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ekya(새끼야)'. 마석가구공단의 한 슈퍼마켓은 간판 한 켠에 버젓이 욕설을 써놓았다. 외국인 근로자들을 상대하는 이 가게가 무리수를 둔 이유는 뭘까. 아이러니하지만 주민들은 이 단어가 친근감을 준다고 한다. 이주노동자들이 공장에서 가장 자주 듣는 말이고, 가끔 한국인을 보면 아는 체하는 인사로 써먹기 때문이다.
은 다양한 국적의 이주노동자 800여명이 모여 사는 경기도 남양주시 마석가구공단을 1년 넘게 관찰한 기록이다. 다큐멘터리 영화처럼 과거로부터 시작해 현재의 마을 곳곳을 구석구석 들여다본다. TV 다큐멘터리나 신문 기사로는 접할 수 없었던 이주노동자들의 희로애락을 풍부한 인터뷰와 취재를 통해 전달한다.
마석가구공단이 국내 최대 가구공단으로 알려진 데는 긴 사연이 있다. 마석은 원래 사회에서 추방당하다시피 전국을 떠돌던 한센인들의 피난처였다. 그들이 정착해 살기 시작하면서 농장이 생겼고, 환경문제로 농장이 사라진 자리에 공단이 들어섰다. 1990년대 초반 대규모 단지가 형성되면서 외국인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힘들고 어렵고 더러운 3D 업종에 대한 한국인의 취업 기피 현상이 이주노동자들을 끌어들인 것이다. 한때 2,000명이 넘기도 했던 이주노동자들은 최근 많이 줄어 1,000명도 되지 않는다고 한다.
외국인 근로자들이 털어놓는 사연들은 하나 같이 극적이다. 20년간 한국에서 일하며 필리핀으로 돈을 보내고 있는 에드워드는 월세 13만원짜리 다섯 평 원룸에 살면서도 필리핀 커뮤니티의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방글라데시에서 온 아인은 폭력과 따돌림 속에서 어렵게 중고등학교를 나왔지만 '미등록'이라는 이유로 대학에 갈 수 없는 처지다. 철제 의자 스프레이 작업을 하던 네팔의 조시는 말기암 판정을 받고 가족에게 돌아간 지 3개월 만에 세상을 떠났다.
저자들은 이주노동자 사회 안팎을 천천히 살핀다. 이주노동자를 대하는 사회의 편견과 폭력이 존재하는 이면에는 외국인들 사이의 분쟁도 있고 공장주들의 어려움도 있다. 내부 사람이 아니면 알 수 없는 그들만의 일상사가 펼쳐진다. '공존의 관계적 윤리'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게 만드는 책이다.
고경석기자 kav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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