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초 일본 치바(千葉)현에서 열린 일본전자산업전시회(CEATEC) 2013 행사에서는 일본 전자업체들의 '모바일 부진'이 역력히 드러났다. 일본 전자회사의 스마트폰 부스는 규모도 작고 초라했다. 이통사들은 자사 모델대신 아이폰 신모델 판매에 열을 올렸다.
주목을 받은 것은 오히려 부대행사로 열린 '카 일렉트로닉스'(car electronics) 세션이었다. 닛산자동차는 무인 자율주행 전기차의 시험주행을 선보였는데, 이 차는 카메라와 레이저, 레이더 등을 탑재해 차선과 도로 표지판, 인접 차량과 사람, 장애물을 인식한다.
모바일 분야에서 글로벌 점유율이 추락한 후 몰락한 것처럼 보였던 일본의 전자회사들이 원천기술과 수준 높은 부품 공급력을 바탕으로 빠른 속도로 발전하는 자동차 내장 디스플레이나 의료용 디스플레이 등 정밀 기술 분야를 개척해 나가고 있다.
LG경제연구원은 22일 '일본 전자산업, TVㆍ자동차ㆍ부품 발판으로 재도약 노린다'는 제목의 보고서를 통해 이 같이 전하고 "최근 일본 전자산업에 대한 주목도가 예전에 비해 크게 떨어져 있지만 부품, 소재, 기초기술 등의 광범위한 저변 역량을 바탕으로 하는 일본 전자산업의 잠재력은 여전히 크다"고 분석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소니 파나소닉 샤프 등 일본의 대표 전자업체들은 전통적인 TV 분야에 여전히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이른바 4K TV, 8K TV 등으로 불리는 고해상도 TV다. 하지만 대형 평판TV 시장이 전세계적으로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기 때문에, 대신 의료 자동차 등 고해상도 디스플레이 기술력이 꼭 필요한 분야에 적극적으로 진출하고 있다.
특히 일본 전자업체들이 자동차 회사 및 부품업체들과 함께 자동차용 디스플레이 시장을 개척하고 있는 점이 눈길을 끈다. 이미 올해 초부터 사이드미러를 카메라와 디스플레이로 대체하거나, 후방 카메라에서 찍은 영상을 룸미러에서 보여주는 등 다양한 솔루션이 등장했는데, 이 분야에서 일본 전자회사들의 활약이 눈부시다.
파이오니아와 파나소닉은 투명 유리 위에 정보를 표시하는 기술인 헤드업 디스플레이(HUD) 부품을 시판하고 있다. 전투기에서 사용되는 기술로, 계기판을 내려다 보지 않아도 속도나 좌회전 우회전 지시가 운전석 앞유리에 표시되는 방식이다.
자동차 계기판은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처럼 편리한 '사용자 경험'이 매우 중요하며, 제품 특성상 사소한 오류도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한국 전자회사에게 뒤지는 고화질이나 크기 보다는 첨단기술 경쟁력이 요구돼 향후 한국과의 경쟁에서 일본이 우위에 설수 있는 분야다.
'아베노믹스'에 따른 엔저 효과로 가격경쟁력이 강화되고 있는 것도 일본 전자회사들에게는 우호적인 환경이다. 최근 노무라증권은 엔저가 장기화할 것으로 예상하면서, 지난해에 비해 올해 경상이익이 자동차 업종은 72.8%, 전자 및 정밀기계는 19.7% 증가하고 내년에는 자동차가 55.5%, 전자 및 정밀기계가 93.9%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LG경제연구원의 송지영 책임연구원은 "일본 전자산업이 혁신적 이슈를 만들어 내고 시장을 선도하는 힘은 예전에 비해 떨어졌으나, 수출입과 생산이 모두 증가세를 유지하며 활기를 회복하고 있다"면서 "스마트폰이나 TV 같은 소비자용 시장에서 단기간에 글로벌 강자로 복귀하기는 어렵겠지만, 부품과 소재, 기초기술 등의 저변을 바탕으로 재도약 가능성은 충분해 보인다"고 평가했다.
최진주기자 parisco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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