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의 질타를 받았던 고교 한국사 교과서 8종에 대해 교육부가 그제 829건에 달하는 무더기 수정ㆍ보완 권고를 내렸다. 문제의 교과서들이 검정심의를 이미 통과한 것이어서 교육부의 뒤늦은 수정 권고가 검ㆍ인증제도의 근간을 해친다는 비판도 없지 않으나 잘못을 바로잡는다는 명분을 훼손할 수는 없다.
식민지 근대화론이나 일본군 위안부 동원 시점, 5ㆍ18 유혈사태의 원인 등 근ㆍ현대사의 일부 주요 사건에 대해 분명한 서술과 사실 명기를 지적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우편향이라는 비난을 받았던 교학사 교과서의 잘못된 내용 상당수가 지적되지 않았고, 사실오류를 바로잡는 선을 넘어 서술상의 불균형, 국가정체성까지 문제 삼은 것은 또 다른 논란이 될 소지가 다분하다. 벌써 교학사를 제외한 나머지 7종 교과서의 집필진은 "(사관 수정을 강요하는)수정권고안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혀 2008년 불거졌던 법정소송이 재연되고 교과서 채택 일정이 차질을 빚을 가능성도 있다.
논란의 중심이었던 교학사 교과서의 내용 중 5ㆍ18 계엄군 발포 부분 누락, 박정희 유신체제에 대한 미화적 기술은 거의 개선되지 않았다. 이승만 대통령을 다른 건국 지도자들보다 과도하게 서술했다는 지적도 반영되지 않았다. 이에 반해 다른 7종 교과서에 대한 권고사항은 식량난이나 인권, 탈북 등 북한의 실상을 분명히 하라는 게 대부분이었다. 교육부가 보수세력의 주장을 재차 수용했다는 의혹을 사는 이유다. 전체의 30%인 251건으로 가장 많은 권고를 받은 교학사 교과서의 오류를 희석시키기 위해 다른 교과서들의 사소한 오류들을 끼워 넣어 건수를 부풀렸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번 권고작업에 참여한 25명의 TF팀과 12명의 전문가자문위원회의 면면이나 직업을 일체 비공개로 한 불투명성도 문제다. 이래서는 객관성을 설득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정권의 자의적 판단이 개입됐다는 의심만 더해 줄 뿐이다. 이런 사태를 초래한 직접적인 원인인 부실한 검ㆍ인정제도를 쇄신해야 한다. 검정인원, 검정기간, 검정예산 등 모든 것이 졸속인 현행 제도의 폐단은 이미 다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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