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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10월 22일] 아름다운 청년 바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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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10월 22일] 아름다운 청년 바웬사

입력
2013.10.21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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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회 부산영화제에서 안제이 바이다 감독의 '바웬사, 희망의 인간'을 보았다. 센텀시티라는 이상한 이름의 동네에 세계 최대니 하는 명품 백화점들 안에 있는 극장에서 상영되는 노동영화인 탓인지 좌석의 10분의1 정도도 차지 않은 비인기 영화였지만 내가 유일하게 기립 박수를 친 작품이었다. 33년 전 같은 감독이 만든 '철의 인간'에 직접 출연한 바웬사를 처음 보았을 때처럼 울었다. 33년 전 11월 스물둘에 분신한 전태일과 달리 바웬사는 47세에 대통령까지 됐기 때문일까? 우리는 언제 그런 대통령을 가질 수 있을 지 회의가 들어서였을까?

바웬사는 1943년생, 바이다는 1926년생이니 올해 70, 87세이다. 바웬사의 70회 생일을 맞아 만든 영화일지 모르지만 그보다는 87세의 바이다가 만들었다는 점이 더 감동적이었다. 잠시 잠깐 진보니 뭐니 하다가도 나이 쉰도 안 되어 정신이 쉬어버리는 이 땅의 사이비 지식인이나 예술가들과 달리 16세부터 레지스탕스로 활동하고 30세부터 저항 영화를 만든 그는 70년을 오로지 레지스탕스 저항 영화인으로 살았다. 지금 폴란드는 우리보다 경제 규모가 작지만 1970년대 말에는 지금 우리처럼 세계 10위의 산업 강국이었고 당시나 지금이나 영화를 비롯한 예술과 문화의 수준은 지금 우리보다 월등 높다. 특히 바이다와 같은 참된 예술인들이 넘쳐나고 그들이 만든 최고 수준의 영화, 연극, 오페라, 음악연주회, 강연, 토론회 등도 너무나 자주 열리며 누구나 쉽고 저렴하게 관람할 수 있다. 그곳에는 상업적인 부산영화제 같은 행사는 없지만 매일이 영화제이고 예술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예술이 일상적이다.

폴란드의 1980년 노동투쟁을 그린 점에서 바이다가 30여년 간격으로 만든 두 영화는 공통되지만 바웬사가 주인공인 이번 영화는 인간적 묘사에 충실하여 더욱 흥미롭다. 아내와 여섯 아이들에 대한 사랑이나, 위기를 겪을 때마다 웃으며 아내에게 시계와 반지를 풀어주는 당당한 모습도 감동적이지만 초등학교와 직업학교밖에 다니지 않아 읽은 책이 하나도 없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장면이 더욱 좋았다. 지식인들이 심사숙고해서 내린 결정이나 자신이 순간적으로 내린 결정이 같다고 하면서 지식인에게 열등감이 전혀 없다고 하는 점도 흥미로웠다. 이는 민주화운동이 지식인 중심으로 전개되어 실패했던 전철을 밟지 않으려고 운동의 선구였던 지식인들이 바웬사 같은 순수 노동자를 앞세워 단결하게 하고 자신들은 뒤로 물러서서 주로 타협을 강조한 점과 함께 운동을 성공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1980년 37세인 바웬사는 10년을 다닌 조선소에서 노동조합 활동을 하다가 해고된 노동자로 4년을 지내다가 파업위원회 대표로 사용자측과 협상을 벌여 성공한다. 우리나라라면 해고 노동자가 파업에 뛰어드는 것도 위법이니 노조 대표로 협상을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게다가 바웬사가 협상에 성공한 뒤 다른 공장 노동자들이 동맹 파업을 요구하자 즉시 동의하고 다시 파업을 하는 것도 우리나라에서는 있을 수 없고 위법이다. 나아가 바웬사가 요구한 검열 완화나 정치범 석방 같은 정치적 요구도 한국에서는 있을 수 없다. 그러나 바웬사는 동맹 파업 뒤에 다시 승리한다. 그 1년 뒤 계엄령이 내려지고 바웬사가 1년간 구금되었어도 '연대'라는 이름의 '독립자주관리' 노동조합은 새로운 노동운동의 희망이었음이 1983년의 노벨평화상 수상으로 증명된다. 또 1988년의 민주선거에서 '연대'가 압승한 것으로도 증명된다. 당시 정부를 구성할 때 바웬사는 총리직을 거부하고 노동운동 동료를 추천했다가 2년 뒤 대통령으로 취임한다. 1995년의 재선 실패를 초래한 점 등에 대한 비판, 그가 우유부단했다는 인격적 비판, 사회주의자들의 이념적 비판 같은 것은 상투적인 점에서 무시한다고 해도 그가 올 3월에 동성애자의 인권을 부정하고 9월에는 독일과 통일하자고 주장한 점에 대해서는 시비가 있을 수 있지만 1980년 전후의 순수했던 30대 노동운동가 바웬사는 여전히 아름다운 청년이다.

박홍규 영남대 교양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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