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를 그만둘 당시는 교직과 육아, 연주를 도저히 병행할 수 없는 일종의 과도기였어요. 학교 분위기가 보수적이기도 했고. 클리블랜드 음악원은 총장인 바이올리니스트 조엘 스미어노프씨가 연주 활동이 활발한 이들로 교수진을 꾸리고 있어서 제안을 수락했죠."
한국의 대표 여성 피아니스트인 백혜선(48)씨가 29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리사이틀을 연다. 올해 클리블랜드 음악원(Cleveland Institute of Music)의 유일한 동양인 교수로 임용된 후 처음 갖는 고국 독주회다.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입상(1위 없는 3위)하고 29세 젊은 나이에 서울대 교수로 임용돼 10년 간 재직한 그는 2005년 학교를 떠나 뉴욕에서 전문 연주자로 새 삶을 시작했다. 하지만 결국 이렇게 다시 교육자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22일 기자들과 만난 백씨는 "언젠가는 다시 학생을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너무 어려서 교편을 잡았죠. 제가 어느 정도 성숙돼야 연주와 가르치는 일을 병행할 여력이 생긴다고 생각했어요."
공연의 프로그램은 베토벤의 '에로이카 변주곡'을 중심으로 변주곡으로만 짰다. "인간의 한계를 극복해 영혼의 울림을 아는 작곡가"로 믿어 가장 좋아하는 베토벤이 제일 사랑한 주제 중 하나다. "자신의 발레음악 '프로메테우스의 창조물'의 마지막 곡을 소재로 에로이카 변주곡과 교향곡 3번 4악장의 주제로 썼죠. 패기와 강직함, 활력이 느껴지는 곡이에요. 다른 곡은 음악으로 다양한 그림을 볼 수 있게 골랐어요. 라흐마니노프의 '코렐리 주제의 의한 변주곡'은 베토벤의 곡과는 대조적으로 우수적이고, 하이든의 유일한 변주곡은 서정적이고 목가적이에요. 리스트의 '베네치아와 나폴리'는 이탈리아의 풍광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한 클래식 음악의 묘미를 느낄 수 있는 곡입니다."
백씨는 "아직 발굴해야 할 인재가 지방에 상당히 많다"는 생각에 외국 활동 못지않게 지방 활동을 중시한다. 2005년부터 부산국제음악제 예술감독으로 활동 중이며 대구가톨릭대 석좌교수로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이번 독주회도 서울 외에 오산(26일 오산문화예술회관 대극장)과 부산(31일 부산문화회관 대극장)에서도 연다.
이번 국내 일정이 끝나면 12월 보스턴, 내년 1월 부산국제음악제, 3월 클리블랜드 등에서 줄줄이 연주 일정이 잡혀 있지만 요즘 유행처럼 열리는 베토벤 소나타 전곡 연주회에는 도전할 계획이 당분간 없단다. "피아니스트라면 꼭 한 번 도전해야 하는 게 바흐 평균율 전곡과 베토벤 소나타 32개 전곡 연주회겠지만 도전 자체가 의미 있는 나이는 지났기 때문에 아직은 두려워요. 작곡가의 천재성과 곡마다의 중요한 의미가 잘 살아나야 하니까요. 그래도 예순 전에는 도전하게 되겠죠?"
김소연기자 jollylif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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