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대선 당시 박근혜 대통령과 경쟁했던 민주당 문재인 의원이 대선의 공정성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여야간 대치 정국의 파고가 한층 높아지게 됐다. 지난주부터 어렵사리 시작된 국정감사는 물론 각종 법안 및 새해 예산안 처리 등 향후 정기국회 일정 자체도 정상 진행이 어려울 전망이다.
당장 새누리당은 문 의원의 성명을 계기로 '대선 불복' 논란을 전면화하는 모습이다. 그간 국가정보원에 이어 국군 사이버사령부와 국가보훈처까지 대선에 불법적으로 개입했다는 의혹이 확산되면서 수세에 몰렸던 새누리당으로선 국면 전환의 기회를 갖게 된 셈이다. 한 고위당직자는 "대선에서 박 대통령과 경쟁했던 당사자가 불복 가능성을 내비친 만큼 절대로 묵과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선 불복 논란의 가열은 자칫 정치권 전체를 정쟁의 늪에 빠뜨리는 결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민주당 지도부가 대선 불복과는 선을 그으면서 대선 과정에서의 불법행위에 초점을 맞추더라도 문 의원이 사실상 대선 불복 논란 속으로 뛰어든 상황에서 새누리당이 이를 적극 활용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반환점을 돌기 시작한 국감은 물론 각종 민생ㆍ경제법안들과 예산안 처리를 두고도 여야간에 격한 공방이 불가피해 보인다. 우선 국감만 해도 법사위와 국방위, 안전행정위, 운영위, 정보위 등 이른바 '댓글 사건'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상임위가 수두룩하다. 교학사 역사교과서, 4대강 사업 등 다른 상임위의 현안들도 많아 남은 국감 기간은 그 자체로 지뢰밭이다.
이미 기초연금을 비롯한 대선공약 및 경제민주화 후퇴 논란, 부동산대책 및 경제정책 기조 등을 두고 여야가 수 차례 전투를 치러온 만큼 이들 현안과 관련된 입법 과정은 그야말로 난산이 예상된다. 새해 예산안의 경우 그렇잖아도 여야가 세제개편과 복지예산 확충 방안 등을 놓고 이미 현격한 시각 차를 드러낸 만큼 정국 경색이 장기화하면서 절충의 여지가 줄어들면 준예산 편성 사태에까지 이를 수 있다.
이처럼 정국의 실타래가 더욱 꼬여갈 개연성이 높은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변수는 역시 여론의 흐름일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새누리당이 제기한 '대선 불복 프레임'에 대한 지지가 높을 경우 민주당은 타격을 받으면서 친노(親盧)ㆍ비노(非盧)간 대립이 심화할 수 있다. 반면 "권력기관들의 불법행위를 뿌리뽑자는 주장을 대선 불복으로 매도하는 건 국민의 눈과 귀를 막는 것"(민주당 한 재선의원)이란 주장이 공감을 얻게 되면 여권 전체가 곤혹스러워진다. 여기엔 검찰 수사가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지금껏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 박 대통령의 입장 표명 여부도 관심이다. 대선의 공정성 논란을 차단하는 문제뿐 아니라 현실적으로 법안ㆍ예산안 처리가 절실하다는 점에서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문 의원이 명시적으로 대선 불복을 주장한 게 아닌 만큼 박 대통령의 정치력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양정대기자 torc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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