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요타는 세계 1위의 자동차회사다. 소니가 무너진 상황에서 유일한 일본의 자존심으로도 불린다. 대지진과 리콜, 엔고 등 이중삼중의 악재를 겪었지만 결국 살아나 빼앗겼던 글로벌 시장의 왕좌도 되찾았다.
그런 도요타가 유독 한국시장에서만 맥을 못 추고 있다. 독일계 완성차 업체들에게 밀리는 것은 물론 일본의 2,3등 업체인 혼다 닛산한테도 뒤진다. 월드 베스트셀링카인 캠리도, 하이브리드차의 대명사인 프리우스도 한국시장에선 명함조차 내밀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세계 1등인 도요타가 국내 시장에서만 말 그대로 '죽을 쑤는' 이유를 놓고 업계에선 다양한 분석이 쏟아지고 있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 달 도요타는 프리미엄브랜드로 별도 마케팅과 네트워크를 가진 렉서스를 빼고, 국내 시장에서 고작 410대의 자동차를 팔았다. 수입차 시장 내 점유율은 3.2%. 폭스바겐 벤츠 BMW 아우디 등 독일계 완성차들이 모두 두자릿수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는 것에 비하면 '굴욕'수준이다.
도요타는 지난 5월 반짝 호황을 누리기도 했다. 엔저로 확보된 가격경쟁력을 바탕으로 차값을 10%나 깎아주는 파격 할인공세를 편 결과, 한 달간 1,300대 이상 팔아치우는 최대실적을 올리기도 했지만 그 효과는 한두 달을 넘기지 못했다.
그 결과 도요타는 올해 들어 9월말까지 총 6,027대를 판매, 전년동기대비 25%의 역성장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수입차 시장이 21%나 성장한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역주행인 셈이다. 게다가 한 수 아래로 평가되는 혼다와 닛산이 각각 35.5%, 40.2% 성장한 것에 비하면 도요타의 실적은 그야말로 낙제점이란 평가다.
도요타는 이에 대해 '착시'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토요타 관계자는 "중형세단 캠리, 미니밴 시에나, 하이브리드차 프리우스 등 인기 차종의 공급 부족으로 충분한 판매를 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며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신차가 쏟아지면서 작년 판매량이 급격히 치솟았던 바람에 올해 실적이 상대적으로 저조해 보이는 측면이 강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도요타가 세계 최강인 것은 맞지만, 국내 시장에선 분명 흐름을 읽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기계전자산업팀장은 "국내 수입차 시장의 무게중심은 고급차에서 대중차로 급격하게 이동하고 있고 이러한 대중차의 선택 포인트는 높은 연비와 저렴한 가격이다. 독일브랜드들은 디젤차로 이런 흐름을 주도하고 있는데 도요타는 전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국내 수입차는 60% 이상이 디젤차인데, 국내 소개된 10여종의 도요타 차종 중 디젤엔진을 얹은 모델은 전무하다.
그렇다고 가솔린 모델에서 특별히 비교우위가 있는 것도 아니다. 도요타의 주력인 가솔린 모델은 국내 완성차와 경쟁관계인데, 현대ㆍ기아차를 압도할 만한 요소가 없다는 지적이다. 박현구 브랜딩컴 대표는 "초기만 하더라도 수입차는 내구성, 안전성 외에도 특별한 느낌을 주는 '감성품질'때문에 선택을 받았다. 하지만 국산차가 세련화되면서 도요타의 감성경쟁력도 떨어지게 됐다"고 말했다. 쉽게 말해 국내 소비자들이 굳이 비싼 돈을 주고 도요타를 선택할 동기를 느끼지 못한다는 것인데, 실제로 도요타의 준중형 코롤라는 북미지역에선 베스트셀링카지만 국내에서는 1,000만원 가량 싼 아반떼에 밀려 올해 단 13대 판매에 그쳤다.
업계 관계자는 "적어도 국내시장에서 도요타는 국산차와 독일차 사이에서 샌드위치 신세"라며 "흐름파악도 타겟팅도 모두 잘못된 것 같다"고 말했다.
정민승기자 ms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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