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부산국제영화제가 18회를 맞았다. 1996년 부산 소재 대학의 영화과 교수들과 영화인들이 주축이 돼 부산시의 도움으로 처음 열린 부산국제영화제가 이제 명실상부한, 세계영화인들이 주목하는 영화제로 발돋움하게 됐다. 처음엔 대다수의 영화인들이 과연 부산국제영화제가 몇 년이나 할 수 있을까 하는 회의적으로 바라봤지만 이제 세계5대영화제로 불릴 만큼 확실한 자리매김했다. 영화인의 한 사람으로서 영화 변방에 불과하였던 대한민국이 이제 아시아의 허브 영화제를 보유한 영화강국이고 부산영화제는 세계영화인들이 아시아 영화를 처음으로 접하는 아시아대표영화제로 성장하게 된 것이 너무나 자랑스럽고 자부심을 느낀다.
올해도 난 제18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에 참석했다.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아 보기 힘든 대형야외상영관인 '영화의전당'은 실로 감탄을 금치 못할 만큼 그 위용과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개막식장에 앉아 난 잠시 감회에 젖었다.
내가 부산영화제를 처음 참석한 것이 제3회 영화제가 열린 98년이었다. 지금은 부산영화제 전용관인 센텀시티에 소재한 '영화의 전당'에서 레드카펫과 개막식, 그리고 개막작상영이 이루어지지만 당시에는 부산수영만 요트경기장에 개막식장이 마련됐다. 당시 무명의 시나리오작가이자 프로듀서 지망생이었던 나는 공식 초청자 명단에 당연히 들어 갈 수가 없었고 자비로 고속버스를 타고 입장권을 어렵사리 구해 일반석에서 개막식을 기다리는 관객의 한 사람이었다.
일반 관객석에서 스크린 앞 '영화인석'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내가 과연 언젠가 영화인석의 말석이라도 앉을 수 있을까? 정말 저 자리에 앉게 되는 날이 올까? 하며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부러움이 교차하던 그 순간이 떠올랐다. 개막식 레드카펫이 시작되며 스크린에서 보던 영화인들이 속속 영화인석에 앉는 모습을 부러움의 눈초리로 바라보며 의지를 다지던 그 순간이 떠오르며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물론 몇 년 전부터 공식초청영화인이 되어 이제 개막식장에 내 이름 석자가 박힌 의자에 앉을 수 있는 영광을 갖게 되었고, 무명영화인에서 아시아필름마켓의 피칭 심사위원으로 참석하게 된 영화제지만, 그래도 16년 전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과 그리고 영화인으로 평생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 교차하며 마음을 다잡던 그 순간이 없었으면 지금의 이 영광스러운 상황도 오지 않았음을 알기에 작년도 올해도 난 내가 처음으로 참석한 제3회 부산국제영화제를 잊지 못한다.
그게 나에게 초심이고 그게 영화에 대한 나의 열정이었기에 개막식을 기다리면서 그 순간을 상기한다. 그때의 열정을 잃지 말자 그때의 결기를 잊지 말자 하면서….
영화제 기간 중 이런저런 미팅이나 심사를 위해 하루에도 몇 번씩 해운대 극장가에 가야 한다. 해운대 극장가에는 빵과 우유를 마시며 백펙을 멘 미래의 영화인들이 상영시간표를 들고 분주히 다니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들은 하루에 서너편의 영화를 보면서 잠은 찜찔방이나 사우나에서 잘테고 밥도 편의점 간편식으로 먹으면서 영화에 대한 꿈을 키워 나갈 것이다.
그들이 앞으로 한국영화를 세계에 알리고 자리매김할 훌륭한 영화인들로 커 나갈 것이 분명하다고 나는 확신한다. 저 젊은 영화지망생들이 앞으로도 아니 영원히 한국영화의 명맥을 이어나갈 소중한 재원들임을 난 확신한다. 그래서 난 그들이 사랑스럽고 자랑스럽고 고맙다.
이제 나도 어느덧 영화계에서 선배의 입장에 서게 됐다. 영화는 누군가에겐 낭만이고 추억이겠지만 영화인들에겐 냉엄한 현실이기도 하다. 많은 영화인들이 오늘도 자신의 꿈을 위해서 현실적인 어려움을 감내하고 또 감내해야 함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
오늘도 난 마음을 다잡는다. 내가 영화를 사랑하고 좋아하는 것만큼 아니 그보다도 더 영화를 사랑하고 좋아하는 후배들에게 좋은 환경을 물려 줄 수는 없다 하더라도 그들에게 명맥을 이어 나갈 수 있는 바톤은 전해야 한다. 내 뒤를 걸을 후배들에게 꼭 바톤은 전해야 한다. 앞으로도 부산영화제는 계속 이어질 테고 영화 또한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할 것이다.
원동연 리얼라이즈픽쳐스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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