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수년 동안 정치를 떠나 있었다.”
5년 만에 처음 정치무대에 선 힐러리 클린턴 전 미국 국무장관의 첫마디는 현재완료형이었다. 어법상으론 이제부터 정치를 하겠다는 선언이었다.
19일(현지시간) 오후3시 워싱턴에서 10㎞ 떨어진 버지니아주 폴스처치의 작은 극장 스테이트시어터. 힐러리가 트레이드 마크인 붉은 재킷을 입고 마침내 연단에 섰다. 극장은 이미 “힐~러~리~” 환호 소리에 떠나갈 듯했다. 버지니아 주지사 민주당 후보 테리 매컬리프를 공식 지지하는 자리였지만 힐러리에게는 2008년 민주당 대선 경선 패배 이후 첫 정치 무대였다.
사전 지지연설이 1시간 가량 이어진 이날 행사는 여느 대선 유세와 다르지 않았다. 힐러리를 보기 위해 서너 시간씩 기다린 500여 청중과 지지자들의 뜨거운 반응까지 2016년 대선 현장, 미래의 ‘마담 프레지던트’를 미리 보는 듯했다. 힐러리가 “우리 미국을 이토록 위대하게 만든 것, 그리고 어떤 리더십이 이 위대함을 지속시킬지 생각할 기회가 많았다”고 하자 참석자들은 곧바로 “당신의 리더십”이라고 외쳤다.
힐러리는 5년 전과 달라져 있었다. 연설하는 동안 목소리를 높이지도, 청중을 흥분시키지도 않았다. 이전과 비교할 수 없는 여유와 자신감 그리고 미소 속에 20분간 연설했다. 그러나 연방정부폐쇄(셧다운)를 비판할 때는 역시 정치인 힐러리였다. “최근 우리는 워싱턴에서 잘못된 리더십의 실례들을 지켜보았습니다. 정치인들이 공감을 나누기보다 서로 초토화하려 했고 이념의 나팔을 불어대며 작전을 폈습니다.” 힐러리는 이념을 앞세워 정부를 셧다운시킨 초토화 정치를 한다고 워싱턴 정치권을 비난했다.
힐러리는 수십 년 정치적 동지인 매컬리프를 칭찬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힐러리는 “그는 따뜻한 가슴을 지녔으며 늘 내 옆에 있었다”고 자신의 측근임을 강조했다. 이처럼 매컬리프를 각별히 대우하는 이유는 남편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공동으로 그에게 진 빚이 많기 때문이다. 가족이 왕래할 만큼 친분도 깊지만 매컬리프는 클린턴 부부를 위해 그 동안 4억달러를 모금해줬다. 경합주인 버지니아에서 매컬리프가 주지사로 당선되는 게 장차 힐러리의 대선 행보를 가볍게 해줄 수 있다는 계산도 깔려 있다. 힐러리는 앞서 지난달 30일 밤 자신의 워싱턴 집을 처음 개방해 매컬리프를 위한 선거기금 모금 행사를 가졌다. 힐러리는 30일에도 캘리포니아주 베버리힐스에서 참가비가 1만5,000달러나 되는 모금행사를 연다.
워싱턴=이태규특파원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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