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5월 동양그룹은 해외자원개발업체인 골든오일의 전환사채(CB)에 1,400억원을 투자한다. 여기엔 두 가지 노림수가 있었다. 상장사인 골든오일을 통해 동양시멘트를 우회상장하는 것과 자원개발 사업에 뛰어드는 것이다. 2년 뒤 목표를 달성했다. 2010년 4월 동양시멘트는 골든오일과 합병을 하면서 자원개발업에 진출한다. 결과적으로 이 선택은 '독이 든 성배'가 됐다. 건설경기 악화에 합병 과정서 끌어들인 자금의 상환 부담, 새로 진출한 자원개발업의 적자 누적까지 겹쳐 자본 잠식 상태에 빠진 것이다. 급기야 동양시멘트는 올 4월 물적분할 형태로 자원개발 사업을 골든자원개발으로 분할하기에 이른다.
STX그룹이 해외자원개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2007년 무렵이었다. 당시에도 유동성 위기 징후가 있었지만 STX는 과감히 신사업 진출을 택한다. 하지만 결과는 초라했다. STX에너지는 현재 미국과 캐나다 등에 6개의 석유 가스 생산광구를 보유하고 있지만 연 매출은 200억원대에 그치고 있다. 자원개발업 진출을 위해 2009년 영입한 산업자원부 장관 출신 이희범 에너지부문 총괄 회장도 결국 올 5월에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명박 정부 시절 유행처럼 번졌던 해외자원개발 사업이 국내 기업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이들 기업의 공통점은 장기적 투자 의지 없이 정부 시책에 맞춰 사업에 뛰어들었다 후유증을 겪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계열사 5곳이 법정관리에 들어간 동양그룹이 대표적이다. 골든오일의 구희철 전 대표이사는 "동양그룹은 합병 당시 477억 원을 투자했지만 이후 3년 간 집행된 금액은 160억원에 그쳤다"며 "합병 이후 동양그룹을 믿고 새로운 해외 광구 개발에 뛰어들었는데 갑작스러운 지원 중단으로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고 주장했다. 동양그룹이 처음부터 해외자원개발 자체에는 관심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진짜'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당시는 정부 차원에서 해외자원개발에 수조원의 정책자금을 쏟아 붓고 있었다. 이명박 정부는 기업들의 해외 자원개발 촉진을 위해 ▦해외 자원개발에 성공하면 융자 원리금을 갚고 실패하면 이를 감면ㆍ면제해주는 성공불융자 ▦보증 등을 통한 지원 ▦자원개발펀드 조성 ▦세액공제 등의 각종 혜택을 제공했다.
증권사 한 연구원은 "정부가 밀고 있는 정책에 힘을 보태 정권으로부터 점수도 따고 자금도 지원받는 일석이조의 선택이었다"며 "현 정부 들어 창조경제 관련한 신규 사업 진출이 많은 것도 같은 이치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2010년 광물공사는 해외자원개발 사업에 진출한 동양시멘트에 1,500억원을 융자해줬지만 현재 1,000억원 이상을 돌려받지 못하고 있다. 동양그룹이 석유개발융자 명목으로 정부로부터 지원받은 자금도 80억원이 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STX그룹 역시 석유개발융자로 250억원을 지원받았지만 상환율은 2%가 채 넘지 않고 있다.
시세차익을 꾀할 수 있다는 점도 있다. 주식시장의 대표적인 투기성 재료인 자원개발 소식을 발표해 주가를 띄우는 것이다. 동양시멘트는 올 2월 강원도 폐광에서 금맥 탐사에 나선다는 소식이 보도된 뒤 주가가 고점에 이르자 지분을 매각한 혐의를 받고 있다. 공매도 세력에 맞서 싸우던 셀트리온도 작년 6월 자원개발업체인 테라리소스에 55억원을 투자했다 수십억원의 손실을 보기도 했다.
주익찬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경영이 어렵거나 부실 징후가 보일 때 마지막 출구로 자원개발에 투자하는 경향이 있다"며 "하지만 자원개발업의 성공확률은 매우 낮다"고 말했다.
유환구기자 reds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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