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칼럼 36.5°/10월 25일] 부정ㆍ불복 정국의 수리적 해법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칼럼 36.5°/10월 25일] 부정ㆍ불복 정국의 수리적 해법

입력
2013.10.24 11:25
0 0

한국, 터키, 그리스.

이들 나라의 공통점은 뭘까. 이달 초 세계은행(WB)으로부터 '국제 금융계에서 실제 실력보다 신용등급이 저평가된 대표 국가'로 지목됐다는 점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세계 1위 신용평가회사인 S&P 평가(A+ 등급ㆍ128개국 가운데 33위)와 WB가 객관적 경제지표를 토대로 산출한 순위(AA 등급ㆍ16위) 사이에 17계단이나 차이가 났다. 우리나라 외채 규모(2,700억 달러)와 등급 상승에 따른 금리인하 효과를 고려하면, 저평가에 따른 경제적 손실은 연간 4억 달러가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가 국제 금융계에서 저평가 받는 이유는 '깨끗하지 못한 과거'때문이다. "1997년 이미 위기에 빠졌던 나라인 만큼 아무리 좋게 보여도 믿을 수 없다"는 '낙인'이 찍혀 있는 것이다.

10월 들어 민주당과 새누리당이 각각 '부정선거', '대선불복'을 주장하며 격렬하게 대립하고 있다. 그런데 각 진영의 열렬한 지지층을 제외하면 중간지대에 선 대부분 국민은 누구 편도 들지 않는다. 국정원이 사이버 여론을 조작한 게 드러났는데도, 민주당이 기대했던 것만큼 광화문 광장에서는 촛불이 확산될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한때 60%를 넘었던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도 50%대로 추락했다.

왜 그럴까. 낙인효과 때문이다. 국제 금융계가 한국에 대한 의심을 거두지 않는 것보다 훨씬 높은 강도로 대다수 국민은 정치권의 진실성을 믿지 않는다. 새누리당이나 민주당 모두 상대방의 부도덕성과 저열함을 주장하지만, 시계를 돌리면 두 진영 모두 지금과 180도 상반된 행태를 보였던 걸 알고 있다.

민주당은 정치개입을 문제 삼아 국정원 개혁을 외치지만, 국민들은 민주당 집권기인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의 국정원이 어떤 행태를 보였는지를 여전히 기억한다. 공작 정치의 최대 피해자를 자처했던 김 전 대통령은 집권 기간 국정원이 주요 인사 도청으로 취득한 정보를 보고 받았다. 노 전 대통령 집권 중에도 국정원의 '부패척결 TF'가 이명박 전 대통령의 친인척과 주변 인물 93명의 개인 정보를 406차례나 조회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청와대와 새누리당도 떳떳하지 못하다. "대선 결과에 불복하는 건 민주주의 원칙에 위반된다"는 새누리당 주장을 진심으로 받아들일 국민도 드물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 직후 재검표를 요구하며 흔쾌히 승복하지 않은 장본인이 바로 새누리당의 뿌리인 한나라당 아닌가.

상황이 이쯤 되면 두 진영이 죽기 살기로 맞붙었지만, 이번 대결에서 어느 한 쪽이 완승을 거둘 수 없게 된 건 누가 봐도 명백하다. 각자 상대방을 때려 누이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그럴 가능성은 전혀 없고, 두 진영 모두 진흙탕에서 뒹굴며 싸우는 개 신세가 될 뿐이다.

아무리 잘 해봐야 '55 대 45' 이상의 판도를 깨기 어렵다면, 그 선에서 빨리 타협하는 게 상책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상대방에게 55점을 주고, 나머지 45점이라도 챙기는 게 장기적으로 승리하는 길이다. 잘못한 건 빨리 사과하고, 제 과거를 돌아보지 않고 무리하게 몰아붙인 게 있다면 그 역시 빨리 포기할 수록 좋다.

두 거대 정당이 싸우며 시간을 보내기에는, 2013년 대한민국에는 챙겨야 할 일이 너무 많다. 해법이 안 보이는 북핵 문제, 미국과 중국 간의 세력 다툼에서 한국의 입지는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회복세로 돌아선 우리 경제도 이번 정기 국회에서 입법 지원이 제때 이뤄지지 않으면 올 하반기 3%대 성장이 어려운 상황이다. 지금처럼 정쟁으로 날 새우면, '왜 이렇게 경제가 망가졌느냐'며 기획재정부와 경제부총리를 다그칠 수도 없게 될 것이다.

조철환 경제부 차장 chcho@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