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창호
사회보험개혁공대위 대변인
기초노령연금과 관련,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파기 논란이 뜨겁다. 정부여당은 공약파기가 아닌 조정이라 주장하지만 공약수정 또는 후퇴인 것만은 분명하다. 정부가 발표한 기초노령연금의 쟁점은 ‘소득상위 30% 노인들은 배제하고, 나머지 70%도 국민연금 가입기간에 따라 차등지급’한다는 것이다.
이번 공약후퇴로 매월 20만원의 연금을 기대하셨던 65세 이상 어르신들의 아쉬움도 크겠지만, 2007년 7월 기초노령연금이 도입된 배경을 알고 있는 청장년세대의 분노는 더욱 크다. 기초노령연금은 국민연금의 미래재정을 우려하여 9%의 보험료율은 유지하면서 당시 법정급여율 60%를 20년 후인 2028년까지 40%로 인하하는 대신 이를 보전하는 명분으로 탄생한 독립적 제도이기 때문이다. 급여율을 낮추는 대가로 만들어진 기초노령연금을 또다시 국민연금 가입기간과 연동하겠다니 ‘국민연금’과 ‘기초노령연금’을 각각 따로 받을 수 있다고 믿었던 65세 미만 청장년세대는 미래의 소득을 강탈당한 느낌을 지울 수 없게 되었다.
다수의 학자들은 우리나라 복지제도 중에서 가장 해법을 내기가 어려운 제도가 국민연금이라 지적한다. 부담과 급여수혜의 시기가 상이하고 세계 유례없는 저출산 고령화 현상으로 미래세대의 재정 부담까지 생각하는 지속가능의 고민이 수반되기 때문이다. 국민 다수는 정부의 이번 발표가 미래세대에 대한 재정 부담을 고려한 정책이라 이해하고 싶지만, 청장년세대가 받아야 할 미래소득에 대한 배려는 간과하였다고 본다.
지난 9월26일 정부는 내년 예산안 357조원 중 복지예산이 106조원이라 발표하였다. 100조원대의 복지국가로 치부하기엔 너무나 턱없다. 전체예산 대비 복지예산의 비중이 아직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하위수준인 29.6%에 불과하다. 더구나 이 가운데 60조원 가량은 공적연금과 주택건설 예산 등으로 순수복지예산은 46조원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유럽 선진국들의 전체 예산대비 복지재정 비율은 50%가 넘는다. GDP 대비 정부 복지지출 비중은 OECD 평균이 21.7%인 반면에, 우리는 9.5%(2010년 기준)에 그치고 있다. 이들 국가들이 현재 우리의 경제력보다 수준이 훨씬 낮았던 60년대에 13~16%였음에 비추어 우리는 50년 전 이들 수준의 2분의1에 불과하다. 그 당연한 결과로, 우리나라 국민들은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에 자살률, 빈곤율, 행복지수, 사회갈등지수가 세계 최악인 국가에서 살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정치∙사회적 환경과 국민소득수준∙경제규모 면에서 ‘양극화 심화 및 고착화’와 ‘복지국가로의 진입’의 갈림길에 있다. 스웨덴 50% 등 타 국가와 비교하기조차 부끄러운 8%밖에 되지 않는 사회임금(복지소득)에 비해 월등히 높은 소득임금(임금소득) 비중은 시장 탈락자의 사회복귀 불가능, 가난의 끝없는 대물림, 약육강식과 승자독식 사회를 구조적으로 고착화 시키고 있다. 이는 엄청난 사회비용 지불과 함께, 사회∙경제적으로 지속가능한 국가발전을 저해하는 최대 장애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국민 다수는 이번 기초노령연금 사태를 계기로 복지에 대한 극심한 피로도와 함께 이에 대하여 무관심과 냉소를 보내고 있다. 이러한 반응은 국가의 미래를 위해 매우 불길한 징조이다. 왜냐하면 빠르게 증가하는 복지수요에 합리적으로 부응하는 복지정책은 실종되고, 그 자리를 정치적 정략적 이해관계에 따른 술수들이 차지할 개연성은 더욱 높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복지정책은 대선과 총선을 치르기 위한 단발성 당리당략이 아니라, 국민에게 희망을 주며 정부와 정치권이 가꾸고 다듬어야 할 ‘우리 시대의 총아’이어야 한다. 아직까지도 복지에 이념의 잣대를 들이댄다면 그야말로 구태이다. 그리스나 스페인과 같은 남유럽 국가들의 복지정책이 가져다 준 암울한 그늘에 교훈을 얻으면서, 동시에 스웨덴이나 독일과 같은 성공사례를 배우려는 자세가 아쉽기만 하다. 정녕, 우리는 언제까지 복지에 있어서 초등학생 머리를 가진 대학생으로 남아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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