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전쯤 푸르메재단을 찾았을 때 아주 예쁜 여자 아이의 얼굴을 그려줬어요. 가슴과 왼쪽 팔에 심하게 화상을 입은 아이였죠. 캐리커처 뒤쪽엔 '예쁜 얼굴처럼 아름다운 추억만 간직했으면 좋겠다'는 글도 써 줬죠. 그랬더니 그 아이가 제게도 그림을 그려주겠다는 거예요. 그 아이의 꿈은 화가가 되는 거였어요. 아이가 선물로 준 제 얼굴 그림은 고이 간직하고 있습니다."
'크레파스 조각화'로 잘 알려진 목석애(56) 화백은 요즘 희망을 그리는 데 열심이다. 장애아동 재활센터와 호스피스 병동, 무의탁 노인 요양원 등을 다니며 삶의 불씨가 꺼져가는 이들에게 행복을 선물하고, 상처받은 아이들에겐 꿈을 심어주고 있다.
목 화백이 재능 기부에 나선 건 지난 7월부터. 지인의 제안으로 가장 먼저 찾았던 곳은 호스피스 병동이었다. 그는 이곳에서 임종을 앞둔 한 남성 혈액암 환자의 얼굴을 그려주고 '나비처럼 훨훨 날아 많은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다'는 글귀를 적어 선물하곤 큰 감동을 받았다. "가족들이 펑펑 울더라고요. 정작 환자는 환하게 웃는데 말이죠. 알고 봤더니 이날이 그 환자가 장기기증 하는 날이었답니다."
목 화백은 이후 재능 기부를 계속 하기로 결심했다. 자신의 작은 수고가 환자와 가족 등 많은 이들의 마음을 치유해 줄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는 "웃고 있는 자신의 얼굴 그림을 보고 따라 웃는 환자들과 아이들의 미소를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목 화백이 4개월 동안 그린 캐리커처는 수백 장에 이른다. 한 번 봉사 나갈 때마다 2~3시간씩 20~30명의 얼굴을 그린다. 처음엔 일주일에 2,3일 정도 병원을 찾는 정도였지만, 요즘엔 거의 매일 다양한 현장에서 그림을 그린다. 그는 "나이가 들어 사회 활동도 예전 같지 않지만 그림을 그릴 때 스스로 가장 행복하다"며 "내 그림을 받아 들고 기뻐하는 이들의 얼굴을 보면 그 행복은 곱절이 된다"고 말했다.
오래 전부터 "하루에 4명 이상은 행복하게 해 줘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목 화백은 재능기부 활동을 시작하기 전부터 행복과 희망을 전하는 데서 삶의 가치를 찾았다. 지하철에서 만난 낯선 이에게 그림을 그려주거나, 행복을 선물하기 위해 8년 전 독학으로 배운 마술을 보여주기도 했다.
30년 동안 산업 디자인 분야에서 활동했던 목 화백이 5년 전부터 순수미술에 뛰어든 것도 이런 생각과 맞닿아 있다. "비싼 재료비 때문에 그림 그리는 걸 포기하는 아이들이 정말 많아요. 나도 힘든 시절을 겪었고요. 이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개발한 게 크레파스 조각화입니다. 아이들에게 열정을 갖고 포기하지 않으면 꿈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은 반드시 존재한다는 걸 알려주고 싶어요."
김경준기자 ultrakj7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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