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에 구멍이 생겼다. 현실을 무시한 채 안일하게 보호범위 금액만 올린 법 기준 탓이다. 올 들어 관련 분쟁이 끊이지 않았던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 상가는 정작 보호받지 못하는 사각지대로 남을 가능성이 커졌다. 시장에선 금액보다 권역현실화가 우선이라는 주장이 벌써부터 나온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최근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일부 항목을 개정했다. 임대료 상한제한 및 5년간 계약갱신권리를 갖는 환산보증금(보증금+월세×100) 범위를 서울은 3억원에서 4억원, 수도권과밀억제권역은 2억5,000만원에서 3억원, 광역시와 경기 일부 지역은 1억8,000만원에서 2억4,000만원으로 올린 것이다. 예컨대 서울에서 환산보증금 3억5,000만원에 상가를 빌려 장사를 하고 있다면 예전과 달리 개정안에 따라 보호를 받을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정작 실효성은 떨어진다는 게 업계의 지적이다. 부동산114가 2009년 이후 자체 등록한 수도권 290만개 남짓 점포 매물의 환산보증금 변동추이를 분석한 결과, 올해 2분기 서울의 평균 환산보증금은 2억8,211만원으로 25개구 중 22개가 개정 전 범위(3억원)에 포함됐다. 법 개정 혜택을 누린 지역은 용산구(3억1,743만원)가 유일했다.
반면 강남구(5억569만원) 서초구(4억1,246만원)는 금액 상향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수치가 평균값인 걸 감안하더라도 서울 강남과 서초에서 상가를 빌려 장사를 하는 이들 상당수가 법 개정 후에도 보호를 받지 못한다는 얘기다.
수도권과밀억제권역 22곳 중에도 성남시(2억8,522만원) 광명시(2억7,288만원) 과천시(2억5,013만원) 등 3곳만 개정 전 범위(2억5,000만원)를 넘어섰다. 게다가 인천의 경제자유구역(송도 영종 청라)과 김포 용인 파주 화성 등 수도권 신규택지지구는 환산보증금이 상당히 높은 편이지만 과밀억제권역에서 제외돼 보호받을 수 있는 금액은 오히려 낮다. 임대차보호 강화 명분으로 금액을 올렸지만 정작 허점투성이 개정이 된 셈이다.
사실 보증금을 기준으로 보호범위를 설정하는 사례는 세계적으로 드물다. 유사한 조항이 있는 영국도 극히 일부만 예외로 두고 있다. 비현실적이고 비합리적인 적용범위 기준을 폐지해야 한다는 얘기다. 장용훈 부동산114 선임연구원은 "권리금과 월세의 지역적 편차가 큰 서울과 경기 일부 지역에 일괄적으로 동일한 환산보증금을 적용하는 것은 현실에 맞지 않으니 서울 강남권역, 경기 2기 신도시 지역만이라도 우선적으로 권역을 조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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