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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정의 애고에코/10월 21일] 글 잘 쓰는 과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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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정의 애고에코/10월 21일] 글 잘 쓰는 과학자

입력
2013.10.20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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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포 조직을 촬영한 사진에서 암세포를 진단하는 법, 천문대 망원경으로 보이는 수많은 별 중에서 초신성이나 움직임이 특이한 별을 골라내는 법, 위성이 보내온 금성 표면 영상에서 지질이 단단한 지역과 무른 지역을 구분하는 방법. 엊그제 한 세미나에서 발표한 박사 한 명이 연구하고 있는 주제이다. 학문 분야별로 구분하자면 의학, 천문학, 지질학과 같이 완전히 다른 연구 분야이지만, 이 사람 혼자서 이런 연구를 모두 진행하고 있다. 아마도 사람들은 그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처럼 뛰어난 천재이거나, 수박 겉핥기식의 엉터리 과학자라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현대 과학의 전문성을 고려하면 말이다. 그러나 둘 다 사실이 아니다. 그는 이 분야를 선도하고 있는 전도가 유망한 젊은 과학자이긴 하지만 아직은 세계적 수준과는 거리가 있는 박사후 연구원 중 하나일 뿐이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그의 전공은 약간은 엉뚱하게도 컴퓨터 공학의 '기계학습 (Machine Learning)'이다. 컴퓨터를 이용하여 복잡한 패턴에서 어떤 규칙을 찾아내는 것이 그의 연구 핵심이다. 세포나 별이나 토양은 아마도 그가 박사를 마칠 때까지 제대로 공부해 본 적도 없었을 것이다. 자신의 전문 지식을 활용해서 다른 분야의 연구자와 의사소통하면서 새로운 분야를 개척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 과학계의 화두 중 하나는 단연 '융합' 연구이다. 이런 이유로 우리 대학에서도 전공 공부를 더 시켜야 한다, 대학에서 전공의 벽을 없애야 한다는 등 말들이 많지만 정작 중요한 의사소통 능력을 어떻게 키울 것인지 대해서는 별 논의들이 없다. 오히려 이공계 대학원생은 연구실에서 밤이나 잘 새면 훌륭한 인재가 될 것이라 믿는 교수들도 수두룩하다. 내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그래서는 컵라면이나 잘 끓이는 고등실업자들만 양산하게 될 것 같다. 창의적인 과학자로써 성공하려면 다른 분야의 사람들과 의사소통 능력이 탁월해야 하며 특히 글을 통해서 자신의 의견을 전달하고 남의 주장을 이해하는 힘을 길러야 한다. 실제 오늘날의 과학 활동은 연구 제안서를 쓰는 것에서 시작해서 논문을 게재하는 것으로 마무리 된다는 점은 이를 뒷받침한다.

위 세미나에 참석한 같은 날 우연히 미국 '로드아일랜드 디자인 대학 (Rhode Island School of Design)'의 존 마에다 총장의 강연을 들을 기회를 가졌다. 미국의 과학기술 교육의 키워드인 'STEM (Science, Technology, Engineering and Math)' 교육에 예술 (Art)를 포함시켜 'STEAM' 교육을 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중 하나이다. 이 교육 방법의 효과에 대한 것은 차치하고 그의 얘기 중 흥미로웠던 점이 하나 있었다. 그가 MIT 대학의 교수로 재직 시 컴퓨터공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을 위해 예술을 접목한 새로운 교과목을 제안했을 때 학교에서 개설을 허락 해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새로운 학문적 시도에 개방적이라는 미국에서조차 공과대학에서 예술 나부랭이를 가르치는 것이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 며칠 후, MIT 대학에서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대학 설명회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다. MIT 소개 영상의 대부분은 자기 학생들이 수많은 예술 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었다. 다른 분야와의 접목은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이공계 학문 분야가 살아남기 위한 절대적인 덕목이 되어버렸다.

오늘도 늦은 시간 연구실의 불을 밝히고 있는 젊은 과학자들이여 오늘부터 글쓰기에도 많은 시간을 투자하시라. 자신의 연구가 더 발전할 가능성이 높아질 뿐 아니라 좋은 직장을 얻게 될 확률도 더 높아 질 것이다. 대학들도 구조조정을 위한 학과 통폐합에 엄한 '융합'이라는 단어를 활용하기 보다는, 이공계 학부생들과 대학원생들의 글쓰기 능력을 향상 시킬 교과목 및 프로그램 개발에 더 많은 노력을 들여야 한다. 이것이 이공계 학문의 '융합'을 시작하는 방법이다.

강호정 연세대 사회환경시스템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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