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지난 몇 년간 한국을 휩쓴 북유럽 열풍의 정점으로 기록될 듯 하다. 건축, 디자인, 가전, 인테리어, 패션에 이르기까지 북유럽 특유의 간명한 양식과 그 안에 담긴 실용 정신에 우리는 감복했고 때론 반성했다. 그래서 무엇을 배웠을까, 얼마나 달라졌을까.
핀란드에 거주하는 독립 큐레이터 안애경 씨는 "한국의 학생들은 여전히 너무 많은 학업에 시달리고 직장인들은 과로에 지쳐 있다"며 "그러나 이런 일들이 공동체의 발전에 기여하고 있는지, 다음 세대가 더 좋은 것들을 누리며 사는 데 우리의 노력이 쓰이고 있는지는 의문이다"라고 말했다.
22일부터 서소문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북유럽 건축과 디자인' 전은 안씨가 핀란드,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아이슬란드 등 북유럽 5개국의 철학이 담긴 건축과 디자인을 그러모은 것이다. 학생들에게 행복감을 줄 수 있는 학교 건축과 나무를 이용한 공공건축, 그리고 가정집 내부를 보여줌으로써 북유럽인들의 뼈에 박힌 전통의 계승 및 공동체에 대한 의무감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핀란드 학교를 돌아보면서 깜짝 놀랐습니다. 카페처럼 꾸며진 공간에서 완전히 긴장을 풀고 있는 학생들의 모습이 우리나라와 딴 판이었어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제 학업 성취도 세계 1위인 핀란드는 학교 건물 디자인에 유독 힘을 쏟는다. 좋은 공간에 대한 경험이 곧 교육이라는 생각에서다. 전시에는 '놀이'를 권장하도록 조성된 학교 공간과 아이들의 성장 발달을 배려한 의자 등이 선보인다.
나무로 지은 건축물도 따로 소개됐다. 핀란드 알토대학은 20년 간 건축학도들을 대상으로'목재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데, 나무를 구하는 것부터 건축물을 완성하는 것까지 9개월 안에 스스로 해내야 한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전통 기술과 현대적 디자인을 연결하는 고리로서의 역량을 갖추게 된다. 전시장에서는 학생들이 온몸으로 나무의 물성과 싸우며 디자인한 기상천외한 건축물과 프로 건축가들이 설계한 성당, 도서관의 모형들을 볼 수 있다.
마지막 섹션에서는 북유럽 가정집 내부를 재현해 식탁, 의자, 그릇 등을 전시했다. 한 켠에 걸린 아이슬란드의 '입는 담요'는 머리만 빼놓고 온 몸을 덮을 수 있게 만들어진 옷으로, 100% 수공예품이다. 공장 생산으로 수공예 장인들의 설 자리가 없어지자 지역의 젊은 디자이너들이 이 옷을 디자인해 장인들에게 생산을 의뢰한 것이다. 사소한 생필품 하나에서도 북유럽의 단단한 정신을 느낄 수 있다.
안 씨는 "단순히 북유럽 지역의 어떤 것을 가져다 놓는 것보다는 지금 한국 사회에 필요한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다"며 "한국의 건축과 디자인에 다음 세대에 대한 어떤 배려가 들어 있는지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전시는 내년 2월 16일까지 이어진다.
황수현기자 so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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