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공화당이 건강보험개혁법(오바마케어)에 반발, 2014회계연도 예산안 처리를 무산시키며 연방정부 폐쇄(셧다운)를 초래했을 때, 지난해 6월 당시 공화당 대통령 후보 밋 롬니가 한 말이 떠올랐다. 연방대법원이 오바마케어의 '개인 보험가입 의무' 조항에 합헌 결정을 내리자 그는 "대통령에 당선되면 임기 첫날 오바마케어를 폐기하겠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이 발언에서 오바마케어에 대한 공화당의 깊은 적대감을 확인하고 쓴웃음을 지었다. 롬니는 매사추세츠 주지사로 있던 2000년대 중반 주(州)건강보험제도를 시행했고 그것이 오바마케어에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롬니의 발언은 자신의 과거를 뒤집는 것이었다.
민간보험 미가입자를 의무적으로 건강보험에 가입하게 하되 저소득자에게는 정부보조금을 주는 것이 오바마케어의 핵심이다. 하지만 공화당은 국가예산을 개인의 건강보험에 사용하는 것을 사회주의 정책으로 여긴다. 그 정책이 의회를 통과하고 합헌 결정을 받았어도 결코 용납할 수 없어 취한 극단의 행동이 바로 셧다운이었다. 예산 배정이라도 막아 오바마케어의 실행을 방해하자는 것이었는데, 누가 보아도 성공할 수 없는 이 무모한 행위를 보고 독일 언론들은 '가미가제 정당'이라고 공화당을 꼬집으며 "근본주의자들이 자기 교리를 전파하기 위해 조국을 조롱거리로 만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공화당이 늘 이렇게 무모하고 현실감각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랬다면 이 정당이 미국의 그 많은 대통령을 배출할 수 없었을 것이다. 1970년대까지의 공화당은 복지와 진보의 가치를 마냥 외면하지는 않았다. 전통적 방임주의와 다르다며 뉴딜정책의 시행에 반대했지만 그 결과까지 부정한 것은 아니다. 뉴딜정책을 추진한 민주당의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네 번 대통령에 당선된 것을 보면서 정부개입 정책의 정치적 필요성은 적어도 인정했다. 그 뒤 대통령이 된 공화당의 아이젠하워는 뉴딜정책의 성과를 되돌리려 하지 않았다. 공화당의 리처드 닉슨은 모든 국민이 높은 수준의 의료 혜택을 받도록 종합건강보험계획을 제안했고, 제럴드 포드는 진보주의자인 넥슨 록펠러를 부통령으로 앉혔다.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는 비록 일부 충돌이 있었어도 "미국 정치는 원칙에 대해 같은 가치 기준을 가진 정치인 사이의 초당적 제휴로 지배됐다"고 당시를 평가했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공화당은 로널드 레이건과 조지 부시를 거치면서 극단적 우경화로 내달렸다. 신자유주의의 확산, 소련 및 이슬람과의 대결 등이 그 배경이자 핑계였다. 이 극단적 정치로 잠시 경제가 좋아지거나 사회가 안정될 수는 있었겠지만 그것이 오래 효과를 발휘한 것은 아니었다. 길게 볼 때 경제가 좋아졌거나 사회가 안정됐다고 할 수는 없었다. 대신 빈부격차가 벌어지고 재정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었으며 마침내 금융위기까지 찾아왔다. 이제 미국은 효용성 잃은 신자유주의를 더 이상 붙잡고 있을 수 없고 레이건과 부시처럼 적대세력에 맞선다는 핑계도 통하지 않게 됐다.
하지만 지금의 공화당은 이런 흐름을 놓치고 있다. 자유지상주의, 미국예외주의, 개인책임주의에 눈멀어 총기로 사람이 죽든 말든, 복지 혜택을 받지 못해 절망에서 헤매든 말든 나 몰라라 하는 지지자들만 눈에 들어왔을 테고 그들의 호응을 기대하면서 셧다운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결과는 다 알다시피 공화당의 참패였다.
공화당은 이번 사태의 책임을 놓고 내부적으로 갈등을 겪고 있다. 이번 사태는 단순히 정치게임의 승패를 가린 것이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책임 공방만 하고 주도권 싸움만 할 게 아니라 당의 좌표를 다시 정하고 국민과의 거리를 좁히는 계기로 삼으라는 주문이 많다. 이민자 유입과 인구 구성의 변화로 정부의 손길이 필요한 국민이 증가했다는 현실을 인정하고 지난 30여 년 동안 오른쪽으로만 달려온 길에서 잠시 벗어날 필요도 있다. 세계인은 지금 공화당이 다시 태어나길 기대하고 있다.
박광희 국제부장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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