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극단이 3부작으로 내놓은 아리스토파네스 희극 시리즈의 마지막 편인 연극 '새'는 원로 극작가 윤조병과 상식을 깬 무대 디자인으로 각광을 받는 연출가 윤시중 부자의 합작이다.
극단 '하땅세'를 이끄는 윤시중은 미국에서 무대미술을 공부한 이력을 십분 발휘해 이번 '새'에서도 "무대가 배우나 대본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해 줄 수 있다"는 메시지를 관객에게 심어줄 것으로 기대됐다. 윤시중 연출은 지난 작품인 '파리대왕'에선 무대의 커튼 움직임 하나만으로 무인도 표류 상황을 묘사해냈고, '타이투스 앤드로니커스'에선 다용도로 쓰이는 원목 조형물과 움직이는 무대, 그리고 스탠딩 객석 공연으로 역시 무대 연출의 기발함을 빛낸 바 있다.
다음달 3일까지 서울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공연되는 연극 '새'에서도 윤시중 연출(겸 무대디자인)의 독특한 무대 언어가 또렷하다. 조명이 밝아오면 "빚을 갚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찾겠다"고 길을 떠난 피스(박성연)와 에우(한일규)는 객석 쪽으로 가파르게 기운 원목 느낌의 거대한 나무판 무대를 힘겹게 오른다. 자작나무 합판으로 만든 가로 10m, 세로 8m, 높이 7.2m 크기의 대형 무대는 윤시중 연출이 새를 연기하는 배우들의 역동성을 극대화하려는 장치다. 바니시칠로 마감한 까닭에 배우들은 미끄러지고 넘어지고 달리는 연기를 훨씬 쉽게 할 수 있다. 이 무대는 기울기도 조절할 수 있어 산이 되거나 평지가 되고, 심지어 깎아지른 성벽으로 변한다.
산을 오른 끝에 현자 새인 '오디새'를 만난 피스와 에우는 달변으로 "공중에 새의 나라를 만들어 신들과 맞서고 인간의 조공을 가로채자"고 꾄다. 졸지에 새들의 우두머리가 된 두 인간은 날개를 얻고 급기야 공중 성채를 쌓는다. 14명의 배우는 여러 종류의 새들로 분장해 미끄러운 나무판 무대를 뛰어다니고 굴러 떨어지는 등 다채로운 군무를 펼친다. 마치 하늘에 닿기 위해 바벨탑을 쌓았던 어리석은 인간들처럼 새와 인간은 연합해 성채를 건설한다. 제작진은 여기에 영합하는 지상의 인간들과 하늘에서 정찰 나온 신들을 등장시킬 때에도 나무판 무대를 적절히 활용한다. 변호사는 성벽을 표현하려고 직각으로 세워진 무대를 뚫고 나와 자신의 가치를 홍보하고, 프로메테우스는 세워진 무대 위에서 밧줄을 타고 내려와 신의 말을 전한다. 배우들이 나무판 무대 뒤에서나 아래에서도 동선을 쉽게 움직이고 연기를 준비하도록 보이지 않는 구조물들에 공들였다고 제작진은 귀띔한다. 온 세상의 새를 동원해 신과 전쟁을 선포한 피스. 성벽에 가로막혀 인간의 제물을 받지 못하는 신들은 마침내 협상장에 나와 피스의 요구대로 왕권을 내놓는다.
윤시중 연출은 "인위적인 색감이나 장식이 더해지지 않은 거대한 나무판 무대를 통해 인간 문명 건설의 과정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욕망에 닿기 위해 때로는 오르고 때로는 추락하는 인간(연극에서는 새로 묘사)들을 연기하는데 나무판 무대가 큰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앞서 무대에 오른 '개구리', '구름' 등 국립극단의 희극 시리즈는 정치풍자 정도가 높아 이목이 쏠렸다. 미세하나마 '새'의 스토리에도 권력과 정치권을 향해 각을 세운 연출의 의도가 엿보인다. 윤시중 연출은 "희극이라고 해서 꼭 관객을 웃겨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정치 메시지를 대놓고 드러낼 의도도 없다"며 "하지만 관객이 느끼고 가져갈 수 있는 정치풍자는 충분히 들어있다"고 말했다.
양홍주기자 yang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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