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라는 단어를 오랫동안 막연히 좋아했다. 뻐끔뻐끔 물속을 헤엄치는 생물들을 떠올리면 고요하고 아늑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이 단어가 의외로 탐욕스럽다는 데에 생각이 미쳤다. 횟집 앞 수족관을 지나치다가 한 꼬마가 신이 나서 외치는 소리를 들은 후였다. "엄마, 여기에 고기들이 많아!" 아, 맞다. 물고기는 고기였지. 물에서 나는 고기.
사전을 검색해 보았다. '고기'란 '식용하는 온갖 동물의 살'을 뜻한다. 살아서 숨 쉬는 존재가 아니라 식탁 위에 올라 인간의 뱃속으로 들어갈 살덩이. 즉 돼지고기는 돼지가 아니고 쇠고기는 소가 아니다. 그런데 물고기는? 생선가게 좌판에 진열된 고등어와 꽁치도 물고기, 관상용 금붕어도 물고기, 심해를 헤엄치는 미지의 생물들도 물고기라 불린다. '물고기'라는 말의 그물 속에서 '어류'는 잠재적으로 모두 인간의 먹이가 된다. 인간에게 단백질을 공급하기 위해 살아가고 있기라도 한 듯. 참 나쁘다. 어쩌다 우리는 물고기를 물고기라 부르게 된 것일까.
그러나 생각은 그렇게 하면서도 나는 여전히 '물고기'라는 말의 어감에 끌린다. 뜻에 담긴 인간의 극성맞고 강퍅한 시선에도 불구하고, 발음을 하면 여전히 찰랑찰랑 가득한 고요가 느껴진달까. 뜻에 속박되지 않는 말소리. 고기라 불리거나 말거나, 인간이 펼쳐놓은 말의 그물코를 유유히 들락날락하며 물고기는 그저 물속을 살아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시인 신해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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