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즐거운 세상] “오바마는 오 대통령”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즐거운 세상] “오바마는 오 대통령”

입력
2013.10.23 23:57
0 0

타고나는 기자는 없다. 선배들에게 글로 술로 말로 혼나가며 특종의 기쁨과 낙종의 아픔을 겪으면서 기자는 만들어진다. 기자공동체의 전통과 정신이 강한 곳일수록 여리고 어린 기자들에게 등뼈를 심어주는 선배들의 존재가 빛난다. 회사 내와 취재현장에서의 훈련은 당연하지만, 술자리에서의 조련은 더욱 중요한 필수과목이다.

그런 훈련과 조련을 통해 단단하게 단련된 기자들이 나중에 새로 들어온 후배들에게 등뼈를 심어주는 훌륭한 선배가 된다. 보고 배운다는 말이 기자사회처럼 정확한 곳도 없을 것이다. 그러니 견습기자 때부터 제대로 잘 배워야 한다. 처음 만나는 1진 선배의 모습은 기자로서의 평생을 좌우할 만큼 영향력이 크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기자들을 대학에서 학생 가르치듯 체계적으로 육성하는 언론사는 없다. 그건 어쩌면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어깨 너머로 배운다는 말이 맞다. 기자들은 후배를 논리적으로 가르칠 이론도 이유도 없고 그럴 시간과 여유도 없다. 몸으로 말로 욕으로 취재와 보도의 노하우를 알려줄 수 있을 뿐이다.

선배들이 후배들의 글을 다듬는 데스킹 작업은 ‘기자 만들기’의 가장 중요한 과정이다. 지금처럼 컴퓨터를 이용하지 않고(그런 일을 상상이나 했겠나?) 육필로 기사를 써서 넘기던 시대에는 이 과정이 특히 중요했다.

지금 기자들이야 온라인으로 글을 띄워놓고 나중에 선배가 고친 걸 보는 식이지만, 예전에는 글을 넘기고 현장에서 ‘재판’을 받아야 했다. 선배나 데스크는 쓴 기자를 앉혀놓고 이건 무슨 말인가, 이 표현은 왜 이런가, 왜 이런 중요한 게 빠졌나 등등을 심문한다. 요즘처럼 후배가 글을 넘겨놓고 먼저 퇴근하거나 지 볼 일 보러 다니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선배의 지시대로 미흡한 점을 보충하고, 데스킹 작업을 마음 졸이며 지켜보다가 기사가 편집부로 넘어간 뒤에야 술자리로 따라가는 게 정해진 순서였다. 술자리에서는 취재 여담이 이어지지만 따지고 보면 그런 과정이 다 교육이었다. 그런데, 술을 마시며 떠들다가 “너 그거 기사잖아? 말로 하는 거야, 기사 안 쓰고?”라는 지적을 받으면 그때부터 새로운 취재가 시작된다. 그런 게 싫어서 입을 잘 열지 않는 기자들도 있었지만.

데스킹을 할 때 후배의 글을 통째로 다시 쓰면서 자기 어투로 고치는 사람도 있는데, 그런 건 잘못이다. 후배로서는 한 번 고쳐주면 다음에 절대로 틀리지 않고, 기사를 고친 핵심이유를 잘 파악해야 기자로서 대성할 수 있다. 집단 토론회의, 학술 토론회의라고 풀이되는 symposium의 한글 표기는 심포지엄이다. 그런데 아무리 고쳐줘도 계속 심포지움이라고 쓰는 녀석이 있었다. 결국 그는 기자로 적응하지 못하고 회사를 나갔다.

온라인 매체에서 데스크로 일하고 있는 후배와 술을 마시다가 재미있는 말을 들었다. 요즘 갓 들어온 기자들에 관한 이야기다. 잘 알다시피 요즘 젊은이들은 글자가 넉 자 이상 넘어가면 무조건 줄이려 한다. 기자들이 처음 그렇게 한 건 아니지만 김밥천국이라는 음식점을 ‘김천’이라고 줄여 부르는 식이다.

그래서일까.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오 대통령, 노다 요시히로 일본 총리(2011~2012)를 노 총리라고 쓰는 기자가 있었다고 한다. 물론 처음부터 그렇게 쓰는 건 아니고 두 번째 문장에 나올 때부터 그렇게 줄이더라는 것이다. “야 임마, 이게 뭐야? 이렇게 쓰는 게 어딨어?”라고 하면 머리를 긁적이며 그래도 되는 줄 알았다고 하더란다.

줄이면 우리나라 성과 같아지기 때문일까? 특히 오바마는 건배사 만들기에 좋고 부르기 쉬운 이름이다. 게다가 한국 칭찬을 자주 해 우리와 친숙해져서 저절로 줄여 쓰게 된 걸까? 일본 총리는 그런 것도 아닐 텐데? 그런 식이면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네 총리(내 총리는 아니고!), 엔니케 페나 니에토 멕시코 대통령은 니 대통령, 스티븐 하퍼 캐나다 총리는 하 총리가 될 수 있겠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나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캐 총리, 메 총리가 될 거고, 나중에 혹시 힐러리가 미국 대통령이 되면 힐 대통령이라고 쓰는 녀석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요컨대 요즘 젊은 기자들, 특히 온라인매체의 기자들은 훈련이 부족한 것 같아서 걱정이다. 하기야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을 ‘엘 여왕’이라고 줄여서 제목 붙인 신문은 오래전부터 볼 수 있었다.

임철순 한국일보 논설고문 fusedtree@hanmail.net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