕이 내리쬐던 2011년 7월 22일 한낮. 노르웨이 오슬로 인근의 평화로운 작은 섬 우퇴야는 생지옥이 됐다. 한 백인 인종주의자가 노동당 모임으로 집결한 청소년들을 향해 총기를 난사, 69명이 사망했다. 복지의 천국이라 불리고 국민의 삶의 질이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로 꼽히는 노르웨이가 어쩌면 우리가 그토록 꿈꿔온 '장밋빛 파라다이스'가 아닐지 모른다는 의심을 키운 대형 참사였다.

대선을 거치면서 노르웨이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많이 회자된 이슈인 복지 논쟁의 지향점이었다. 산모로 등록만 하면 국가가 출산 이후 의료비를 모두 책임지고, 시급 4만원 이상 일자리가 즐비하다고 알려진 나라. 그러나 우리는 이 '복지천국'에 대해 정확히 안다고 장담할 수 없다. 언뜻 보기에 부러움으로 가득한 이 나라에서도 이민자를 향해 분노를 터트리는 극우주의자들을 쉽게 만날 수 있고, 세계 최고 수준의 물가로 인해 노인보다 빈곤해지는 청년들의 미래가 먹구름처럼 어둡다는 점을 간과해 왔기 때문이다. 이미 1928년 노동당이 집권했을 정도로 분배와 복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오래 전 확립됐고, 무려 7,300억 달러어치의 국가석유기금을 보유할 정도로 엄청난 국부를 갖춘 나라라는 배경도 놓쳐온 게 사실이다.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 한국학 교수가 기획한 이 책은 노르웨이의 '잘 생긴' 외양에 가려진 실제 복지국가의 허와 실, 빛과 그림자를 빠짐없이 담았다. 박 교수가 직접 노르웨이에서 10년 이상 살아온 한국인 저자 6명을 섭외해 독자들에게 설득력 있게 '복지 천국'의 실상을 전할 수 있도록 특화한 책이다. 단지 몇 번의 방문, 그럴듯한 자료들에 기초해 내놓은 북유럽 복지국가에 대한 리포트들과는 다르다. 박 교수는 "이 책은 스타일의 문명 열강 따라 배우기가 절대 아니다"라며 "우리가 바라는 것은 더욱 나은 미래를 향한 길에서 노르웨이 노동자들이 쟁취한 성과들을 하나의 참고틀로 삼자는 것"이라고 밝혔다.

여행 중 화가 뭉크의 그림에 감명을 받아 2005년부터 노르웨이에 정착한 정의성씨는 "노르웨이가 살기 좋은 나라인가요?"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세계 1위라는 각종 순위가 말하지 않은 사실들도 많다고 답할 것"이라 말한다. 이민자 입장이긴 하지만 정씨가 바라본 노르웨이 젊은이들의 취업난의 실상은 예상보다 고달프게 보인다. 많은 인문학 졸업자들이 취업을 원하는 공공기관 사무직의 경쟁률은 100대 1을 쉽게 넘기고, 이마저도 대부분 공채로 이뤄지지 않아 '연줄'이 없는 이민자 등 사회적 약자들에겐 그림의 떡이다. 비슷한 수준의 이력서를 내도 노르웨이식 이름이면 최종면접에 올라갈 확률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25%포인트나 높다는 보도도 있었다. 꼭 이민자만의 문제는 아니다. 작년 기준 노르웨이 청년실업률은 8.6%로 평균 실업률인 3.2%에 비해 3배 가까이 높다. 정씨는 노르웨이 복지의 핵심인 무상의료의 맹점도 지적한다. 그는 "주치의 제도가 자리잡혀 있지만 종합병원에서 치료받기 위해 6개월 이상 기다리는 건 놀랄 일도 아니다"며 "이런 이유로 무상의료보험 혜택을 포기하고 전액 자가 부담하는 사립병원을 찾는 환자가 매년 급증하고 있다"고 말한다.

네 살 때 노르웨이로 입양되어 온 최경수씨는 공평함을 중요시하는 학교 교육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른바 '숙제 철폐 운동'을 벌였을 정도로 매우 정치화되어 있는 노르웨이 청소년들의 일상, 배워야 할 언어가 너무 많아 고된 학창 시절을 보내는 아이들의 한숨도 곁들였다.

박노자 교수의 배우자인 백명정씨의 오슬로 정착기는 출산과 육아, 그리고 교육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임산부 등록을 하는 순간부터 거대한 행운이라도 거머쥔 사람처럼 우쭐해지게 하는 분위기, 회초리를 박물관에 전시할 정도로 체벌을 금기시하는 가정과 학교, 박사보다 노동자가 잘사는 사회 등 노르웨이는 우리의 '상식'과 많이 벗어나 있다고 말한다.

박 교수는 노르웨이식 복지국가가 모든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말하며 맹목적인 추앙을 경계한다. 노르웨이의 특수한 경험과 환경을 무조건 보편화시키는 것은 어렵다는 얘기다. 그는 "복지국가는 자본주의의 모순을 부분적으로 완화할 수 있어도 본격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노르웨이는 하나의 참고일 뿐, 인간 해방의 이상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양홍주기자 yang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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