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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10월 21일] 카니발리즘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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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10월 21일] 카니발리즘 사회

입력
2013.10.20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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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송전탑 건설에 찬성하는 국민이 59.6퍼센트라는 여론조사를 보고 나는 그냥 기절해버릴 것만 같았다. 이런 나라에서는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는 말이 저절로 입에서 튀어나왔다. 며칠 후 시민환경단체가 의뢰한 조사에서는 정반대 수치가 나왔지만 그래도 생각이 달라질 건 없었다. 설문의 표현을 교묘히 바꾸는 데 따라 이리저리 쏠리는 여론은 애초부터 믿을 수가 없거니와, 요컨대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는 대다수 사람들의 시각만을 다시 확인시켜 준 여론조사들이었던 것이다.

밀양 송전탑을 둘러싼 논란을 보면 우리 사회가 처한 두 가지 집단적 병증을 절감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는 공상허언증이요, 둘째는 집단망각증이다.

우선 공상허언증이란 거짓말을 반복하다보니 스스로도 그것을 진실로 믿는 정신적 병증을 말하는데, 송전탑 건설을 강변하는 헛소리들을 들으면 실로 공상허언증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주장에 단골로 등장하는 논리가 "여름철 심각한 전력난"이나 "전기료 인상 불가피" 따위의 위협인데, 이 논리를 내세우는 정부, 한전이나 그것을 철석같이 믿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로 병에 걸린 것 같다. 이 말들은 국내 전력소비량의 70%가 값싼 산업용 전기로 쓰이고, 올해 원전 23기중 적게는 5기에서 많게는 11기가 가동 중단되었지만 전력 수급에 큰 지장이 없었다는 사실을 숨기고 있다. 산업현장에서 전기 용광로까지 펑펑 쓰이는 마당에 밀양 송전탑들을 세우지 않으면 큰 일이라는 거짓말이 버젓이 통용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공상허언증의 금자탑은 역시 "다수를 위해서 소수의 희생은 불가피하다"는 개발시대의 프로파간다일 것이다. 이 말의 원조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철 지난 200년 전의 사회이론일 텐데, 이런 공리주의적 주장은 소수자의 권리 침해를 다수자의 이익으로 상쇄할 수 없다는 비판으로 이미 폐기된 지 오래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에서는 정부 정책과 대중의 상식을 여전히 지배하고 있는데, 그 '소수'에 자신이 속하면 단박에 달라질 주장이기 때문에 공상허언이라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무의식 속에는 이런 공상허언증과 찰떡궁합을 이루는 병증이 또 하나 있으니 바로 집단망각증이다. 우리는 우리들의 평안한 일상이 얼마나 많은 밀양, 강정, 용산의 희생 위에 서있는 것인지를 까맣게 잊고 있다. 따지고 보면 우리가 지금 누리는 값싼 전기가 없다면 생활의 안녕은 상당 부분 포기해야 할지 모른다. 매일처럼 사고 쓰는 소비재 가격이 모조리 올라가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고, 냉장고도 더 이상 하루 종일 윙윙 돌릴 수 없고, 슈퍼마켓의 알루미늄 캔 대신 무거운 맥주병을 들고 다니느라 끙끙대야 할지 모른다.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향유하는 생활의 안정은 사실상 이 편리한 물품들을 값싸게 공급하는 에너지와 위험 설비들 위에서만 가능하다.

원전과 송전탑 지역이 위험을 대신해주는 우리 생활의 지속성은 그 위험이 '소수'에게 집중되어 있을 때는 손쉬운 집단망각의 대상이 된다. 내 일이 아닌 것이다. 그러나 이런 집단망각의 폐해는 소수에게만 벌어지는 것이 아니다. 난데없이 거대한 주상복합 빌딩이 들어서면서 일조권이 차단된 저층 서민들, 중소도시에 들어선 대기업 할인마트로 인해 폭삭 가라앉은 지역상권, 관광자원 개발이라는 미명으로 생존의 터를 빼앗긴 토착주민들은 내일이면 나의 모습이 될 수도 있다.

우리는 마치 하이에나들처럼 소수 희생자의 살을 뜯어먹으면서 그것을 내 행복의 조건으로 삼고 있다는 것을 까맣게 잊고 산다. 이것은 카니발리즘 사회라고 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식인 축제의 향유자는 언제든 희생자가 될 수 있다. 이 모든 것은 우리가 믿고 있는 민주주의, 다수의 의견과 다수의 행복만을 좇는 '다수결 민주주의'의 태생적 한계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원전과 고압송전탑 문제에서라도 우리는 제발 정치적 교양을 가지자는 것이다. '다수의 행복'이라는 공상허언증과 집단망각증을 조장하는 정치들을 우선 반성해보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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