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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보는 이주일의 小史] <108> 체첸의 비극, 모스크바 극장 인질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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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보는 이주일의 小史] <108> 체첸의 비극, 모스크바 극장 인질 참사

입력
2013.10.21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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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10월23일 밤9시, 크렘린 궁에서 멀지 않은 모스크바 두브로브카 극장에서 러시아 창작 뮤지컬 노르 오스트(Nord-Ost)가 공연되고 있었다.

800여 명의 관객이 객석을 빼곡히 메운 가운데 2막이 시작되는 순간 무대 뒤편에서 AK소총을 든 복면의 무리가 나타났고 관객들은 여전히 공연이 계속되는 것으로 생각했다.

잠시 후 한 남자가 소총을 들어 허공을 향해 쏘아댔고 천정과 지붕에서 파편이 튀며 극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이들은 배우가 아니라 체첸 출신의 테러범들이었다. 총 42명의 테러집단에는'검은 미망인'이라 불리는 18명의 여성들이 검은색 부르카로 얼굴을 가린 채 매서운 눈빛을 쏘아대고 있었다.

25세의 테러범 리더 모브사르 바라예프는 자신들을 자살특공대라 밝히며 체첸에서 러시아군을 즉시 철수시키지 않을 경우 인질들을 모두 사살하겠다고 위협했다.

크렘린은 발 빠르게 움직였다. 밤 11시,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가 체첸을 독립시키는 일은 없을 것이며 일체의 협상도 없다고 선언한 후 인질사건 대책본부장으로 FSB(국가안보국) 부국장인 프로니체프 장군을 임명했다. 작전의 주체는 러시아 최정예 특수부대인 알파부대가 맡았다. 700여 명의 대원으로 구성된 알파부대는 1974년 창설된 이래 수 많은 대 테러 작전과 인질 구출작전을 수행해 왔다.

하지만 작전은 여의치 않았다. 인질과 테러범의 숫자도 문제였지만 가장 큰 문제는 극장 곳곳에 설치된 사제 폭발물 때문이었다. 특히 여성 테러범들은 폭탄을 몸에 두르고 여차하면 버튼을 누를 기세였다.

인질극이 시작된 첫 날, 테러범들은 이슬람 교도와 임산부 외국인 등 150여 명을 석방했고 이틀에 걸쳐 일부 인질을 추가로 석방했지만 입장은 단호했다.

그들은 TV를 통해"우리는 더 이상 잃을 게 없다. 원하는 것은 자유와 낙원이다. 군대를 철수시키지 않으면 인질들을 차례로 사살하겠다"며 협상의 여지를 없애 버렸다.

26일 새벽 5시, 인질을 살해하는 총성과 동시에 구출작전이 시작됐다. 극장 건물 환풍기를 통해 치명적인 수면가스 펜타닐이 주입되기 시작했고 중무장한 알파부대 대원들이 소리 없이 움직였다. 연막탄을 터뜨린 후 총을 쏘며 진입하는 일상적인 작전과는 확연히 달랐다. 흰색연기를 내뿜는 가스가 극장 안으로 스며들자 테러범들이 뒤늦게 가스마스크를 뒤집어 썼다. 곧이어 짧은 폭발음 소리와 함께 격렬한 총격전이 벌어졌다. 피의 살육이었다. 독가스에 마비된 범인들은 차례로 사살됐으며 몸에 폭탄을 두른 체첸 전사의 미망인들도 스위치를 누르지 못하고 사망했다. 인질들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오전 7시, 작전은 종결됐다. 체첸 게릴라 41명과 인질 129명이 희생된 엄청난 참사였다.

러시아로부터의 독립을 꿈꾸는 체첸은 2004년 9월에도 북오세티야의 소도시 베슬란의 초등학교를 급습해 300명 이상의 사망자를 낸 테러를 감행했다. 체첸의 비극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손용석기자 ston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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