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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욱의 쪽빛보다 푸르게] <6> 연출가 김명곤과 딸 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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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욱의 쪽빛보다 푸르게] <6> 연출가 김명곤과 딸 아리

입력
2013.10.20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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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의 자유와 인권 많이 나아져 공격 목표가 명확했던 과거와 달리 질적으로 새로운 타격점 찾아야삶 자체나 인간의 근원적 문제 소외와 아픔을 천착해야 할 시점'아버지'등 최근 작품들 대중과 호흡하기 위한 실험작10~20년은 갈 레퍼토리 구상 해외 수출할 뮤지컬 등 숙제 쌓여 햄릿 재구성한 작품에 큰 기대

미국의 작가 업턴 싱클레어는 예술이 역사의 정의와 진보를 위해 복무해야 한다며 에서 다양한 예술가들을 통해 입증해 보였다. 만일 그 책의 개정판이 나온다면 김명곤(61)씨는 유력 후보로 꼽히지 않을까?

서울 종로구 사간동 아리인터웍스 사무실에서 후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그는 여전히 꿈 꾼다. 널찍한 사무실 벽에는 '아버지''만두와 깔창' 등 이 기획사가 낸 두 대표작의 포스터가 큼직하게 내걸려 있다. 각각 제 일에 열중하는 젊은 후배 사이에는 딸 아리(27ㆍ한국예술종힙학교 예술경영2)도 보인다.

이들은 시대 착오적일까? 페미니즘은 물론 섹스 담론 등 우리시대가 유포하는 바에 별 관심이 없는 듯하다. 가깝게는 지난 3월 동숭아트센터 대극장 무대의 연극 '아버지'에서 멀리는 1999년 영화 '서편제'까지 일관된 행보를 고수해 왔다.

가벼움이 판치는 이 시대, 아서 밀러의 을 번안ㆍ연출해 올렸던 '아버지'는 비장하기까지 하다. 가장으로서의 권위를 가까스로 지켜내다 결국은 자신의 생명과 맞바꾼 보험금으로 책무를 다 하는 남자를 그는 중견 배우 이순재를 통해 육화시켰다. '서편제'의 아버지는 의붓자식들을 통해 세파에 맞서 애면글면 판소리를 지키려는 눈물겨운 분투의 주인공이다.

지난 시절 진보세력의 상징이었던 마당극으로 기득권과 맞서다 세상이 바뀌자 정권 속으로 들어가 자신의 꿈을 시험하더니, 이제는 딸과 함께 새 판을 짜려 한다. 그 아버지에 그 딸, 아리 씨. 딸의 이름을 딴 기획사 아리인터웍스의 사무실에서 그는 청년 김명곤으로 돌아와 있었다. 영화 '서편제'의 도입부에 나오던 젊은 시절의 유봉, 바로 그 모습이다.

일감이 몰려드는 것, 역시 젊을 적 모습 그대로다. "두고 봐라, 이 놈아. 판소리가 판을 치는 세상이 올 거다!" '서편제'에서만 통하는 호기가 아니다. 그는 여전히'판'속에서 산다. 가깝게는 20일 막 내린 순천 국제정원박람회 총감독에 위촉돼 기간 중 펼쳐지는 문화 행사를 총지휘했다. 중앙대 연극영화과 석좌 교수, 아리인터웍스 대표, 극단 아리랑 고문 등은 그에게 상임(常任)으로 맡겨진 일이다.

아리의 아버지라는 직함은 종신으로 감당해야 할 일이다. 그것은 나아가 한 세대 아랫사람들과의 소통을 상징한다. "나의 전성기는 역사적 격동기인 1970~1990년대였지만 당시 의 일은 2010년 대의 엄청난 변화량에는 못 당할 것이다." 아리로 상징되는 요즘 젊은 세대를 보면 할 일이 더 많다고 느끼는 이유다. 그렇지 못하다면 자신의 작업이 추구하는 평등과 정의, 우리 문화 등의 가치를 이 사이버 시대에까지 소통시키려 애쓸 필요가 없다.

딸을 염두에 둔 말에서도 한창 시절의 정서가 그대로 살아난다. 민족극 한마당이나 극단 아리랑 등이 취했던 직접적 비판 노선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수정돼야 한다는 것이다. "표현의 범위가 커지고 인권이 향상된 현시점은 단순한 정치적 투쟁만 예술의 목표가 아니다. 그보다 삶 자체, 인간의 근원적 문제, 우리시대의 소외와 아픔을 깊이 천착해야 할시점이다."'아버지' 등 대중적 작품이 그래서 나왔다. 그것은 정서적ㆍ인식적으로 공격의 목표가 명확했던 과거와 달리 "질적ㆍ양적으로 새로운 타격점을 찾아가야 하는" 현재에 대한 구체적 대응책인 셈이다.

"극도의 상업주의가 공연계의 대세인 양 흐름을 주도하는 상황이다. 시대의 문제를 고민하는 젊은 예술가들은 극소수인 것이 현실이다." 자신의 본령인 연극 쪽으로 가면 상황은 더욱 피폐하다. "방송 등 영상매체의 압도적 영향력에 힘을 잃어가는 것이 연극이다. 실제 창작 인력도 그 쪽으로 많이 유출되지 않았는가." 현재 공연 예술의 내용과 형식이 다양해졌다는 것은 그의 관점으로는 곧 파편화이다.

'아버지' 등 최근작들은 변혁이 아닌 새로움을 원하는 이 시대 대중들과 함께 호흡하기 위해 내놓은 시약이다. '아버지'는 신자유주의 시대, 가장의 고뇌라는 보편성을 한국 사회로 바짝 끌어들였다. 해고와 세대 갈등이라는 상황은 물론 외도 장면을 우리 상황에 보다 접근시켜 새 작품을 만든다는 각오로 번안해 낸 무대다. 또 2인극'만두와 깔창'은 이 시대 서민경제의 파괴상을 정공법으로 그린다. 압축적 규모의 무대에 마당극화 등 다양한 시도 덕에 충북 영동의 '산촌예술제', 대전 연극협회의 소극장페스티벌 등지에서 공연 요청이 잇달아 들어 온다. 그는 "서울문화재단의 소외지역 공연 지원 사업의 덕도 보지만 재능기부의 형태로 참여하는 배우들도 큰 힘"이라며 "전국 재래 장터 어디든 부르면 달려 가겠다"고 말했다. 그에게 새 마당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지난 시절 그는 극단 한마당의 대표ㆍ연출가로서 민족극 계열의 연극을 진두에서 이끌었다. 그는 현재를"좌파 정권의 홍역을 사회 전체가 앓고, 다시 우파"로 파악하고 "사회 성숙의 자연스런 현상"이라고 말했다. 언제 변할지 모르는 대중의 선택은 수용돼야 한다며 "시대의 변화를 긍정하고 대중의 선택을 존중해야 한다"고도 했다.

좌파 정권에 대한 실망을 반성의 계기로 삼고, 1970~80년대 가난을 기억하고 연극쟁이의 기본을 다시 찾아야 한다는 다짐은 낮지만 확신에 차 있었다. 세대를 초월한 호응이 확인된 '만두와 깔창' 등 작품의 레퍼토리화가 정착되고 관객의 호응이 따라준다면 승산은 충분히 있다는 생각이다. 만 2년 된 기획사 아리인터웍스로부터 얻은 결론이다.

파란의 세월이었다. 고교 독어 교사, 잡지 '뿌리깊은나무' 기자 김명곤은 "광대 노릇 하려 글을 배반한다"던 창업주 한창기의 만류를 뿌리치고 문화 현장에 들어갔다. 마당극 놀이패 '한두레' 극단 '연우무대' 등 진보적 집단에서 현장을 익히던 청년 김명곤은 1986년 탈춤과 굿의 연희 정신을 기치로 해 극단 아리랑을 창단했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들어서는 길이 달라졌다. 2000년~2005년 국립극장장의 자리에 앉은 그는 창극 '수궁가', 국가브랜드 작품 '우루왕'등을 개발하며 먼 훗날을 가늠하고 있었다. 2006년 2월 입각해 정권이 이듬해 7월까지 문화체육부 장관 노릇도 했다."2005년 말 어느 날 노 대통령이 의전도 없이 극장을 찾아왔다. 함께 2층에서 조용히 창극을 봤다. 그 뒤 청와대로 나를 불러 저녁을 함께 하기도 했다."노 전 대통령과의 만남에 대한 회고다. 서거 순간에도 새 작품의 대본을 손보고 있던 그는 소식을 듣고 곧바로 봉하 마을로 달려갔다. 노제 진행이 그에 대한 마지막 봉사였다. 김씨의 컴퓨터 속에는'한 문화 진흥 사업' 등 전통 예술 10개년 계획을 통한 전통문화 지원책이 아직도 들어 있다. 노 전 대통령의 후원 아래 만들었던 구상이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경영과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극단 아리랑을 놀이터 삼아 커온 딸 아리(27)씨는 꿈을 잇고 있다. 특히 재학 중 교환학생으로 미국 피츠버그 카네기 멜로 대학의 드라마 스쿨서 프로덕션 매니지먼트 일을 배우고 온 그는 아리인터웍스가 꿈꾸는 미래의 당연한 일부다. 서울문화재단 김필국, 현재 극단 아리랑대표 방은미 등 아버지의 후배들을 삼촌, 이모 하며 알고 커 온 그다. 예술의전당 공연사업부 등에서 익힌 지식 등을 아버지를 위해 응용할 꿈에 부풀어 있다.

"제 후배들은 비교적 편안한 생활이 가능한 국공립 예술단체를 선호해 정작 현장은 인력난에 시달리죠." 순발력 있게 몸으로 때워야 할 상황의 연속인 데다, 빠듯한 예산과도 싸워야 하는 현장을 누구보다 잘 알고 하는 말이다. 10~20년은 갈 레퍼토리 작품과 시스템 개발, 해외수출 가능한 창작 뮤지컬 개발 등 자신 앞에 놓인 숙제를 줄줄이 펼쳐 보인다. 그 중 아버지가 새롭게 재구성한'햄릿'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원작을 햄릿의 연인 오필리어의 관점에서 재구성한 뮤지컬 '더 코러스 오이디푸스'이다.

음악극 분야에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서울대 작곡과 최우정 교수가 음악을 맡기로 해 더욱 관심을 끄는 작품이다. 아리 씨의 포인트는 조금 다른 데 있다. "일상적 도시 공간을 이용한 새 홍보 기법 등 시도되지 않은 새로운 양식의 광고 매체를 개발해 흥미를 유발시킬 계획이에요." 내년 4월께 공연 예정이다.

장병옥 선임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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