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 단체 사무실에는 'Let the buyer beware'(소비자는 깨어 있으라)라는 문구가 붙어 있었다. 이 문장을 보는 순간 성경의 창세기의 한 구절 '빛이 있으라'(Let there be light)라는 어구가 떠올랐다. 그만큼 고전적이고 문어체적 표현이기 때문이다. 고전 문장에서는 'So be it'(그럴지어다, 그러면 됐지), 'God save the King'(왕을 구해 주소서) 그리고 'Long live Our King'(왕이여 오래 사소서)' 등도 비슷한 표현법인데 소위 '가정법 현재'다.
가정법 현재에서는 주로 3인칭 주어가 뭔가를 이루기 바라는 소원과 바람이 강하게 표출된다. 그래서 'God save the Queen!', 'God bless you', 'God help you', 'Lord love my dog', 'Hallowed be thy name'(그대 이름이 거룩하여라), 'Heaven forbid!'(하늘이여 용서하소서), 'The Devil take him!'(악마의 손에 죽어라). 이런 말들은 현대 영어에서는 May를 사용하여 변경 가능하다. 그래서 'May God love my dog'으로 할 수 있다. 'No matter how~'(아무리 ~한다 하여도), 'Come what may~'(무슨 일이 생겨도), 'Be that as it may'(그것은 그렇다고 치고..) 등은 일종의 부가어로 문장에 덧붙여 쓰이는 것이다. 재미난 것은 영국보다는 미국에서 이런 고전적 가정법 잔재가 더 많다는 점이다.
가정법 현재는 죽었다고 주장하는 언어학자들이 많다. 실현성이 적거나 현재 사실과 반대인 것들 단순한 희망이나 소망에 그치는 것은 현대 영어의 역동성에 파묻히고 있다는 것이다. 평서문과 명령문은 쓰임도 많고 적용 사례가 많아 효과 좋은 표현법이지만, 가정법이란 것은 글자 그대로 '상상과 가정, 비현실성, 희망 사항'이라는 독특한 심리 묘사일 뿐이다. 그래서 'If I were rich'라는 말은 '내가 부자라면'이 된다. 지금 부자가 아니고 그냥 희망 사항이기 때문에 이때의 동사는 'I am rich'로 해서는 안 되고 이를 were로 표기하도록 설정했다고 한다. 이런 가정 표현법은 잘 쓰지 않게 되므로 당연히 사용법이 어렵게 되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오히려 'God save the subjunctive!'(신이여 가정법 현재를 살려 두소서)라는 slogan을 내세우며 가정법 현재의 효과와 미묘한 어감을 선호하는 세력도 있다. 현재의 심리 상황을 이보다 더 좋게 표현할 대안이 없기 때문에 존속시켜야 한다는 주장이다. 고전의 가정법 문장은 현대 영어에서는 May, Might, Should, Could등을 사용하여 단순하게 변하는 것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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