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최근 증폭되고 있는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에 대해 침묵 모드를 유지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22일 청와대에서 주재한 국무회의에서도 국정감사 대비와 경제활성화 법안 처리 등을 당부하면서 국정원 사건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았다. 국정원 직원의 트위터 글이 무더기 발견되고 윤석열 전 특별수사팀장의 폭로 등으로 외압 논란까지 거세지고 있는데도, 철저한 수사나 진실 규명을 지시하는 원론적인 언급도 나오지 않았다. 사실상 의도적인 외면인 셈이다.
박 대통령이 이 사건에 대해 거리를 두는 것은 그간 수차례 "전 정권의 일이며 국정원의 도움을 받은 적이 없다"며 강하게 선을 그어왔던 기존 입장의 연장선으로 볼 수 있다. 아울러 검찰 내부에서부터 아직 상황 정리가 되지 않는 마당에 섣불리 입장 표명에 나설 경우 정치적 공세에 휘말려 사태를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같은 의도적 외면이 6만여건에 이르는 트위터 글 추가 발견 등으로 증폭되고 있는 국민들의 의구심을 잠재울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국정원의 대선 개입 정황이 뚜렷해지고 있는데다, 황교안 법무장관과 남재준 국정원장 등 현 정부 인사들까지 국정원 수사를 방해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논란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국정원 사건과의 무관함을 강조해온 청와대의 '모르쇠'식 태도가 지금으로서는 국민들에게 궁색한 회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국정원 사건에 대해 보여온 박 대통령의 강경한 입장이 오히려 운신의 폭을 좁히는 요인이 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편, 박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증세 이야기부터 꺼내는 것은 국민에 대한 예의도 도리가 아니다"라면서도 "정치권도 경제활성화를 위한 입법에 최선을 다한 다음 그래도 복지를 위한 재원이 부족하다면 그때 증세를 이야기 하는 게 옳은 순서"라며 증세 가능성을 거론했다. 박 대통령은 "그럴 때 국민대타협위원회 구성 등을 통해 증세를 논의하면 국민들께서도 내가 낸 세금이 알뜰하게 쓰인다는 믿음이 생길 수 있고 증세논의와 결정도 이해해 주실 것"이라고 말했다. 원론적 수준에서 증세를 언급해왔던 박 대통령이 국민대타협위를 증세 논의 기구로 설정해 사실상 증세를 위한 구체적 로드맵을 제시한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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