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의원의 '대선 불공정'과 박근혜 대통령의 책임론 제기로 정치권이 대선불복 논란에 빨려 들면서 우리 헌정사의 과거 사례에 대해서도 이목이 쏠리고 있다.
우선 3ㆍ15 부정선거를 떠올릴 수 있지만 지금 상황과는 전혀 비교할 수 없는 사례다. 1960년 3월15일 실시된 정ㆍ부통령 선거에서 이승만 정권은 12년간 지속된 장기집권체제를 연장하기 위해 온갖 부정선거를 자행, 4ㆍ19 혁명으로 이어졌고 자유당 정권은 붕괴됐다. 이는 국민저항이지 정쟁 수준인 지금의 불복 논쟁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때문에 '대선결과를 인정할 수 없다'는 특정 지지층의 강한 의지를 대선불복으로 정의한다면 2002년 16대 대선 직후 상황을 유사사례로 언급할 만 하다. 당시 민주당 노무현 후보(48.9%)와 이회창 후보(46.6%)의 득표 차가 57만980표에 불과하자 충격에 빠진 한나라당 당원들을 중심으로 '개표 오류설'을 제기했다. 한나라당은 대선 5일 후인 12월24일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을 상대로 무효소송을 제기하고 재검표까지 밀어붙였다.
대법원이 한나라당 요청을 수락하면서 서울 송파구 등 80개 개표구에 대해 재검표를 실시키로 했다. 2003년 1월27일 투표지 1,104만9,311장에 대한 수작업 재검표가 35개 지방법원 등에서 진행됐지만 노무현 후보가 816표 줄었고, 이회창 후보는 단 88표 늘었다. 소요된 비용만 5억여원에 달했고 한나라당은 대국민사과를 해야 했다.
야권을 중심으로 2004년 '노무현 탄핵'사태가 실질적인 대선불복이란 평가도 있다. 시사평론가 이철희씨는 "다수의석을 끌어 모아 총선 직전에 대통령을 날려보낸 것은 제도적 권한을 쓰긴 했지만 내용적으로 대선민심을 힘으로 무너뜨리고 승복 안 하겠다는 대선불복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는 1971년 7대 대선(박정희 대 김대중) 등 야권에서 대선결과를 인정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반면 대통령직선제가 부활한 뒤 처음 치러진 1987년 '1盧(노태우) 3金(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대선 직후엔 '컴퓨터개표 조작설'이 퍼지기도 했다. 새로운 형태의 개표방송을 지켜보던 유권자들이 일정비율로 올라가는 득표수를 보며 의혹을 품었던 다소 어처구니 없는 일이었다.
대선불복 자체는 법적으로 불가능하며, 정치적으로 정권의 정통성을 훼손시키겠다는 성격이 다분하다. 사실상 식물정권으로 만들겠다는 의도다. 그러나 현재의 민주당 입장은 박 대통령의 정통성을 부인하지 않는데다 국가기관의 선거 개입을 파헤치는 단계여서 대선불복으로 보기엔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 많다.
박석원기자 s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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