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대륙에서 활보하던 조상들과는 다르게 오랫동안 한반도에 갇혀 살았다. 고구려와 백제가 멸망한 이래 중국의 영향을 받으면서 역사를 중국사 중심의 편향된 시선으로 바라보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가슴속에는 만주와 대륙의 웅혼한 기상을 품고 있어도 누구하나 속 시원히 포부를 펴고 세상을 품어볼 생각을 못했다.
미국의 유력지'워싱턴 포스트'는 1995년 12월 31일자에서 1,000년의 마감을 선언하면서 최고의 인물로 세계 역사상 가장 넓은 대륙을 정복하고 몽골 제국을 세운 칭기스칸을 꼽았다. 97년 4월 또 다른 유력지 '뉴욕타임즈' 역시 세계를 움직인 첫 번째 역사적 인물로 칭기스칸을 선정했다.
칭기스칸은 누구인가. 아홉 살 때 아버지를 잃었고, 마을에서 쫓겨나 들쥐를 먹고 연명했다. 자신의 이름조차 쓸 줄 몰랐지만 남의 말에 귀 기울이면서 현명해지는 법을 터득해 '적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약속을 하면 반드시 지켰고, 병사들과 백성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부르게 했으며, 무한 경쟁의 제로섬 게임에서 벗어나 사람들이 본래의 착한 심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설파했다. 무엇보다 서로 믿고 신뢰하는 관계의 회복을 일관되게 강조했다. 믿음과 신뢰를 지키는 자는 적군일지라도 포상했고, 반대의 경우엔 아군일지라도 반드시 징벌했다.
사람이 사람을 신뢰하고 서로 존중하며 능력만큼 대접받는 사회, 그것이 실현되었을 때 우리는 선진화된 민주사회라 한다.
최근 서울에서 열린 '유라시아 시대의 국제협력 컨퍼런스'에서 보르다체프 러시아 고등경제대학 부학장은 "한국인의 시원적(始原的) 출발점이 바이칼을 떠나온 사람들이라면, 앞으로의 유라시아 시대의 주역은 한국인이 될 확률이 매우 높다"고 했다. 유라시아 대륙에서 가장 많은 족적을 남긴 민족이라는 이유에서다.
그렇다면 결론은 자명해진다. 우리의 역사는 만주와 한반도의 범위에서 벗어나 몽골과 바이칼까지 확장되어 새로운 역사를 써야 한다는 것이다.
지구 전체 면적의 40%나 되는 광대한 대륙인 유라시아는 세계 인구의 71%가 살고 있다. 경제적 측면에서 유럽연합을 비롯해 중국, 러시아 등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60%을 차지한다.
유럽 주요국가들의 재정위기로 인한 경기침체 속에서도 중국, 인도, 러시아 등 유라시아 신흥국들은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면서 세계 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역내에 있는 국가들이 정치, 안보협력, 통상 및 개발협력, 교통, 에너지, 농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경제협력을 추진해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다행히 박근혜정부는 유라시아 협력을 주요 국정과제 중 하나로 채택했다. 대륙의 끝자락에 위치한 대한민국은 섬 아닌 섬으로 갇혀 해양국가의 모습으로 살아왔으나, 앞으로는 대륙으로 뻗어 나가야 하는 과제가 기다리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유라시아 시대의 국제협력 컨퍼런스'에 직접 참석해 "부산을 출발, 북한 러시아 중국 몽골 중앙아시아 유럽을 관통하는 '실크로드 익스프레스'(SRX)를 실현해 나아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박 대통령은 또 "유라시아 내 끊어진 물류 네트워크를 연결하고 교류를 가로막는 물리적 장벽을 극복해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유라시아 시대,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 것이다.
우리는 100년 전 세계가 변화하고 있을 때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한 아픈 기억이 있다. 하지만 '제2의 개항'이라고 할 수 있는 자유무역협정(FTA)과 정보화에서는 세계 다른 나라를 앞서고 있다. 지금 논의되고 있는 한중일FTA 등 무역자유화 논의를 가속화하고, 이를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등 유라시아 역내외를 아우르는 무역협정과도 연계한다면 거대한 단일 시장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유라시아 시대의 주도적 리더십은 그래서 더욱 중차대하게 다가온다.
윤창규 동아시아센터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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