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한 일본의 반핵운동가이자 '원자력자료정보실' 설립자였던 다카기 진자부로(高木仁三郎)는 동경대학에서 화학을 공부하고 원자력 관련 회사에서 일하던 유능한 연구자였다. 그러던 그가 인생을 바꾸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산리츠카(三里塚) 농민들과의 만남이었다. 당시 1960년대 산리츠카에서는 나리타공항 건설과정에서 강제 토지수용을 당하게 된 농민들의 투쟁이 격렬하게 벌어지고 있었다. 그는 투쟁의 현장에 갔고, 거기서 거대한 불도저로 상징되는 국가폭력 앞에 맨몸으로 자기 농토를 지키려고 싸우는 농민들을 보았다. 그들은 자신의 몸을 나무에 사슬로 묶은 채 울부짖었고, 지하땅굴 속에서 저항했다.
살아있는 삶에 뿌리박은 농민들의 논리는 간단명료했다. "이 땅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우리는 이 땅에서 오랫동안 농사를 짓고 살아왔다. 이것은 우리가 살아온 우리의 방법이다. 우리는 이 땅을 후손들에게 물려주지 않으면 안 된다. 땅은 돈으로 사고 팔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농민들의 말이 갖는 진실성을 그는 본능적으로 이해했고, 자기 자신에게 물었다. "나는 어느 편에 서있는가?" 이때부터 그는 민중을 위한 과학을 생각하게 되었고, 시민과학자로서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
라는 책은 그가 죽음을 앞두고 쓴 자서전이다. 이 책에서는 한 사람의 비범한 개인이 단순히 성공한 과학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대학이나 기업시스템이 주도하는 이해관계를 떠나 시민들 속에서, 국가권력이나 기업으로부터 독립된 자립적인 과학자의 길을 걷게 된 과정을 기록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현실을 회피하지 않고 성실하고 정직하게 대면하면서 소박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필연적으로 부닥치게 되는 곤경이 어떤 것인지, 그리고 그 곤경 속에서도 어떻게 희망을 일궈갈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반원전의 문제가 결국은 국가의 존재양식에 대한 근본적인 도전이며, 민주주의의 문제로 이어진다는 것을 알게 된다. 왜냐하면 원전과 관련된 모든 일의 배경에는 "국가의 이익을 위한다"는 명분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명분의 배후에는 개인의 인권이나 삶을 바탕으로 국가가 있는 것이 아니라, 국가 밑에 개인이 있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현재 일본의 플루토늄 정책은 관료들과 그들을 추종하는 일부 학자, 기술자들의 손에 좌우되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과 이해관계가 있는 거대한 프로젝트에서 손을 떼지 못한다. 그들 전문가나 지식인들에게 판단을 맡기는 것은 우리의 생명과 아이들의 미래를 그들에게 맡기는 것이다. 플루토늄과 같은 맹독성 물질, 쉽게 핵무기가 될 수 있으며 또 비밀의 벽을 두껍게 쌓지 않으면 지킬 수 없는 그런 물질과 안전하고 민주적인 사회가 어찌 양립할 수 있는가." 그는 거대 테크놀로지와 민주주의가 어디까지 서로를 허용할 수 있는가라는 현대세계의 보편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원자력산업은 인간의 삶을 철저히 무시한 채 전쟁이라는 맥락 속에서 탄생했다. 또한 원전건설 계획은 단순히 전력수급의 문제가 아니라, 국익으로 포장된 건설자본과 금융자본의 이해관계가 개입되어 있다. 그리고 그 맞은편에 국가권력과 자본 앞에 무력할 수밖에 없는 변경지대의 농민들과 어민들이 있다. 지금 밀양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이 오래된 싸움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러나 희망은 있다. 나리타공항은 지어졌지만, 불완전한 형태로 지어졌고, 산리츠카투쟁은 자식들이 이어받아 지금까지 30여 가구가 계속해서 싸우며 유기농농사를 짓고 있다. 아무리 짓밟아도 일어나는 사람들은 있는 것이다.
바라기는, 밀양의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는 주민들이 모르는 사람들로부터 오는 애정과 존경을 느낄 수 있었으면 한다. 어쨌든 모두가 함께 있다는 생각을 절실하게 느끼게 해드리고 싶다.
박경미 이화여대 기독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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