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70~80년대 봉제공장사거리로 불렸던 곳입니다. 68년도 최초로 한국무역박람회가 열렸고, 이후에 구로2공단을 조성하게 되죠. 85년 이 지역에서 구로동맹파업이 열려 '구로동맹 사거리'로도 불렸습니다."
19일 오후 2시. 등산복 차림의 아저씨, 아줌마, 엄마 손 잡고 나온 초등학생 등 10여명이 가산동 마리오사거리에 모였다. 떨리는 목소리로 "오늘이 처음"이라고 밝힌 해설사 양경미(37)씨가 구로장터와 구로공단 일대 사연들을 하나씩 소개하며 여행을 시작했다.
"가리봉오거리 앞 '가리봉의원'도 그 시절부터 있었는데요, 제 친구 아버지가 저 병원 원장선생님이었습니다.(웃음) 그 뒤로 보이는 '가리봉커피', 가리봉의원 왼편 '나포리커피'는 당시 여공들이 자주 가는 음악다방이었는데, 지금은 중국동포들이 가는 카페로 바뀌었고요."
1977년부터 지금까지 맞춤복을 만드는 '백송패션'가게, 구로시장 내 한복집이 즐비해 이름 붙여진 '비단길' 앞을 걷는 여행객들의 입에서는 연신 "그 시절로 되돌아간 기분"이란 찬탄이 나온다.
구로구가 구로공단을 테마로 만든 도보여행길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구로공단, 구로장터, 구로공단을 테마로 한 문학작품 배경지 등 3가지 주제별로 짠 길을 2시간 내외 걸으며 설명을 듣는 코스다.
조호영 구로구 언론홍보팀장은 "6월부터 스토리텔링 작가를 고용해 구로공단 일대 자료를 수집하고 도보 코스를 개발했다"며 "도보여행 해설사 교육과정도 신설해 지역주민 6명을 해설사로 채용했다"고 말했다.
7대 1의 경쟁률의 뚫고 해설사가 된 양씨 역시 유년시절을 이곳에서 보냈다. 고층 패션타운 사이로 하나 남은 낡은 건물을 가리켜 "옛 구로공제협동조합 건물"이라고 설명한 양씨는 80년대 초, 조합 맞은편 구멍가게 딸로 자라며 여공들에게 과자를 팔았던 유년시절 추억을 꺼내 놓는다.
"철야하던 언니들이 공장 안에서 '가게 아저씨!'하고 소리치면 제가 달려가 주문 받곤 했어요. 그땐 이 거리가 참 멀다고 생각했는데, 해설사 교육 받으면서 제가 살던 이곳을 다시 보게 됐죠."
재미 삼아 투어를 신청했다는 주민들 반응은 기대 이상이다. 아파트 게시판을 보고 프로그램에 참가한 장윤제(52)씨는 "1998년부터 구로구에 살았지만 이런 이야기와 장소들이 숨어있는 줄 몰랐다"며 "낙후된 곳들을 제대로 관리하고 알린다면 외국인 관광코스로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19일부터 5주 간 주말마다 해설사가 동행해 도보길을 소개하고, 반응이 좋으면 해설 기간을 늘릴 예정이다. 도보여행 참가 신청은 이메일(ssh1969@guro.go.kr)로 할 수 있으며, 구로구는 해설사 도움이 없이도 여행할 수 있도록 도보여행 지도를 제작해 무료배포하고 있다.
구로구 구로공단 테마길은 서울시의 도보여행코스 지원사업 선정작으로 앞으로 구로디지털단지 내 도보여행 코스를 추가로 선보일 계획이다.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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