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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10월 21일] 일본이 미국에서 잘 나가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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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10월 21일] 일본이 미국에서 잘 나가는 이유

입력
2013.10.20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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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진보 성향 시민단체 무브온은 버락 오바마 정권 탄생의 일등 공신이다. 보수 유권자단체 티파티에 대비되는 이 시민운동 사이트에서 요즘 난데 없이 '위안부 조작을 바로 잡자'는 청원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청원문은 한국이 주장하는 위안부 강제 모집의 증거가 없고 한국의 가족은 돈을 받고 위안부를 팔았다고 주장한다. 19일까지 1만8,000명 이상이 서명했는데 서명자 대부분이 일본에 거주하는 것으로 나타나 조직적인 '어글리 잽(추한 일본인)'의 청원 운동인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이들은 청원 서명이 어느 정도 모이면 기자회견 같은 다른 방편의 여론화 작업을 진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인들은 뉴욕에서 시작해 건립 운동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는 위안부 기림비의 철거를 요구하는 백악관 청원을 최근 벌이기도 했다.

아베 신조 정권이 등장한 뒤 더더욱 활개치는 어글리 잽은 일본에게 눈엣가시 같은 마이클 혼다 연방하원 의원까지 타깃으로 삼고 있다. 혼다 의원은 일본계이면서도 2007년 하원의 위안부 결의안 통과를 주도했다. 올해 6월에는 오바마 대통령에게 일본의 성노예 만행을 공론해달라고 요구하는 서신을 보냈다. 하지만 어글리 잽이 조직적으로 낙선 운동을 하면서 혼다 의원은 당내 경선 통과조차 위태로워졌다. 내년 11월 중간선거가 끝나면 혼다 의원의 활약을 더는 보지 못할 수 있는 것이다.

미국에서 이뤄지는 이런 일들에 한국이 공개적으로 입장을 내보이기는 어렵다. 혼다 의원만 해도 한국 외교당국이 여러 가지 그의 어려움을 파악하고 있다지만 그렇다고 미국 정치에 개입할 명분은 없다. 하지만 미국에서 흘러가는 분위기를 보면 정직한 대응만이 정답일지 의구심이 든다. 공세적인 일본의 로비 속에 한국과 일본의 이해와 의견이 부딪히는 문제에서 미국의 반응이 전과 많이 달라지고 있는 탓이다.

요즘 워싱턴의 싱크탱크들은 미일 관계 조망 행사를 잇따라 개최하면서 일본에 관대한 태도를 반복해 보여주고 있다. 일본계 자금이 들어가지 않은 곳이 거의 없다 보니 충분히 예견된 일이긴 하다. 하지만 보수 성향 싱크탱크들은 한일 관계가 악화하는 것을 두고 한국에 도를 넘는 실망을 표한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가 2001년 야스쿠니 신사를 방문한 지 2개월 만에 한국과 정상회담을 한 것을 감안할 때 아베 총리가 최근 정상회담을 제안한 것이 잘못은 아니라는 식이다. 일본이 제안한 한일 정상회담 개최를 한국이 반대하는 것이 이런 전례와 어긋난다는 뉘앙스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워싱턴 외교가에서는 한일 관계에서 일본을 비난하는 것이 금기시되고 있다. 한 당국자는 미국 인사들을 만나 일본이 문제라고 말하면 마음을 닫아 버려 더는 얘기가 진전되지 않는다고 했다. 미국 인사들의 머리에는 한국이 일본 탓만 하는 '박스'에서 벗어나지 못하니 한일 관계가 제대로 될 리 없다는 생각이 굳어져 있다.

일본에게는 호의적인 워싱턴의 반응이 공교롭게도 한국에는 피로감을 보인다. 지난 주 한미 양국 전직 관리들이 비공개로 만나 솔직한 의견을 나누는 자리에서는 '코리아 아이덴티티(한국 정체성)'가 논란이 됐다. 유리할 때는 세계 15위 경제 규모에 맞는 대우를 요구하는 한국과, 불리할 때면 아직도 약소국이라며 손을 내미는 한국. 이 두 가지 중 어느 게 진짜 한국이냐고 미국 측 인사들이 물었다. 한국이 원자력협정 개정 협상에선 타국과 동등한 대우를 원하고 방위비 분담금 협상이나 전시작전권 전환 재연기 요구 때는 약소국 논리를 편다는 얘기였다. 정체성을 보이라는 것은 한국도 실리만 챙기려 하지 말고 이제는 돈을 쓰라는 주문이다. 이 말을 뒤집어 보면 요즘 일본이 워싱턴에서 잘 나가고 어글리 잽까지 활보하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이태규 워싱턴특파원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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