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해, 그의 나이 82세였다. 그 해 백성들의 평균수명이 42세였으니, 백성들보다 두 배 가까이 산 상태였다. 국부(國父), 즉 나라의 아버지라고 불린 까닭을 알겠다. 그래서 그의 생일이 되면 대부분 언론이 '오늘은 대통령의 탄신일, 만수무강을 기원' 같은 제호 아래 '각하의 흰머리는 애국하는 마음에서 피어오른 고난의 상징'이라는 등 소름이 돋는 기사를 내보냈다. 이를 보면 그는 스스로 민주주의의 산물이라기보다는 하늘이 내린 '신'이거나 '하늘' 그 자체였다고 믿었음이 분명하다.
그런데 그가 태어날 무렵 존재했던 왕조국가의 '신'이거나 '하늘'이었던 이들조차 갖지 못한 걸 그는 가졌으니 바로 만수무강의 달란트였다. 우리 겨레에게 세계 어느 나라에 비해서도 자랑스러운 업적을 전해준 세종이 54세, 정조가 49세에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그는 신에 가장 가까운 자리에 오른 인물이었다. '하느님과 밤새도록 씨름한 끝에 드디어 하느님의 축복을 받아내 대한민국을 건국'한 분이자, '짐승과 같이 저열한 상태에 빠진 국민을 기독교로 거듭나게 한' 분이니 신의 반열에 올려도 무리가 없어 보이기는 한다.
그런데 이 반신반인(半神半人)께서는 참된 신과 약간 달랐으니 '인간에 대한 사랑' 대신 '권력에 대한 욕심'이 차고 넘쳤다.
그 해, 그의 나이 82세 되던 해 형식적으로 실시한 대통령선거에서 어리디 어린 녀석 하나가 불쑥 튀어나왔다.
진짜 신을 믿고 그 믿음을 실천에 옮긴 삶을 살다 간 목사 강원용의 말이다. "조봉암이라는 사람을 공산주의자로 몰아서 죽인 것은 전적으로 1956년 대통령 선거 때문입니다. 사실상 조봉암이 이승만을 이긴 선거였거든요. (중략) (공화당 국회의원을 지낸 박종태 씨) 얘기가, 개표장에서 표를 100장 단위로 묶는데 조봉암 표가 워낙 많이 나오니까 조봉암 표 98장에다 앞뒤로 이승만 표를 한 장씩 붙이고는 이승만 표 100장으로 계산했다는 겁니다. 그런데도 나중에는 양쪽에 붙일 이승만 표가 부족했다고 합니다.-강원용 목사의 체험 한국현대사, 2004.1월호에서 발췌
조봉암은 그의 아들뻘인 59세였다. 그러니 왕조국가의 피가 흐르던 그로서는, 아버지에 도전하는 불효를 용납할 수 없었을 것이다. 결국 조봉암은 간첩 혐의를 받고 3년 후 사형당했다.
그러나 불효막심한 경쟁자를 처리한 그도 당해낼 수 없는 것이 시민의 힘이었다. 결국 조봉암이 저 세상으로 떠난 지 열 달도 안 돼 아버지 위치에서 쫓겨나 그토록 사랑하던 미국의 품에 안겼고, 그곳에서 죽었다. 91세에.
82세에 대통령에 당선된 그는 정적을 죽이지 않았어도 86세까지는 대통령 지위를 누릴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영생할 거라고 믿은 게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야 대통령 몇 년 더 하겠다고 정적을 사형에 처할 만큼 악한은 아니었을 테니까(라고 믿는데, 많은 사람은 나와 생각이 다른 듯하다).
"이 박사는 소수가 잘 살기 위한 정치를 했고, 나와 나의 동지들은 국민 대다수를 고루 잘 살게 하기 위한 민주주의 투쟁을 했다. 나는 이박사와 싸우다 졌으니, 승자로부터 패자가 이렇게 죽음을 당하는 것은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다만 내 죽음이 헛되지 않고 이 나라의 민주 발전에 도움이 되기 바랄 뿐이다."
참 편한 사람이다. 자신을 형장으로 보내는 자를 향해 '박사'라니! 그러나 그런 평화로운 이의 바람은 2013년에도 이루어질 조짐조차 보이지 않는다. 대신 옛날 국부(國父)가 그랬던 것처럼 영생을 꿈꾸는 자들은 차고 넘친다. 78세인 유영익이라는 이는 3년 임기의 국사편찬위원장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이 이가 연구하는 역사가 어느 나라 역사인지 헷갈리는데, 아들이 미국인이기 때문이다. 우리 정서로는 자신보다 아들이 소중하지 않은가?), 75세인 김기춘 옹 또한 나라를 위해 봉사하려는 마음을 접을 뜻이 없어 보인다.
추신: 요즘 들어 나를 만나는 사람마다 놀라서 묻는다. "머리가 왜 그렇게 희어져요?" 무식하긴. '애국하는 마음에서 피어오른 고난의 상징'이다. 왜?
김흥식 서해문집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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