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 제1호 숭례문이 최근 부실시공 논란으로 몸살을 앓았다. '보수 5개월 만에 단청 칠이 벗겨졌다'는 보도에 이어 현판 변색, 성벽 백화(白化) 주장까지 나왔다. 현판 변색은 국정감사에서 한 건 하려는 한 의원의 무리수로 판명 났지만, 단청 박락은 사실로 드러나 파장이 컸다.
단청 칠이 벗겨졌다는 뉴스에 인터넷에는 '일본산 안료에, 아교가 공업용'이라는 카더라 통신으로 도배됐다. 불타는 애국심에 바쳐질 희생자가 물색되는 가운데 문화재청의 숭례문 현장설명회에 홍창원 단청장(중요무형문화재 제48호)이 불려 나왔다. 숭례문 단청 복원을 맡았던 홍씨는 연신 "내가 부족한 탓"이라며 고개를 숙였다. 박락 원인이 아교, 안료도 아닌 호분(색을 선명하게 내려고 안료 아래 바르는 조갯가루)을 많이 바른 탓으로 밝혀지면서 일단락 됐다.
그러나 문제는 지금부터다. 숭례문 논란은 '전통 방식만으로 문화재 복구가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우리에게 던졌지만 답은 나오지 않고 있다. 한 문화재 관계자는 "국산 재료만으로는 단청 칠을 못한다"고 털어놓았다. 숭례문 단청 복원 때 사용한 아교는 일본산, 안료는 국산과 일본산을 모두 썼다. 일본산을 쓴 이유는 전통 아교와 안료의 명맥이 오래 전에 끊어졌기 때문이다.
조선 후기 문헌에 전통안료를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재미난 것은 1890년 기록에 수입산 화학안료 사용 내역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1885년쯤 영국이 화학안료를 개발했는데 색상이 선명하고 값도 싸니까 조선에서도 수입한 모양입니다." 1910년경 덕수궁 단청 보수에도 화학안료가 사용됐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에는 문화재 복원이 없었고 복원에 쓰일 재료도 생산되지 않았다.
숭례문 복원으로 전통재료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전통재료 개념조차 불분명한 상태에서 대중은'전통과 국산'이 아니라면 분노했고, 이에 밀려 문화재청이 간신히 찾아낸 국내 업체가 화장품계열사였다. "아무래도 국산을 써야 할 것 같아 구입했지만 얼마 안가 안료에서 곰팡이가 피더라고요." 일본산 안료만으로 숭례문을 칠할 수 없어 사용한 국산 안료의 색은 칙칙하기 짝이 없었다. 이를 극복하려고 호분을 두껍게 발랐다가 단청이 벗겨졌으니 일본산이 아닌 국산이 논란의 근본 원인이었던 셈이다.
호된 논란 후에도 문화재청은 문화재 복원에 쓸 전통재료를 생산할 구체적인 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그러면 복원 문화재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장인에 대한 '마녀사냥'을 지켜봐야 할까. 일본정부는 장인과 전통재료 생산자의 명맥을 이으려고 단청이 벗겨지지 않아도 매년 다시 칠하게 한다. 이런 주먹구구식 해법이라도 내놓아야 하는 것 아닌가.
황수현기자 so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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