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헌법 제5조 제2항은 "국군은 국가의 안전보장과 국토 방위의 신성한 의무를 수행함을 사명으로 하며, 그 정치적 중립성은 준수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제7조 제1항은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 제2항은 "공무원의 신분과 정치적 중립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해 보장된다"고 돼있다. 공무원은 정권이 아닌 국민을 위해 존재하며,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함을 엄숙히 강조하고 있다. 나라의 대강(大綱)을 정하는 헌법에 군과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을 규정한 것은 굴곡의 현대사에서 이들이 본분을 망각했을 때 초래된 비극을 생생하게 경험했기 때문이다.
1987년 제정된 지금의 헌법은 독재와 권위주의에 저항한 국민의 피와 땀으로 만들어졌다. 군과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은 권위주의 정권 시절의 과오에 대한 반성, 민주주의를 확고히 지켜나가겠다는 다짐, 역사로부터 체득한 교훈이다. 국정원법 제9조에 정치관여금지를 별도로 규정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정보기관이 초법적 권한을 행사했던 시절의 폐해가 얼마나 극심했는지 절감했다.
이 같은 헌법 정신으로 볼 때 국정원과 국방부 직할 사이버사령부의 댓글 공작은 참으로 심각한 문제다. 특정 정당 가입은 물론,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 지지ㆍ반대ㆍ비방, 특정인을 위한 기부금 모집 지원이나 방해를 금지하고 이를 소속 직원에 요구하지 못하도록 한 국정원법 등의 위반에 그치지 않고 헌법 정신에 정면으로 도전한 행위다.
국정원과 사이버사령부가 연계된 흔적이 드러나고, 댓글이나 트위터를 통한 공작이 알려진 것보다 훨씬 많았다는 사실에서 이런 범법 행위가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이뤄졌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이 유출돼 지난 대선 때 활용된 것도 그 일환이라는 의혹이 제기된다. 대화록에 대해선 검찰 수사가 사초 실종에 치중돼 있고, 국정원 댓글 수사는 검찰이, 사이버사령부 수사는 군 검찰이 담당하는 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들을 한 덩어리로 봐야 한다는 의견이 많은 만큼 지시자, 실행자, 협력자 등을 철저히 밝히기 위한 종합적 수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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